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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9. 이곳생활 4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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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네요여기온게 무덥고 낯설었던게 얻그제 같은데 말이죠.이곳은 추워요..한국만큼은 덜 하겠지만 영상 7도 정도로 추워서밤에는 양말 기본이 3겹이상, 목도리 2개, 겉옷 3개, 장갑까지 끼고 잔답니다.믿겨 지십니까? 하하하이제 여기서 생활한지도 4개월이 지났네요.많이 이룬것 같으면서도 먼가 아쉬운 생각이 드는이유는 무엇일까요다른 지역 팀원들은 어떻게 지내요? 다들 너무 보고 싶네요. 많이..저희는 팀별과제를 11월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끝내었습니다.필리핀 현지어인 따갈로그책 제작과 지역사회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어요.얼마전 YMCA Anniversary를 맞이해서 'Fun Run'이라는 마라톤에 저와 니은이가 참가를 했었는데요, 나란히 5km를 뛰고 금,은메달을 따내어 바기오 시내를 주름잡았습니다. (바기오 신문에 나온 기사를 빗대어) 경찰의 에스코트까지 받으며....저희가 어제를 포함해서 3번째로 Homestay를 했는데요.현지 주민이 사는 집에 묵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생활을 느낄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더 친해질수 있었고 마음을 열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죠.연말을 앞두고 크리스마스도 있고 약 2주넘게 휴일이 곧 시작되요.저희 팀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쓰기 열풍이 불어서 직접 카드도 만들고 지인들에게도 보내기도 하고 있습니다. 12월 내내 이곳저곳에서 캐롤이 흘러나와 들뜨기도 하구요.니은이도 현지인 volunteer에게서 카드를 받아 모두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어요.얼마전 12월 12일이 한울이 생일이어서 선생님들께서 생일파티를 해주셨어요.한울이와 저희모두도 즐거운 생일날을 보내었답니다.^^Pre-school Teacher인 Lynnet선생님께서 저희 모두에게 예쁜 파우치와 그안에 립밤을 쎈스있게 넣으셔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셨답니다. 항상 저희를 먹을것과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주시는 분이시지요. 너무 감동이었답니다.금요일날 Itogon Fiesta에서 저희 Community 어머님들께서 전통춤을 추셨는데요.매년 1위를 하시다가 이번년도에는 3위를 하셨어요. 색다른 경험이라 좋았어요.그리고 저희가 여기서 신신가라테 라는 운동을 쭈욱~해오고 있는데요.토요일 오전에 Promotion이 있었어요. 도복이 없었는데 가라테 선생님께서 도복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또 감동을 받았지요.오늘 오전에 Pig pan에 우리 돼지 Kore랑 Yan-yan이 이름표도 달아주고 왔어요~^^얼마전에 Board Member meeting이 있었는데 저희팀을 잡으시려고 더 잘하려 하시고 변화하셨어요. 필리핀 연맹 비숍 교수님과 마닐라 YMCA 스텝인 밥스와 만나서 저희팀에게 힘든점이 없는지, 그동안 무슨일을 했으며 어떤것을 느꼈는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저희 숙소는 물이 나오다 안나오다 해서 조마조마해요. 언제 끊킬지도 모르고...그렇습니다. 처음왔을때 이곳이 어색했던 느낌이었다면지금은 참 편한곳이 되었어요.이제 1달이 남았네요. 남은기간 미션잘 수행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다시만날때 까지 안녕히 계세요.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열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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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개월, 현지에서 어엿 4개월. 7월에 처음 만나 8월에 현지로 온 우리.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 종일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오전엔 밖으로 나가 함께 일을 한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도, 아니 이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개념이다. ‘가깝다‘ 라는 말은 단순히 공간을 의미하는 물리적 개념을 넘어, 마치 내 분신처럼, 그림자처럼 온 하루를 함께 보내며 같은 곳을 본다. 어제 타쿰 시티에 있는 마트에 갔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난 이곳에서 4개월 동안 동네 슈퍼마켓조차도 혼자 가본 적이 없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시는 따따이(사무총장님)의 영향도 있지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우린 코앞에 구멍가게 조차도 항상 셋이 함께 갔을까. part 2. 내부의 갈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섯과 셋은 확연하게 다르다.그래서 좋을 때가 있고, 그래서 나쁠 때도 있다.그리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를 때도 있다.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다섯일 때는 오늘 하루 나 하나 입 다물고 있어도 별 파장이 없었다. 그러나 셋일 때는, 누구 하나가 조용하면 그 날 하루는 우리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누구 하나가 기운 없이 쳐져 있으면 어느 새 우리 셋이 나란히 물 먹은 솜이불 마냥 축 쳐져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그 날 하루 우리 팀 전체의 분위기가 바뀐다. 한명이 기침하면 다 같이 콜록콜록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 팀에게 있어 차지하는 영향이 1/5에서 1/3 으로 커지면서 그 만큼 우리는 책임감도 함께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일일평가서를 작성하는 시간, 혹은 팀 회의를 하는 시간에 한 명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진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그 시간엔 열심히 집중해야 한다. 설거지나 쓰레기가 가득 쌓이게 되면 그런 상황을 만든 것도, 처리하는 것도 너와 너 아니면 나다. 그래서 못 본척 슬쩍 미룰 수도 없다. 나 하나의 게으름과 이기심이 조금이라도 섞이게 되면 내가 미룬 그 몫이 다른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전보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이어 해야겠다.왜 우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함께 다녔을까. 하여간 지지배들이란- 하고 쯔쯔 혀를 차며 보통 여자애들이 우르르 떼지어 다니는 것과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 셋의 성격을 살펴보자.23살 박초영, 22살 김지은, 강지혜. 처음엔 나이는 비슷한 데 어쩜 이렇게도 캐릭터가 다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성격을 선으로 나타내본다면 우리는 각자 다른 선 위에,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맨 끝에 서 있을게 분명했다. 