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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리핑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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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겟은 우리 단원들의 커뮤니티가 있는 곳으로 단원들 숙소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도시입니다. 올해 뱅겟은 108번째 탄생일을 맞아 도시의 특색인 농업과 광산업을 이용한 관광 산업을 꾀하고 있습니다.11월 15일부터 11월 말 까지 뱅겟 곳곳에서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저희 단원들도 무려 3번이나!! 다녀왔습니다.뱅겟은 대부분 경사진 산으로 이루어진 도시이고 무지무지 커서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어 참 재미있습니다.특히 뱅겟은 1년 내내 서늘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필리핀 사람들이 휴가로 오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지역이지요.이번 108번째 축제를 하면서 외국인 관광객까지 유치하여 지역경제가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저희팀은 지역사회조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진작 이곳에 오자마자 지역사회조사를 했으면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더군요...그래도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알게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럼 다들!! 화이팅이요!
[뉴스 클리핑] #5.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욥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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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욥8:7)”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세시, 아순시온 YMCA 에선 'YMCA Raonatti PRE-SCHOOL'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원래 이 프로그램의 시작 날짜는 10월 14일 이었으나,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충격적인 실패를 한번 겪고, 그 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13명의 아이들로 조촐히 시작할 수 있었다. 때 마침 한국에서 KOREA STAFF이 와있어서 함께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 날은, 풋풋 프로젝트 이외에 라온아띠 다바오 팀이 아순시온에서 추진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된 날이라 할 수 있어 그들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듯 하다. PRE-SCHOOL의 주 대상은 라온아띠 다바오 팀이 담당하고 있는 풋풋 프로젝트의 풋풋 드라이버들의 3-6세 자녀들 이다. 물론 아순시온에도 초등학교에 딸려 있는 병설 유치원과 몇 개의 사립유치원이 있긴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YMCA에서 교재, 학용품, 간식 등 모든 준비물을 제공한다. 물론 비용은 무료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세시부터 다섯 시 까지, 총 두 시간 동안 수업을 받게 되며 과목은 국어인 따갈로 어와 영어, 수학, 음악, 체육, 미술 총 여섯 과목이다. 한 과목당 수업시간은 30분이며,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번갈아가면서 수업하게 된다. 10월 20일, 처음 문을 활짝 연 'YMCA Raonatti PRE-SCHOOL' 은 처음 한달여 동안은 영어, 수학, 아트 수업만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영어는 Cho (박초영,22) 선생님이, 수학은 Isabela(강지혜,21) 선생님이, 음악 · 미술 · 체육을 포함한 아트는 Cherry(김지은,21) 선생님이 맡았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아이들 양쪽 다 서로에게 낯설어 하고 어색해 했지만, 곧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가까워졌다. 나이부터 수준까지 아이들의 개인차가 커서 어느 레벨로 수업을 진행할까 고민하던 다바오팀은 비록 잘못하다 하향 평준화가 될지라도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아이에게 맞추자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영어는 알파벳부터, 수학은 숫자 1,2,3부터 시작해 기초를 쌓는 데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아트 수업은 이 곳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감수성을 기르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선 그리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있다. 길버트의 아버지는 오늘도 풋풋으로 길버트를 태우고 유치원에 직접 오셔서 생업을 잠시 중단한 채 아들의 학업을 지켜보시고 계신다.'YMCA Raonatti PRE-SCHOOL' 프로그램에 대한 부모님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 매 시간마다 아이들과 같이 YMCA 오피스에 오셔서 아이들이 교육받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시고 참여한다. 한 달이 지난 현재, 13명으로 시작되었던 아이들이 금새 스무 명이 되고 어느 덧 서른 명에 육박하게 되면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엔 YMCA 오피스가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가득 찬다. 넉넉하게 샀던 교재와 색연필, 책상, 의자 등이 어느 덧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고, 들쑥날쑥 하던 아이들도 이제 고정적으로 자리 잡혀서 각각의 사진을 붙인 아이들의 이름표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과목도 함께 늘렸다. 