물론 사람은 모두가 다 다르다.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관점, 성격, 취향, 생활패턴, 종교, 옷 입는 스타일, 남자 보는 눈까지 모든 게 다 달랐다. 혈액형도 초영 언니는 O형, 지혜는 A형, 나는 B형이다. 밖에서 보면 여자 셋이서 둥글게 별 탈없이 잘 살것 같겠지만, 슬프게도 우린 둥글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큰 공통점이 하나 있는 데 ‘무뚝뚝’ 하다는 것이다. 무슨 여자애들이 어찌나 애교 하나 없이 딱딱한지 흡사 ‘나무 토막’ 들 같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기운 내라고 위로하는 말,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애초에 안 배운 사람들처럼 달달한 종류의 말은 죽어도 입 밖으로 못 꺼낸다. 거기다 공교롭게도 우린 다 첫째이다. 첫째의 전형적인 성격을 다 갖춘 우리는 어렷을 적에 화장실도 혼자 다녔더랜다. (이건 여자애들 사이에선 파격적인 사실이다!) 첫째들이 그렇듯이 우리 언제나 강한 ‘척’ 한다. 안 힘든 척, 안 외로운 척, 안 슬픈 척, 상처받지 않은 척.옆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댄다. 그러나 그게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남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 시려워서. 하지만 괜찮은 척 한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이 기껏해야 2 주정도 였다면 우린 아마 서로의 최고의 모습들만 봤을 것이다. 최대한 웃는 낯으로, 최대한 나의 장점을 부각해서, 가장 착해보이는 모습들로 각자 한껏 포장 했겠지만, 그런 상태로 6개월을 유지하기엔 우리의 연기 실력은 형편 없었다. 내숭 같은 건 집어 치운지 오래고, 10년 지기 친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최소한의 선마저훌쩍 넘어버리며 나의 본 모습을 솔직하게 다 드러냈다. 그런 과정 중 하나가, 싫은 것은 단호히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었다.우리가 이 곳에서,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지금의 시간들을 행복했다-하고 기억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 내서 최대한 마음에 담겨있는 섭섭한 감정들이 없도록 말이다.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만, 만일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좋다.”라고 했다면 그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설령 사실은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 라고 대답을 했다면 끝까지 괜찮은 척 이라도 해야지 내 맘을 몰라준다며 상대방을 원망하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다.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니?” 라는 질문에 우리 팀의 대답은 “예스” 다. 그래서 미리 말하지 않았었나. 우린 뻣뻣하기 그지 없는 나무토막들이라고. 또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오는 감정들을 사소하다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갈등의 시발점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생기고,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오래도록 상처입지만, 그게 너무 작은 사건에서 시작 된거라 섣불리 말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다 소소한 것들인 것을- 그래서 우린 남김없이 말하기로 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느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 가슴속에 담겨 있는 것 모두 다다다! - 자기가 먹고 난 빈 그릇은 개미 끓으니까 그때 그때 설거지 해줄래? - 세수하고 바가지에 있는 비눗물은 꼭 다 버리고 나와.- 저번에 내가 우물물 다 떴는데 아무도 몰라줘서 솔직히 섭섭했어. 놀랍게도 말하기 전까진 얹힌 것 마냥 답답하던 속이, 말이 입술을 타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 탁- 트이면서 후련해진다. 우린 이토록 작고 예민한 한낱 미물인가 보다. 그러나 미물이면 어떠하랴. 지금 마음이 편해졌으면 그걸로 됐다. 팀 빌딩 시간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특별한 자체 팀웍 세레모니가 하나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지나치리만치 솔직한 대화들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생채기들을 달래주기 위한 거라고나 할까. 우린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꼭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본다. 배를 깔고 바닥에 디비져서 과자 한 봉지씩을 옆에 끼고 쿠도 신이치의 활약을 보고 있자면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싶은 게 방금 전의 전쟁은 어느 새 옛날 일이 된다. 단언컨대, 우리 팀을 하나로 만들어 준 것은 절반의 솔직한 대화와 절반의 명탐정 코난 덕분이다. 센스 있게 매번 새로운 극장판을 다운받아 놓는 초영언니.센스 있게 항상 어디선가 과자를 들고 나타나는 지혜. 우리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나무 토막이 된 건지, 나무 토막이어서 남자친구가 없는 건지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를 두고 항상 결론 없는 토론을 하지만, 어찌됐든 다행이다. 우리 중 하나가 낭창낭창 애교 덩어리였다면 그 역시 감당 안됐을 텐데 셋 다 똑같아서 말이다. 표현은 못해도 다들 알고는 있단 말이지. (또 이럴때 보면 캐여시들 같기도 하다)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요 앞 구멍가게도 같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내가 발목을 다쳐 다바오 시티에 있는 큰 병원을 가게 되었는 데 2시간이 넘는 거리임에도불구하고 같이 와 준 언니와 지혜. 물론 누구 하나 옆에서 살갑게 부축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병원 로비에 있는 까페에서도 따로 앉는 게 편하다며 각자 테이블을 잡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마저도 자연스럽다. 우리도 이제 낭창낭창 해질 꼬예여......* >.< *
[뉴스 클리핑] #7. Raonatti Concert in Asuncion YMCA C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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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아순시온 YMCA에서는 지난 1년간의 YMCA의 활동을 보고하고, 1년을 정리하는 행사인 Corporate Meeting이 있었다. "Movement Strengthening in Fulfillment of the YMCA Misson"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미팅은 YMCA의 스텝들, 보드 멤버들, Raonatti 단원들, YMCA의 활동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이루어 졌다. 보드 멤버 미팅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현 이사단 이날 행사에서는 오전에는 올해 YMCA의 활동 성과 보고와,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고, 재정 보고를 하고 정화 의식을 하였으며, 오후에는 내년의 새로운 YMCA 이사진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특별히 라온아띠 단원들의 기타 공연이 있었다. 현지 동요인 'Bahay Kubo'에서 부터 팝송 'Blowing in the wind', 캐롤 'Rudolph TheRed Nosed Reindeer', 한국 가요 ‘바위섬’까지 이어지는 라온아띠 단원들의 특별 공연은 현지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점심시간, 라온아띠 팀의 특별 공연!! 사실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잡아보았다는 단원들은 이날 공연직전 초조함을 드러내며 걱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짧은 연습기간과 전문적인 연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연은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이사회의 선출이 이루어 지고 있다. Mrs. Monteroso 여사가 이날의 개표 위원을 맡아 주셨다. 이날 선거에서는 전년도의 왕성한 활동으로 다수의 이사진이 재선 되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YMCA스텝 Toto의 부친인 Manuel Puyong Sr.이였다. 그는 거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그의 왕성한 활동과 푸근한 인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당선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Toto 내년도 이사회 회장님의 소견 발표 언제나 온갖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릿촌!!!
8번째 에세이 - 다시 새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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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guio YMCA 창립 67주년 기념일 :) 29일 거리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3일동안 여러가지 행사가 있었다.Baguio YMCA앞에는 Baguio City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Session Rd가 있는데, Admin office 직원들을 선두로 바기오 YMCA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유치원 선생님들과 아이들, 학부모님들, 체육관 사람들 그리고 대학 YMCA 친구들까지. :) 우리 팀은 소자본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Bua마을 어머니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거리 퍼레이드를 자주 보았는데, 이렇게 직접 거리를 거닐면서 참여해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2.Home Stay 필리핀의 현지 생활을 체험하고, 26명으로 조직된 Raonatti 프로젝트 그룹 어머니들과 더 친해지기위해서 매주 금요일마다 개별적으로 현지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계획했다. 공정성을 위해서 제비뽑기를 통해 각자 홈스테이 할 집을 정하고, 어머니들과 만나 이동했다.팀원 모두 필리핀에 온 이후로 처음 떨어져 하룻밤을 보내야 하기에 긴장감 반, 설레임 반으로 얼굴이 상기되있었다.나 역시 긴장을 많이 했는데, 내가 묵은 곳의 가족분들이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은 어색하고, 서툴지만 곧 어머니들과 찐-한 정을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 5주.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느렸다 빨랐다 하면서 나를 시험하려 든다.내가 라온아띠 1기로서 활동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처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이곳에 왔을 땐, 무엇이든 다 잘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꼭 위풍당당한 장군처럼.. 하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나의 모습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꾸만 작아지는 내 모습 사이의 거리를 실감할 수 있었다. 꼭 그만큼이 내가 좁혀야 할 과제라 여겼다.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말로만 '이해한다.'고 '이건 다름의 문제야..'라고 하면서 정작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후회는 언제나 꼭 한 발 느리게 다가와 아쉬움을 남긴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이제서야 진심으로 그 늦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은 5주안에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더 분발하려고 한다. 누구에게 5주는 너무나 짧은 시간 일수도, 또 다른 누구에게는 같은 시간이 충분하거나 혹은 길게 느껴질 것이다. 부디.. 나에게는 남은 5주가 더 큰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고도 값진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 클리핑] #6. 필리핀 국민 영웅 마니 파키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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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bantayan 교통마비 12월 7일. 10시 30분경부터 new bantayan 지역의 대중교통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순시온의 한 바랑가이인 new bantayan은 아순시온의 중심 바랑가이라고 할 수 있는 cambanogoy와 오토바이로 15분가량 떨어져 있어 cambanogoy로 가거나 따굼시티 까지 가려면 멀티캡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 그러나 이날 10시 30분쯤부터 동네에 어떤 대중교통도 지나가지 않아 주민들의 발이 꽁꽁 묶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인즉슨, 같은 시각 필리핀의 국민영웅인 ‘pacquiao(29)'의 복싱경기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경기 때는 온 국민이 TV앞에 모여 그의 복싱 경기를 보기 때문에 드라이버들 역시 생업을 중단하고 ’국가적 대사‘라 할 수 있는 그의 경기를 시청한다는 것이다. 더군다가 이번 경기는 ’골든보이‘로 유명한 미국의 ‘오스카 델라 호야(35)‘와의 경기였고 많은 전문가들은 호야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필리핀 사람들이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은 하필이면 아순시온 YMCA로 자원 활동을 온 한국인들이 new bantayan의 캡틴인 ALVIN S. ALMEDA Sr 댁에 홈스테이를 온 두 번째 날이기도 했다. 그날 따굼으로 나갈 계획이었던 그들 역시 꼼짝없이 박이 묶이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 멀티캡을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아 유난히 더웠던 그 날의 날씨 때문에 운전자들이 쉬나 싶었다고 한다. 