현지 YMCA 스탭 중 아이린(21)이 국어인 따갈로어를 가르치고, 앨빈(20)은 음악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비사야어 노래를 율동과 함께 가르친다. 다양해진 과목들만큼 아이들의 마음도 풍성해질 것이다. 월요일과 목요일이면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북적이는 YMCA OFFICE. 처음 13명으로 시작했던 'YMCA Raon atti PRE-SCHOOL'이 한 달만에 26명의 아이들로 정확히 두 배로 늘어났고 매일 새로운 친구들이 오고 있다. 비록 무료 유치원이지만 내용과 질만큼은 사립 유치원을 뛰어넘자는 각오로 똘똘 뭉쳐있는 다바오 팀. “ 각 과목당 할당 된 시간은 30분인데 수업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 덧 30분을 훌쩍 넘겨 저도 모르게 한 시간 동안 수업을 해버린 적도 있어요. 한국에선 고등학생도 50분 수업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데 지루한 기색 없이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기특할 뿐이죠.” -영어를 담당하고 있는 Cho(박초영,22) 선생님. “ 처음에는 숫자 1도 잘 못쓰던 아이들이 어느 새 10까지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선생님의 뿌듯함이란 이런 거구나 하구요. 비가 쏟아져도 꼬박꼬박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 더 힘을 얻어요. 어쩔 땐, 1시간이나 일찍 와서 미리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 - 수학을 담당하고 있는 Isabela(강지혜,21) 선생님. “ 저는 사실 미술을 못해요. 그런데 아트 선생님을 맡았으니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 중요한 건 미술 실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같은 시선을 가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 아트를 담당하고 있는 Cherry(김지은,21) 선생님. 지금은 비록 작은 아순시온 YMCA 오피스에서 열악한 환경 안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아순시온의 소중한 꿈나무들이 되길, 아순시온의 모든 아이들이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아홉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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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폭죽놀이 아순시온에 정착한 초기, 우리는 매일 고된 스케줄에 지쳤었다. 당시는 한국에서 예산이 도착하기도 전이라 ‘풋풋 드라이버 지원 프로젝트’는 시작도 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지역 축제’들 때문이었다. 아순시온 ymca의 사무총장님은 이 지역 시의원을 겸임하고 계신 분으로 아순시온 시장 출신이시다. 그래서 지역 사회의 일에 관심이 매우 높으시며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처럼 사방팔방 지역 사회 곳곳의 일들을 꼼꼼히 돌아보시는 분이시다. 그런 관계로 초기 일거리가 없을 땐 어김없이 따따이(사무총장님)의 스케줄들을 따라다녔었다. 따따이 차에는 항상 빡빡하게 정리된 축제 일정표가 있다. 축제라고 해서 뭐 대단히 거창한 것은 아니다. 작은 마을 단위로 집집마다 조촐하게 음식거리를 장만하여 서로 나누고, 동네 청년들은 농구 경기를 하며 실력을 겨루고, 아이들의 귀여운 장기자랑을 동네 주민끼리 구경하는 것이 그 축제들의 주요 행사다. 또 어디서 이런 정보들은 들었는지 떠돌이 상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한껏 장판을 벌이면 그것으로 축제의 분위기는 왁자지껄 무르익고, 동네 가득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유쾌한 대화소리가 가득 그 공간을 메우면 그로써 축제의 분위기는 정점을 향한다. 열정적인 태양빛을 닮은 필리핀 사람들의 미소가 그런 날은 더욱 밝게 빛난다. 이름도 까먹어 버린 어떤 동네 축제에서.“한국의 축제는?” 하는 단순한 물음이 생긴다. 마을축제란 것이 있기는 한 건지. ‘누구네 둘째 아들이 고시에 합격 했네’ 하는 동네잔치 정도는 있겠지만. 우리의 상식으로 축제라 함은 적어도 ‘보령 머드축제’나 ’청도 소싸움축제’ 정도는 되어야 축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대규모 축제가 그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는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에 지방문화행사로서 지역축제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급속한 속도의 양적증가는 물론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 증대와 지자체의 축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심리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응당 지역민을 위한 즐김의 장이 되어야할 축제는 관의 일방적인 기획과 진행으로 지역민이 소외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재 한국의 지역 축제는 내실 없는 양적인 팽창만 이뤘다는 비판과 함께 지역주민이 배제된 과도한 경제주의적 접근으로 인한 생색내기 식 축제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진정한 축제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되도록 많은 관광객 유치, 성급한 가시적 혹은 경제적 성과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축제를 활성화시켜 보고자 특별 예산까지 마련한 관의 노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돈만 있으면 가능한 문제는 애초에 아니었음이 문제다. 지역축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지역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껏 민간이 주도가 되어 진정한 재미를 추구하며 성장한 축제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의 부재가 지금과 같은 초기 지역 축제 발전의 문제점을 낳은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것은 일방적으로 관의 잘못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현재 지역 축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역 축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관이 아닌 지역주민 스스로가 진행자가 되도록 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전문성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일회성에서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지역민의 관심을 유도할 만한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소재의 축제 운영도 중요하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그 지역에 대한 애착심까지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은 조금 주제넘는 일 일지 모른다. 뜨내기와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확실히 지역에 대한 소속감 보다는 직정에 대한 소속감이 훨씬 큰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눈을 돌려 보자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대 성공을 거둔 것은 그 말장난이 너무 웃겨서가 아닐 것이다. 부쩍 여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소문난 맛집 여행이 인기를 끈 것도 모두 국민의 재미에 대한 욕망이 경제 성장에 대한 욕망보다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의 크기가 변한 것이 국민 개개인 이듯이 재미를 찾고 즐길 변화의 주체 역시 국민 개개인이어야 한다. 정부에 놀 거리를 만들어 달라 할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만들어야 겠다는 적극성이 필요한 때이다. 그 놀 거리를 내가 사는 이 지역사회에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지. 또한 이를 통해 관은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고취시키는 유용한 프로그램으로 축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축제, 브라질 쌈바 축제나, 독일의 맥주 축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등,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그 소재의 독특함이 지역의 특성을 아주 잘 대변해 주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것을 오래도록 즐기고 유지시켜온 지역 주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도 돈만 들여 규모만 늘릴 것이 아니라, 축제의 본 의미에 맞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축제를 바라보고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내가 즐거워서 보는 남도 즐거워 져야지, 보는 남이 즐거우라고 내가 즐거운 척 해서는 안 된다.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는 내 필리핀 생활의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가장 확실히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야자수이기 때문이다. 오늘 문득 그 야자수의 화려한 잎들이 폭죽을 생각나게 했다. 굳이 굉음을 동반한 화려한 폭죽이 있어야만 즐거운 축제인가. 여긴 온 동네 가득 축제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은 초록의 폭죽이 1년 내내 빵빵 터져있는데! 그렇다. 이곳은 365일 소소한 행복을 담은 축제가 있는 필리핀이다. 참고자료 - 박주성 ,지역축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조선대학교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여덟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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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D BLESS YOU 요즘 필리핀은 바쁘다.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종과 전구를 달고 나무를 잘라 트리를 만든다. 그래서인지 시골 아순시온에서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전구들이 반짝이고 지붕 끝엔 주렁주렁 금빛종들이 딸랑이고 병원에는 입원실마다 문앞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찍찍이 부직포로 앙증맞게 붙어있다. 우리나라에선 그 닥 대수롭지 않은 (커플들만 느낀다는)크리스마스를 온 국민이 벌써부터 왠 오버인가 싶지만, 카톨릭이 전체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임을 생각하자 조금 수긍이 간다.라온아띠 면접을 봤을 때, 왜 태국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종교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이 결국 아시아의 평화에도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독교 모태 신앙에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생각해 본 적도, 직접 겪어본 적도 없었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 가서 나의 종교와 다른 종교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고 오겠다.-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의 예상과는 달리 불교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 필리핀에 오게 되었지만, 나는 여기서도 배운 게 참 많다. 일단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물론 메이저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가 있지만), 무교인에게도 너그럽다. 종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당연히 첫 만남에서 종교를 물어보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What is your religion?" 이다. 기독교라고 대답하면 또 그 안에서도 카톨릭이냐 개신교냐, 개신교라고 대답하면 또 무슨 교파냐며 집요하리만큼 깊게 파고든다. “저...