한국인 봉사자 강지혜 씨(22)는 “이유가 파키아오의 경기때문이라는 걸 알고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그렇지만 그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GYM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구경하고, 리뷰까지 꼼꼼하게 챙겨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파키아오가 얼마나 큰 자부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또 어제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오늘의 경기 시간을 묻고 확인하는 등 이번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더라구요. 비록 스케줄에 지장이 생겼지만 그 덕에 필리핀 사람들과 그들의 영웅이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을 지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참 재미있었어요.” 이날 경기는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에서 열린 웰터급(66.68kg) 12라운드 논타이틀 경기로 파키아오의 빠른 스트레이트급 잽을 견디지 못하고 호야가 기권해 TKO패를 당했다. 승리의 챔피온 벨트가 필리핀의 복싱 영웅에게 돌아갔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필리핀 사람들의 인사말은 “오늘 피키아오 경기 봤어요?” 였다. “종종 필리핀 사람들로부터 파키아오를 아냐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어요. 솔직히 복싱에 관심도 없고 해서 당연히 몰랐죠. 그래서 단지 꽤 유명한 운동선수이겠거니 했어요. 우리나라의 박태환이나 김연아 정도 되겠지 생각했는데 이들에게 피티아오는 단순히 국위 선양하는 동포 이상의 존재인 것 같아요. 물론 워낙에 스포츠 스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이 곳 사람들의 말 그대로 ‘필리핀의 영웅’이에요.” 한국인 봉사자 김지은 씨(22)가 말했다. 파키아오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출신으로 일로카노(필리핀 민족 중 하나)이다. 현재는 마닐라와 다바오에 집이 있어 두 곳을 오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파키아오는 6월 미국의 데이비드 디아즈(32)를 9회 KO로 꺾고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아시아인 최초로 4체급을 석권했다. 호야를 꺾은 파키아오의 전적은 48승(36KO) 3패가 됐다. 호야는 이번 패배로 39승(30KO) 6패가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호야가 프로 데뷔 후 KO패를 당한 적은 한 번 있으나 기권하는 바람에 TKO패를 당하기는 처음이다. “오늘은 필리핀 모든 국민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즐기겠군요?” 하는 봉사자의 물음에 “물론이죠!”하고 바랑가이 캡틴이 술 한 잔 하시고 기분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승리를 환호하고 있는 마니 파키아오.기권하며 수건을 던지고 있는 호야필리핀 언론은 그의 승리는 대서특필 했다.'심플 리빙'을 지향하시는 멋진 new bantayan의 캡틴.두개의 하늘을 가진 평화로운 new bantayan.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열 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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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매일 비슷비슷한 생활과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소소한 갈등과 어려움은 항상 존재했다. 하물며 말도 잘 안통하는 타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현지인 뿐만 아니라 팀원들 역시 포함)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선 성장통처럼 따라오는 고통이 여전히 힘들지만, 언젠가 이 통증이 끝나면 그 전보다는 한뼘 쑤욱-더 성장해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낸다. 그렇게 성장통을 겪고 또 겪고 여러 번 겪다보면 그땐 정말 어른이 되어있겠지- PART 1. 현지인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가 이 곳에서 하는 프로젝트는 커다란 상승폭을 그리며 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아순시온 YMCA 유치원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계획해서 직접 운영하기까지 얼마나 어설픈 과정과 시행착오들을 거쳤던가. 아순시온 YMCA에 딱 4명 있는 우리 또래의 스탭들은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일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기엔 우리만큼 어리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우리 스스로가 독립심을 갖고 주체적으로 일을 해나가야 했다. 사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백팔번뇌를 거치며. 프로젝트에 대한 스탭들의 무책임함에 분노하고 겨우 가라앉히고 그러다 다시 끓어오르면 밖에 나가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치고 돌아오곤 했다. 미팅을 하면서 스탭들에게 여러 번 거듭 강조하고 마지막엔 애원하다시피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고 일하자고 말을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YMCA 유치원 준비물로 필요한 것을 말하면 3주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아이들 따갈로그 어와 음악을 담당하는 스탭은 하기 싫은 날엔 말없이 사라져버린다거나 아주 사소한 업무만 생겨도 나 오늘 바빠서 수업 못해- 하는 식으로 나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10월 말경에, 간사님들이 오셨다가 가신 후 스탭과 우리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간사님들이 사무총장님께 부탁드리고 가셨던 몇 가지 사항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매주 주말마다 있는 홈스테이 때문에 우리가 자신을 충전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아신 간사님들이 홈스테이를 줄일 것을 요청하셨는데, 홈 스테이는 2주에 한번으로 줄어들었지만 홈 스테이가 없는 날은 15KM 걷기를 한다던지, 홈 스테이는 아니지만 다른 이름으로 필리핀 가정에 가서 잠을 잔다던지 하는 다른 일정을 매번 잡으셔서 결국 우리는 아직도 이 곳 필리핀에 와서 4개월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또 하나는 미팅인데, 아이코리아에서 우리가 했던 잦은 회의들이 무색할 정도로 이 곳 스탭들은 미팅을 갖지 않는다. 아주 중요하고 큰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미팅이 열리는 데, 그것은 미팅이라기보다 단순한 공지사항을 알리는 성격이 짙다. 사무총장님이 일방적으로 공지를 하시면 스탭들은 따른다.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것을 염려하신 간사님들께서 미팅을 자주 해주실 것을 부탁하셨는데 역시 전혀 지켜지질 않았다. 우리는 미팅하자고 스탭들에게 요청을 하면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다. 