그냥 동네에 있는 교회 다니는데요” 초기에는 머리만 긁적긁적 하다가 이젠 “저는 크리스천 프로테스탄이고 그 중 밥티스트 교파에요” 라고 대답하는 게 결국 훨씬 편하다는 걸 알았다. 필리핀에선 아침에 출근하기 전 차안, 일과를 시작하기 전, 학교 수업 전, 마트에서도 성경 구절이 나오고 기도를 한다. 국가 곳곳에 배여 있는 기독교의 냄새 영향인지 지혜는 이곳에 와서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서 주님과 함께하고 있다.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신앙이 조금 깊어졌는지 한국에선 아빠가 숟가락 드시자마자 콧김 뿜으며 돌진했던 밥상 앞에서도 이젠 주린 배 움켜잡고 기도를 한다. 면접 볼 때는 아시아 종교의 다양성과 공존 가능성을 배울꺼예요! 해놓고선 기존의 신앙이 깊어져 가고 있는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리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곳 역시 종교 문제가 평화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카톨릭의 시작을 말하자면, 1521년 3월 16일, 포르투칼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지금의 세부 섬에 도착해서 섬의 원주민들을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곧이어 카톨릭으로 개종한 원주민들에게 스페인의 무력힘을 과시하면서 필리핀을 식민지화 한다. 지금 필리핀에 짙게 남아 있는 카톨릭의 영향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자취이다. 문제는 이 때, 스페인의 통치 기간 중에도 민다나오와 술루열도의 강력한 무슬림들은 개종도 하지 않고 정복도 당하지 않았는데, 그 무슬림들이 바로, 현재 민다나오 섬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는 주범이다. 그들은 필리핀에서 민다나오 섬을 독립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슬림끼리만 모여 살 수 있도록 영토를 내어달라고 요구한다. 처음 라온아띠 국가 중 우리 팀이 스리랑카 다음으로 위험하다고 했던 이유도 바로 무슬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슬림이 이렇게 반발하는 데에는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보다 그동안의 필리핀 역사와 정치 문제와 맞물린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와 불교 대신 필리핀 안에서 이슬람과 카톨릭의 문제를 던져준 라온아띠.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 하나가 생긴 기분이다. 오늘 팀 회의 시간엔 언니랑 지혜랑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얼마전까지 우리의 관심사는 ‘다국적 기업의 침투’ 였는데, 다국적 기업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해 있는지는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주제는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한다. 여담으로, 11월 둘째 주 일요일 ‘THANKS GIVING DAY CELEBRATION(추수감사절)’ 행사가 열렸다. joy네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들은 ‘STILL' 찬송가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조이가 가사를 알려주며 “ 언제 한번 우리 교회에서 이 노래 부를래?” 라고 희미한 바람결에 흘러가듯 말하길래 “응응 그러지 뭐” 라며 나 또한 가볍게 대답한 게 화근이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밴드랑 리허설을 하라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일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벌써부터 부끄러움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저녁이 되자 추수감사절 행사가 시작되었고 한 서너시간 동안 찬송가를 부르고 춤을 췄다. 각 교회의 밴드들이 다 모여서 공연을 했다. 다들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좀 노셨는지 하나같이 노래를 잘해서 기가 팍 죽었다. 그래, 까짓거 일단 지르고 나중에 울자. 밴드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랬는지 못 부른 노래에도 힘껏 호응해 주셨다. 박수를 쳐주시길래 잠깐, 아주 잠깐, 난 우리가 정말 잘 불렀나? 하고 뿌듯했는데, 뒤를 보니 밴드가 셋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끅끅 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 별로였구나, 미안. 추수감사절 행사가 열리고 있는 교회 앞에서 찰칵.토요일 밤 이미 추수감사절 행사때 한번 노래를 불렀지만, 일요일 예배때또 불러달라는 앵콜 요청이 들어와 거의 울면서 한번 더 부르고 있는 중.추수감사절 행사로 점심때, 교회 아이들에게 페이스 페인팅과 풍선아트를 했다. 그림에 탤런트가 없는 나는 페이스페인팅에서 살짝 빠지고, 풍선으로 개를 만들었다.비율을 못 맞춰서 꼬리가 매우 길다 . 지혜와 나의 노래를 듣고 끅끅 거리며 웃음을 참은 그 밴드. 갈색 옷을 제외한 세명이 형제이다. 유키 알란 마키. 훈훈한 3형제라고 좋아했었는데 상처받았다 흑. 하지만 우린 매주 그 교회에 갈 생각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왼쪽부터, 웃는 게 권지용을 닮은 첫째 유키, 웃는 게 오바마를 닮은 막내 마키(잘생겨또꺄) 웃는 게 저승사자를 닮은 둘째 알란. 초영언니가 턱수염이 염소같다고 놀렸다ㅋㅋ 갈색옷 입으신 분은 이미 결혼을 하셨다하니 과감히 패스-)
[뉴스 클리핑] #4. 아카데미 올림픽, 치열한 경쟁의 막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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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올림픽, 치열한 경쟁의 막을 올리다! 필리핀 연맹 YMCA에서 주관하는 아카데미 올림픽의 Local예선이 11월 12일 드디어 시작되었다. 원래는 10월 중 시작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번에는 YMCA의 사정으로 인하여 지연되게 되었다. 아카데미 올림픽은 필리핀 YMCA가 주관하는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로, local예선을 거쳐서 선발된 학생들은 Region단위의 대회에 참가하게 되고, 그리고 그중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Nation단위의 대회에 진출하게 된다. 참가 대상은 elementary school학생과 high school 학생이다. 참가 종목으로는 노래 자랑, 퀴즈 콘테스트, 에세이 작성, 현장에서 그림그리기(spot painting)가 있다. 아순시온 YMCA가 관할하는 지역은 사가옌, 순론, 카팔롱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지역 YMCA치고는 관할구역이 조금 넓은 편이다. 이번 아카데미 올림픽의 local예선은 아순시온의 national high school에서 열렸다. 자신의 학교를 대표해서 참가한 모든 종목의 학생들은 모두 열심히 콘테스트에 임하며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종합적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곳은 사가옌 high school이고 이곳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다바오에서 열리는 region 단위의 콘테스트에 다시 참가하여 National 규모의 콘테스트에 참가할 학생을 가리게 된다. region의 예선은 11월21-22일로 예정되어 있다. * 현장즉석그리기에서 1등과 3등한 학생의 작업모습. 도구는 밑그림을 그리는 연필과 채색을 위한 크레파스가 전부이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보여줬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일곱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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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살이 찐 것 같다는 말이다 -_-(나름 영어권이라서 인지 이곳 사람들의 표현은 정말 직설적이다) 그래서 다들 ‘이곳 생활이 편한가 보다’, ‘음식이 정말 잘 맞나 보구나‘ 라는 말들을 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음식이 잘 맞는것 같다. 전에 인도에 갔을 때를 생각해 보더라도 그때는 음식 때문에 많이 고생했던 것 같다. 원래 워낙 카레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맛있게만 느껴졌던 다양한 종류의 카레들이(콩카레, 녹두카레, 생선카레, 시금치카레 등) 2주일 정도가 지나자 정말 꼴도 보기 싫어졌었다. 그리고 왠만한 음식에서는 할디(카레파우더)의 맛을 느낄 수가 있어서, 인도의 모든 음식은 카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곳, 필리핀에서는 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음식들이 너무 입맛에 잘 맞아서 접시를 향해 뻗어가는 나의 손을 거두려고 노력한 적이 많다. 물론 대부분 실패했지만 말이다. 아마 그러한 것들이 지금의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이 분명할 것이다-_- 그런데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도 요즘 건강해 졌다는 소리를 듣고는 한다. 사실 필리핀에 오기 전에는, 인도에 갔을때처럼 분명히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서 살이 빠질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다이어트를 따로 할 필요 없어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제는 다이어트를 걱정해야 하다니, 아이러니하다. 필리핀 음식이 그토록 나의 입맛에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무래도,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필리핀 고유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한국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러 나라의 음식을 고루 섭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로 일상적인 생활에서 매일 먹는 것은 한식이다.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반찬들과 국, 밥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 필리핀에서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서구식의 음식들과 중국 음식들이다. 이미 내가 익숙해져 있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따따이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가끔씩 약간 입맛에 맞지 않는 야채 조림 같은 것들이 필리핀 가정식이라고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내가 이미 한국에서 자주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필리핀에서 들을 수 있었던 대부분의 노래는 미국의 팝송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나, 사람들이 가끔씩 흥얼거리거나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들 중에서 필리핀어로 된 것은 별로 없다. 필리핀어로 된 노래가 별로 없는 거냐고 물어보니 물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팝송이 훨씬 좋아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들도 대부분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서 빌려온 표현들이다. 그래서 현지 언어를 공부한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필리핀어로 대화를 하고 있어도 어느 정도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대체 필리핀 고유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고유의 것을 지키고 있는 나라가 결국에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는 일본어, 일본음악, 일본 음식, 일본 스타일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도 한국어, 한국 음악, 한식, 한국만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요즘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선진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자신의 것을 지키고 그 나라 특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결국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의 