큰 행사가 잡힌 것도 아닌 데 도대체 왜 미팅을 하자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스탭들 때문에 우리도 마음이 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미팅 때 스탭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역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할 말이 없다는 뜻이 된다. 미팅의 의미부터 서로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으니. 잘 될 턱이 없었다. 어쩌다 스탭들에게 바라는 점을 얘기하면 -예를 들어 자기가 맡은 수업은 책임감을 갖고 하자 혹은 사정이 생겨 수업을 못하게 되면 최소한 전날에라도 미리 말을 하자. 정도의 것들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며칠을 고민을 했다. 라온아띠 룰 중에 모든 것은 스탭이 정하는 대로, 스탭의 의견이 최우선이라고 했으니 이 곳의 방식을 따를까. 거기다 스탭과 갈등 일으키다 경고 두 번이면 우리 한국가야 하잖아 아무것도 문제제기도 하지 말고 몇 달만 더 참을까. 고름은 결국 터뜨려야 낫는다.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질러버리자! (당시 분노모드였던 나) 투명인간이라 생각하고 무시해버리자, 사무총장님께 가서 스탭들의 만행을 다 일러버리자 등등 여러 가지 해결책(?)이 나왔다. “우리가 직접 그들에게 보여주자.” 우리의 마지막 결론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아순시온 YMCA에게 손님이 아니라 스탭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곳 스탭들이 우리를 언제까지나 손님처럼 잘 대해줘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스탭들이 미팅을 원치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미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무 시간엔 사무총장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스탭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면 나한테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 하라고 빙빙 돌리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사무총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일을 추진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일도, 꾸미는 일도, 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했다. 색지에 아이들 사진으로 벽에 붙일 벽보를 만들었다.지혜가 밑그림을 그리고 나와 언니가 그라데이션을 몽글몽글 주고 있는 중.(아트 티처로서)우리가 아이들 출석표를 작성하고 색지로 개인 출석카드를 일일이 만들어 왔을 때 스탭들이 다가와 이게 뭐냐며 관심을 보였다. 이름표를 직접 만들고 회색 YMCA 사무실이 칙칙해 아이들 사진을 찍고 색지로 벽면을 꾸몄다. 얼마전부턴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스탭들이 우리보고 아티스트라며 칭찬도 해주고 우리가 무언갈 열심히 만들고 있으면 와서 도와줄 거 없냐며 먼저 묻기도 한다. 미팅도 여전히 먼저 요청하지는 않지만 예전만큼의 거부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부터 만들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트리. 아직 산타와 루돌프가 없다.트리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불일 생각이다.^^ 어제는 작은 변화 하나가 보였다.전에 우리가 벽을 꾸미려고 샀던 색지 중에 노란색 종이가 한 장 없어진 것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저쪽 책상위에 노란색이 보인다. 다가가서 봤더니 스탭들이 우리가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붙이고 주위에 색연필로 꽃을 그려 색칠을 해놨더라. 쓰려고 남겨뒀더니 말 한마디 없이 맘대로 쓴 게 아주 잠깐 괘씸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피식피식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근데 나비랑 꽃 모양도 똑같이 그려놨네. 젊은 사람들이 창의력 없기는 쯔쯔. 그 땐 별말 않더니 그래도 내심 꽤 괜찮아보였나 보지? 스탭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 건지를 너희가 직접 보여주고 실천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촉매제가 되어라- 간사님들이 말씀하셨던 그 방법이 그들에게 조금씩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우리가 말로 그들을 닦달하는 건 잔소리밖에 되지 않고 자칫 그들에게 자격지심을 불러일으켜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팝송이 볼륨 가득 빵빵 틀어져 있는 사무실 한가운데서 우리끼리 회의를 하면서도 -이거 지금 자극되고 있긴 하는 거지? 우리가 지금 회의를 하고 있다는 걸 쟤네들이 알고 있긴 해? - 참 효과가 의심되는, 속도가 더딘 방법이었지만 분명 긍정적인 자극이 된 것 같다. 아! 그리고 혹시 오해할까봐 덧붙이지만, 우리와 스탭과의 갈등은 거의 대부분 업무에 한해서였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다들 단세포들처럼 같이 노래 부르고 시시한 농담 따먹기(예를 들어 배나온 정도에 따라 임신 몇 개월인지 나눠대는, 어디 초등학생때나 했을법한.) 를 하릴없이 해대는 또래의 친구로 순식간에 다시 컴백! 초영 언니 생일파티때 우린 모두 광란의 밤을 보냈다. 옆에는 우리의 세컨 보스 "또또" 그러나 나는 그와 사진찍은 기억이 없다.....(과음에 파리해진 저 얼굴을 보라)YMCA 스탭인 앨빈과 또또.노란색 옷을 입은 앨빈은 나와 동갑인 21살인데, 여자친구와 춤에 푹 빠져YMCA는 그에게 있어 3순위 안에도 못든다. 심심치 않게 음악 수업을 안하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려 항상 우리의 속을 썩이지만다행인지 불행인지 성격이 참으로 밝아서 미워할 수가 없다.주황색 옷을 입으신 분은 우리 사무총장님.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나온 또또.그리고 그 옆에 검은 색 티셔츠는 오늘의 주인공 마리즈. 분홍색 티셔츠는 아이린. 마리즈 생일을 맞아 우리는 시티에 가서 케잌을 샀다.사무실에서 생일 파티를 조촐하게 열고, 그리고 나서 우리는 케잌을 철저히 부셔버렸다.I'll eat you up~ na na na naaa~♩ 아카데미 올림픽 때 찍은 YMCA 스탭 단체사진.빨간색 옷입은 남자분은 이름이 "바봉" 인데, 사무총장님 보디가드이다.처음엔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초영 언니에게 맨날 "바보이(돼지)" 라고 놀림받는 신세가되어버렸다. 사무총장님 보디가드인데도, 사람들 붐비는 곳에 가면 가방 크로스로 매라며챙겨주는 바봉이 있어 마음이 참 든든하다.