문화들은 주변 다른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신감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가끔은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망언들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필리핀인들에게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선진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한국 드라마들이 필리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블 방송 같은 것을 보면 거의 24시간 내내 어느 곳에선가는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을 정도이다. TV속에 나오는, 수도인 마닐라를 제외하고는 필리핀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층건물들과 좋은 집들, 여러 문화 시설들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부자 나라라는 이미지는 더욱 굳어가고 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묻고는 한다. 어떻게 하면 필리핀도 한국처럼 잘 살게 될수 있는 거냐고 말이다. 특히 1960-70년대의 필리핀의 경제 성장기를 체험한 사람들은 그 당시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였던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하지만 사실 나의 전공이 경영이나 경제에 관련된 것도 아니라서,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면 거의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구태의연한 말들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다른 나라들이 예전에 밟아왔던 단계들 말이다. 정부에서 국내 산업을 장려하고, 보호무역을 실시해서 국내 산업을 보호하면서 무역에서 큰 이익을 남겨 그것을 다시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데 재투자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거의 정설처럼 믿어지는 그런 단계들이 당연한 발전의 단계인걸까 하는 의문이 최근에 들기 시작한다. 국가 발전의 진리처럼 믿어지는 이론을 추종한다 싶을 정도로 따라온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아니 사실은 예전 도입 초기부터 계속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단계를 밟아온 다른 나라들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다른 발전 방법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은 공부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필리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외세 침략의 역사가 길다보니, 자신의 고유의 것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은 분명하다. (필리핀의 외세침략 역사는 우리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스페인 330년, 미국, 일본의 지배를 연달아 받았다. Philippines라는 이름조차도 이곳의 존재를 서양에 알린 탐험가인 마젤란을 후원하였던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딴 ‘Felipinas( 펠리페 2세의 땅)‘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핀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곳인 만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분쟁이 일어나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다양한 문화는 그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다는 것으로, 남들과 차별화 되는 경쟁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들어서, 새삼스럽지도 않은 ‘세계화(世界化)’라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화(化)'라는 말은 무엇인가가 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ㅌ? 그것이 완성되어 ’세계(世界)‘가 되었을 때, 그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일 것인가? 그곳에서 우리는 원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왠지 모르게 나에게 너무 익숙한 필리핀의 음식과, 음악, 언어, 문화 속에서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느 곳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여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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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나는 그 때를 꽤 “재밌었다” 고 회상한다. 요즘 우리의 하루 생활 중 많은 부분들을 함께 하는 스탭은 바로 ‘아순시온의 아이들’이다.세상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아기냄새가 아직도 강하게 배여나오는 두 살배기 꼬꼬마들부터우리 YMCA Pre- school 유치원에 다니는 연령 다양한 아이들, 그리고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놀자고 부르는 동네 골목대장 패거리 아이들까지. 원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도 같이 지냈었는데 11월부터 영어 수업이 끝나면서 아쉽게도 작별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가는 유치원이 병설 유치원이라 초등학교 아이들과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같이 영어 수업을 받은 첫 날, 그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필기도구를 꺼내 바르게 앉아 있던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뒤를 돌아봤다,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을 왔다 갔다 난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책과 공책 필기도구를 가방에서 꺼내놓지도 않는 아이들도 수두룩 했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라지만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절대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러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아주 특별한 상황에만 가능했고 화장실은 손을 들어 선생님께 허락을 맡아야 했고(쉬는 시간에 안가고 뭐했냐는 약간의 눈치를 받으며) 발표를 할 때는 입은 다물고 조용히 손을 들어 선생님이 지명을 하면 일어나 바른 자세로 발표를 했다. 담임 선생님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것들은 비슷했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어김없이 일명 ‘사랑의 매’ 로 손바닥을 맞곤 했었는데, 이건 뭐 한국 가면 손 바닥에 불날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을 하고 계시는 데도 자꾸 말을 거는 옆 짝꿍에게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쯤,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내고 풀어볼 사람? 하자 바로 방금 전 나한테 말을 걸던 앞뒤좌우 아이들이 " Ako! Ako!(저요 저요!) “ 왁왁 소리를 지르며 푸쳐 핸썹을 하는 게 아닌가. 얘네들, 칠판에 써진 문제는 제대로 본걸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내 걱정이 아주 빗나갔던 건 아니었는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들었던 아이들 중 절반은 정답, 절반은 오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답을 틀린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이 그저 씨익- 하고 웃고 만다. 내가 소심했던 건가. 난 내가 발표한 답이 정확히 정답을 빗겨갔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 외에도 칠판 앞에 나가 풀이 설명을 한다던지의 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망설임이나 부끄러움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우리들에게 아이들이 손을 억지로 들어올리거나, 발표 후 얼굴이 빨개진 나에게 "Don't be shy." 라며 토닥토닥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매를 들지 않는 필리핀 선생님과 자유롭게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있는 필리핀 교실과 내가 자란 한국 교실은 아주 많이 달랐다. 선생님이라는 위치가 요즘 아무리 무시당한다 해도 유교 문화권 테두리 안에 있는 스승은 여전히 높고 어렵다. 그리고 엄격하리만치 학생들의 바른 태도를 중시하는 것도 그런 영향권 안에 있는 국가들의 당연한 모습이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존재하는 교실과 어른과 아이, 상하 위계질서가 각 잡혀있는 예의바른 교실. 처음엔 -필리핀의 모든 것이 우리보다 좋아보이던 그 시절-엔 이 아이들을 보며 한국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랐으면 그 똑똑한 아이들이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무대체질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하지만 아이들을 3개월 동안 관찰해보니 그렇게 했더라면 절대 우리나라가 이 만큼 성장할 수 없었겠더라. 비록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질문하고 자기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시간은 이 곳 아이들보다 훨씬 더 적게 누렸겠지만, 가나다를 배우건, 영어 알파벳을 배우건, 분수와 소수를 배우건 성실히 노력하고 빠르게 습득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결코 작은 게 아니더라. 한 국가의 자라나는 꿈나무로서, 우리가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지녔던 사명감과 학업에 대한 착한 의무감을 단지 불쌍하다고 가볍게 표현할 게 아니더라. 대학은 고등 교육이니까 어려운 게 맞다. 10년 동안 지겹도록 학교를 다녀놓고도 더 공부하겠다고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이 대견하다. 내가 말한 것처럼 한국 교육이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지만 오늘은 복잡한 다른 문제들은 일단 다 제쳐두고 열심히 사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가 이 곳에 와서 직접 보니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학생들이 모두 너희처럼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지만, 도망가지 않고 그 치열한 곳에 남아서 하루는 웃으며 또 하루는 울기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멋지지 않니. 추운 수능장에서 몸과 마음을 덜덜 떨던 것 까지도 이 곳 아이들은 평생 겪지 못할 우리들만의 특별한 기억이지 않니. 그러니까 혹여나 억울해 하지 마렴. 나중에는 그 모든 게 참 “ 재밌었다” 고 회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수능을 보는 지혜 셋째 남동생도, 어제 걱정했다던 물리 시험 꼭 대박나길!(니네 누나는 며칠전부터 초긴장 상태야! ) < Sonlon high school 학생들과 >