뉴스클리핑8. Agro industrial trade fair/ 여성 임파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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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Benguet agro fair opnes; World class OTOP shine108번째 벵겟데이를 기념하면서 벵겟지역에서 Industrial trade fair 가 열렸다.13개의 지역에서 각각 부스를 만들어 지역을 소개하고 상품과 농작물을 판매한다.한 박람회 관계자는 " 박람회 개최를 통해 세계농업 시장에 우리 지역의 농산물이 경쟁력이 있다는것을 알리길 원한다"고 밝혔다.*OTOP = One Town One Products벵겟 페스티벌의 하나로 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커뮤니티에서도 부스를 설치한다고 하여 이곳에 방문했었는데, 여러지역의 특색있는 부스가 흥미로웠다. 지역축제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는건 알고있었지만, 지역 성립일 기념과 더불어 농업진흥을 위한 박람회를 축제의 하나로 진행하는것을 보고 이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농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수있었고, 그들의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있었다.2. Campaign vs Violence against our Women,Inc.여성보호단체인 SAVE,DIV등 은 여성 폭력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서명운동을 진행하고있다.SAVE 단체의 Jim ward는 "모든 남자가 학대자는 아니지만, 이를 침묵하여 방관하는 것도 책임이 있다. 이 캠페인은 여자와 남자가 함께하는 캠페인이 되어야 하며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야한다" 고 말하였다. 또한 북부 루존지방이 폭력률이 높은 이유는 높은 알콜소비에 원인이 있다고 밝혔다.DIV는 결혼후 뿐만 아니라 어린학생들까지도 폭력을 행사하다고 조사되어 그 심각성과 폭력자는 폭력을 행사 후 다신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지만 다시 폭력을행사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전했다. 3. Cindewool holds 5th general assembly with Zubiri as guest벵겟 대학교에서는 11월 26일 부터 29일까지 4일동안 제5회 'Cindewoll or the Cordilleran Indigenous Elected Women Leaders League'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매년 개최되는 이 행사는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가 하였다. 이 모임은 Cordilera에 사는 소수의 여성리더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제는 리더십가치, 평등의 권리, 남성의 역할과 비교한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의식을 깨치는 것을 목적으로 더 큰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다.이번 모임의 주제는 '환경보호, 평화, 준법정신' 이다. 상원의원 Zubiri 도 참가하여 환경보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리핀, 바기오에서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애초에 우리 프로젝트의 주제가 '여성임파워먼트' 였는데 ,커뮤니티에서하고있는 'Hog rasing'도 여성들이 스스로 그룹을 조직하고, 프로젝트를 제안하였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고, 지역사회 조사를 통해서도 교육율이 남,녀가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여성보호단체의 캠페인, 여성리더자들의 모임 등 역시 이 지역 사람들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많이 깨어있다는걸 알 수 있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더 나은 바기오 , 필리핀으로 발전하게 하는 힘이 아니였을까 생각을 하며 여덟번째 뉴스클리핑을 마친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열 세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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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삼킨 아순시온 요즘 아순시온에서는 햇빛이 쨍쨍한 날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2주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아순시온 이곳 저곳에서 홍수의 피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아순시온 YMCA 사무총장님께서 말씀하시던 스위밍풀 (swimming pool)이 바로 이 모습을 가르키는 말이었던 걸까.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고야 말았다.물에 잠겨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 곳은 원래 차가 다니는 도로이다. 논이 물에 다 잠겨 야자수만 보이는 상태. 처음, 홍수가 곧 날꺼라는 현지인의 말에도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마을 빽빽이 가득 서있는 야자수들과 다양한 열대 과일 나무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을 더듬어보면 나무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나무를 많이 심으면 홍수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나무들이 이렇게나 많은 데 홍수가 난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야자수가 물을 한껏 머금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가 그 용량을 초과했던 걸까, 기어이 비는 온 마을과 집, 학교, 논들을 삼키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고도가 낮지 않아 잠기지 않았다. 다만, 화장실 변기 수위가 조금, 아니 많이 높아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변기가 막힌 걸로 생각해 누가 규칙을 어기고 변기에 휴지를 넣었냐며 소리쳤지만 원인은 홍수였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나름 견디기 힘든 재해가 우리 집에도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장실 전구를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였다. 차라리 캄캄한 상태로 안 보는 게 나았다. 이렇게 작은 일로도 홍수의 피해를 체감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밖을 나와 마을을 보니 가관이다. 쭉 뻗은 도로 길 옆에 내리막길을 따라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길보다 고도가 낮은 탓에 피해가 크다. Tagum city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Swimming pool!" 이라고 하시며 껄껄 웃으시는 따따이의 말에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옆은 온통 강이었다. 논은 벼가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이 잠겨있었고, 반대편 도로에 있는 학교는 지붕만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들은 다행히 1층은 푹 잠겼지만, 2층은 살아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살림살이와 화분 등을 모두 2층에 올려놓고 있었다. 1층은 비어있고 2층에서 생활하는 필리핀 주거형태. 이전에 초영 언니가 필리핀의 가옥구조에 대해서 쓴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필리핀의 전통 가옥구조는 나무로 만들어진 2층 집인데 1층은 지지대로만 구성되고 속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생활은 대부분 2층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되는데 이는 홍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논밭에 관개시설이 미약하고 도로 전반에 배수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가옥 구조는 필수적이다. 한국에 있는 우리 집은 아파트이고 거기다 20층이다. 그리고 광주에서 홍수가 크게 난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홍수피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낱 작은 빗방울일 뿐인데 왜 그게 홍수가 날까. 그러나 이 곳에서 생생히 눈앞에서 목격한 홍수는 한낱 작은 빗방울, 훨씬 그 이상이었다. 인근 까팔롱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에선 갑자기 내린 비에 초등학생 세 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물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도로인지 강인지 경계선이 구별이 안가 차들이 타이어까지 올라오는 물살을 조심스레 헤치며 간다. 오토바이의 절반이 물에 잠겨있다.사정이 이정도이니 홍수가 나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아도 학교는 자연스레 쉬게 되고(학교가 물에 잠겼으므로 당연한 거겠지만), 갑작스런 물난리에 우리에 있던 돼지들은 도로 가장자리에 배를 깔고 쭉 늘어서있다. 미처 물에 잠긴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구조대 차가 보이는 가운데 이상한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홍수난 걸 구경시켜주겠다며 우릴 차에 태우고 여기저기 드라이브 하고 있는 STAFF, 마침 옆으로 지나가던 구조대차를 보고 멈춰서 창문을 열고 시시한 농담을 하는 또 다른 STAFF, 그리고 빨리 사람들 구조하러 가야될 것 같은데 농담을 다 받아주며 웃고 있던 구조대원, Swimming pool 이라며 껄껄 웃으며 swim-suit를 준비하라던 따따이. 마당에 있던 살림살이들을 2층에 옮기고 있는 진짜 홍수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길가에 팔자 좋게 늘어져있는 분홍빛 속살이 눈부신 돼지들까지 누구하나 얼굴에 근심 하나 드리워져 있지 않다. 가만 보니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건 우리 셋뿐인 것 같다. 세상 모르고 쿨쿨 단잠을 취하고 있는 핑크 돼지매년 한두 차례씩 홍수가 난다고는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익숙해질 자연재해도 아니고,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해도(사실, 철저해보이지도 않는다) 그때마다 피해는 생길 수 밖에 없는 데 왜 다들 조금도 심각해지지 않는 거야! 얼마 전 필리핀의 역사에 대한 글에서 필리핀은 자원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지고 날씨가 온화해서(온화...;;) 사람들 성격도 자연스레 밝고 걱정 없고 낙천적이다 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확실히 한국 사람들에 비해 훨씬 밝고 유머러스 하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가끔은 달달한 말도 잘 하고. 그러나 가끔, 필리피노 들의 대책안서는 낙척전인 마인드에 허허- 기가 찰 때 가 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을 잔뜩 열받게 해놓고선 “너의 행동 때문에 나 지금 화났어” 라고 말하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It's up to you^^ (그건 너한테 달렸어) 그러니 나한테 화를 내든, 나를 용서하든, 마음대로 해 난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하는 식이다. 그럴 땐 뚜껑이 확 열리지만, 이번엔 낙천적인 마인드가 이긴 것 같다. 홍수가 날 때마다 안절부절 하늘을 저주하는 모습보다, 비가 와서 우리 집 1층이 잠기면 2층에 가있지 뭐, 가축 우리가 잠기면 도로가에 내놓지 뭐, 학교가 잠겼으면 하루 쉬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이 재해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든 것이다. 자연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하면서 숨 쉬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제 필리핀의 모든 게 좋아보이던 시절은 비록 지나갔지만- 나는 또 한번 필리피노들한테 반한다. 어제도 밤새 비가 내렸다.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시끄러워 옆 사람의 얘기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화장실 변기는 진작에 수위가 높아졌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조금씩이나마 물이 꿀렁꿀렁 빠지는 걸 보면 흐뭇하다. 아침에는 갑자기 오랜만에 해가 쨍쨍하더니 이제 한창 뜨거울 점심시간인데 어느 새 다시 구름 색깔이 흐릿흐릿하다. 어쩌면 오늘 오후, 혹은 내일 아침, 또 다를 것 없는 세찬 비가 내리겠지만 예전처럼 걱정 가득한 얼굴은 우리도 지웠다. 대신 조금은 쿨하게 조금은 시크하게 조금은 가벼운 마음을 가졌다. “ 홍수 나서 변기물이 높아지면 좀 기다리지 뭐 ” 이렇게. 우리 잘 지내고 있어요 :)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열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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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들에 대한 재발견 흔히 사람들은 ‘크레파스’라 하면 초등학생들이나 쓰는 수준 낮은 미술용 물감 정도로 알고 있다. 아직 물감을 쓰기에는 손놀림이 섬세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미술 도구쯤으로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 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땐 ‘크레파스’로 색칠하는 건 10살이 된 내게 용납할 수 없는 창피한 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카데믹 올림픽의 아순시온 YMCA지역 예선 현장. 날도 무덥고 해서인지 스텝들은 나를 그리기 대회 현장에 있을 것을 권했다. 노래대회나 퀴즈 대회는 야외무대에서 펼쳐지고 있어서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그 세심한 배려에 감동받으며 대회장인 아순시온 센트럴 하이스쿨의 어느 한 교실로 들어갔다. 미술 대회장에는 7명의 아이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해남 촌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1년에 한 번씩 해남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학예회 같은 대회에 조소와 사물놀이로 매년 출전했던 경력이 있던 나는 그 대회장에서 가을빛이 가득했던 시골의 대회장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 졌다. 이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아이들의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는데 혹시나 방해가 될까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촬영 중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책상엔 붓이 없었다. 물통도 없다. 이정도 대회쯤 나오는 친구들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을 영어가 써진 물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없다. ‘어라... 대체 뭘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거지?’ 생각하는 찰나, 어떤 아이가 주섬주섬 크레파스를 꺼냈다! 크레파스! 크레파스! 크레파스! 그렇다 크레파스!를 꺼냈다. 