필리핀 바기오 여섯번째 에세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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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6. 높고, 넓고, 깊게.. 1) 중간평가 이후. 지난 10월 24일~ 27일 원팀장님과 지혜간사님의 방문과 중간평가 이후에 생활과 활동에 있어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달라졌어요. (잠시동안!) 1기 바기오 팀으로서의 사명감이 생겼고, 무언가 제안하거나 요구하는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중간 평가 이후에 바로 라온아띠 프로젝트 제안서를 준비하면서 연일 계속되는 회의가 피곤하기도 했지만, 완성하고 나니 매우 뿌듯한 느낌이 좋았어요♡ 2) Community center work 첨부한 사진이 Tuding 지역 Community center 활동 모습입니다. Pig pen 근처에 울타리를 만드는 모습이에요. 현지 관계자 두 분과 우리팀 5명이 땅을 파고, 나무를 깎고, 돌도 캐고, 못질도 하면서 수작업 100%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 ) 3) 추위, 그리고 단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바기오의 날씨. 요즘엔 더 추워졌어요.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은 가디건, 니트 들이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잠 잘때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옷을 아래위로 두세겹씩 껴입고 담요을 세 장이나 덮어도 한파가 느껴져요. 필리핀은 더운 줄로만 알았는데, 바기오는 역시 좀 달라^^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엔 연일 단수가 계속 되었습니다. 몇 일동안 비가 안오고 쨍쨍한 날씨가 원인이었어요.물탱크에 받아둔 빗물이 떨어져서 화장실에 물이 뚝 끊겼습니다. 그나마 에세이를 쓰고 있는 지금, 비가 많이 와서 이젠 걱정 없어요. 이젠 바싹 마르지 않는 빨래 걱정이.. +) 얼마전에 민다나오 YMCA에서 손님들이 오셔서 다바오팀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ㅠ 다들 보고싶어요♡여섯번째 에세이는 여기까지 입니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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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하루는 길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뜨겁고도 강렬한 필리핀의 낮이 지나고 고요하고 적막해진 검정색 밤이 오면 우리는 일제히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 우리 오늘은 무슨일이 있었지?하루 일과를 곰곰히 되짚어보면 마치 어제 있었던 것 같은 아득한 일이 오늘 일이라는 것에 우리는 가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긴 하루들이 촘촘히 모이자 거기엔 짧게만 느껴지는 2달이 있다. 그래, 믿기진 않지만 어느 덧 절반이다. 어느 때,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 건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은 고백한다.한국에서부터 이 곳에 와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코 그게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였다고는 말 못하겠다. 우리가 겪었던 모든 어려움과 갈등, 그리고 거기서도 발견했던 소소한 행복까지 모든 것은 한 길로 통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긴 긴 필리핀의 하루를 힘겹게 꿀꺽 넘겨야만 했다. 각자 그 누구 할 것 없이 고독에 빠졌고, 그것이 타국에 와서 느끼는 감정이 아닌 이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옆 친구를 다독여주지 못하는 나의 작은 그릇을 책망하고. 집 안 모서리 모서리마다 고스란히 배여있던 경계심들이 밖에 나간다고 없어질 리 없었다. 각자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 어루만져주느라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은 만져주지 못했다. 우린 하루하루 여유를 잃어갔다. 왜 하필. 왜 하필.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많고 많은 50명 중 왜 하필, 이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땅땅 내리쳤고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은 어김없이 슬퍼졌다. 한국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던 그 때.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가장 큰 중심이 결국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접했을 땐 너무나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뒤, 우리는 또 한번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한 사람은 떠났고 세 사람은 남았다. 다섯이 넷이 되고 넷이 셋이 되고. 그 셋은 잘 할 수 있을까. 다섯이서도 삐걱대던 일들을 셋이서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 섞인 질문들에 답을 얻은 건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는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였다. 그 동안 내부문제로 집중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에 돌입한 우리는 그제서야 그동안 몰랐던 아순시온의 또 다른 모습들을 하나 둘 발견했다. 왜 넌 이곳은 할 일이 없다고 불평 했었을까. 지금쯤 한국에 있을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그 답을 얻었다고. 그리고 그건 순전히 우리의 태만함 때문이었다고. 여러 날의 회의를 통해 드디어 프로젝트 주제가 정해지고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한달음에 자료를 구해왔다. 밤새 그 영어자료를 번역하고 제안서, 한글 프리젠테이션,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과정마저 몸은 고통스러웠을지라도 마음은 편안했다. 우리들 스스로도 조금씩 잃었던 여유도 되찾았고 닫았던 마음도 열었다. 그리고 다섯 중에 둘이 없다는 것에서 우리들도 모르게 느끼고 있던 자격지심도 극복했고 셋이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우리는 팀 이름처럼 킹왕짱 다바오팀이 아니라는 걸.킹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짱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여자 세 명일 뿐이라고.우리는 남겨진 셋이 아니라 처음부터 셋이었다고.셋이서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네 옆에 있어주겠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린,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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