햇빛에 그을릴 대로 그을려진 까만 손을 가지진 남학생이, 그것도 나보다 훨~씬 크고 긴 손가락을 가진 남학생이 크레파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 크레파스라면 우리 유치원 아이들이 수학 교재 색칠할 때 쓰던 바로 그 제품이다. ‘하하하’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유치하고 시시해서가 아니라 그간 이런 대회에 나오면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좁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실을 한바퀴 돌며 촬영을 한 뒤 다른 대회장도 살피며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잠시 그 그림대회장에서 자리를 비웠다. 한 1시간 정도나 지났었을까? 다른 경쟁의 장들을 카메라에 담고 조금을 지쳐 그림대회장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그림을 얼마나 완성됐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대회장을 한 바퀴 빙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곧 미소를 동반한 충격에 휩싸였다.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작품들이 완성되고 있었다. 크레파스로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다니! 그날 크레파스는 내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주 가끔씩 익숙한 것들에게서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우와 이런 면이 다 있었어?’ 하며 신기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서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배신감처럼. 물론 익숙함에 젖어 사물을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한 본인의 잘못이 크지만. 어쨌든 크레파스는 이제 내게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물건이 되었다. 나는 크레파스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필리핀에 와서 ‘익숙한 것’들을 가끔 만났다. 이제부터 내가 만난 몇 가지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한다. 헌 옷 수거함을 필리핀의 시골마을에서 만나다. 아순시온에는 금요일마다 7일 장이 선다. 작고 아담한 시골 장터는 금요일이 되면 북적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정겨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날은 아이들 장난감부터, 각종 해산물을 파는 사람도 나오고, 옷을 산처럼 쌓아 놓고 파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필리핀에 도착한 초창기에 함께 일하는 스텝 한 명이 그 옷 가게를 가리키며 “ It is 오까이오까이 ” 라고 말했다. “ What's 오까이오까이?” 라고 되묻자, “ 오까이오까이 is the secondhand products. Maybe that cloths came from Korea."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옷들이 아무리 봐도 새것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았다. 헌 옷 수거함속의 옷을 필리핀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파트 단지 눈에 띄는 듯 띄지 않는 한 구석, 촘촘한 빌라들 사이 어딘가,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헌 옷 수거함. 나는 살면서 그 헌 옷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단지 막연히 어느 고아원으로 보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을 뿐. 또 TV에서 그것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곳으로 수출된다고 했던 것도 같고. 어쨌든 그 문제는 내 관심 밖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헌 옷 수거함에나 들어있었을 옷은 낮선 땅 필리핀에서 만났고 이것은 이제 내게 꽤 흥미로운 주제가 되었다. 현물을 사고파는 시장에는 공장에서 갓 생산된 재화만이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서 유용하게 쓰이다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중하게 쓰일 보물일 수도 있다. 미국의 절약정신, 이웃 간의 정에 관해 이야기 하던 중학교 영어 교과서 본문에 나왔던 ‘garage sale(차고세일)’의 내용처럼. 그러고 보니 ‘오까이 오까이’ 옷 가게는 ‘garage sale’이 집 차고 앞에서 국가 간으로 확대된 재미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의 비지니스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지만. 하지만 이런 ‘garage sale’이 국가 간에 유통되는 과정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가피 하게 소모되어야 할 에너지(상품의 관리 및 선별, 자금, 유통과정의 노동 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나쁘게 봐야할 필요도 없고 좋게 봐야 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가 헌옷을 팔게 된 건 지긋지긋한 IMF때라고 한다. ‘헌 옷 수출’은 ‘외화 벌어들이기’의 한 수단이었다. 우리는 달러가 필요했고, 헌 옷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필리핀은 옷이 필요했지만 새 옷은 비쌌고 질 좋고 값싼 중고 옷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헌 옷 수출’을 시작되었고 필리핀의 ‘헌 옷 수입’은 시작되었다. 참 괜찮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원리의 한 예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필요한 외화를 벌었고, 필리핀 사람들은 낯설어 더 멋져 보이는 한글이 프린트된 티셔츠나 가방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최근 한국에서 요즘 세상에 옷이 떨어져서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옷이 닳기 전에 싫증나고 오래 돼서 버린다. 그래서 헌 옷을 수거하는 업자들은 이런 옷들을 1kg당 300~500원을 받고 동남아로 그 옷들을 수출해 꽤 짭짤한 수입을 내고 있다고 한다. 또 강남과 같은 고소득층 밀집 지역에서는 헌 옷 수거함이나 재활용품 수거함이 준 명품제품의 전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재활용품 수거업자들 사이에서 ‘물 좋은’ 지역 쟁탈전도 벌어진다고 한다. 어쨌든 모아진 재활용품을 수거업자에게 넘기고 받는 수익금은 지역 부녀회같은 단체에서 관리하여 동네 행사나, 아파트 도서관 만들기 같은 주민들을 위한 공익사업에 사용된다고 하니 옷 쓰레기통에 안 버리고 수거함에 넣는 수고를 한 보람이 있다. 게다가 그 옷들이 배 타고 이웃나라에 건너가 가치를 알아주는 새 주인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한국과 필리핀. 대체 어떤 고리가 연결된 관계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시골 장터의 ‘오까이 오까이’ 옷 가게를 통해 고리 한 개를 찾은 것 같다. 첨부아카데믹 올림픽 에서 찍은 사진 몇 개 올립니다. 저희 잘 살고 있어요~이제 딱 50일 남았네요^^한국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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