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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사설 - 쌀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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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li Weekly 2008. 11. 20-26.일자 사설 쌀값. AMP정부는 지역에서의 쌀값 조정을 계속 하고 있다. 처음에 정부는 쌀값을 낮게 조정했다. 35kg 한 포대에 16달러에서 12달러로. 어느날, 정부는 211,448 포대, 총 7,772ton 을 사람들에게 16달러에 팔기 위하여 준비했다. 이 가격은 가게에서 파는 가격에 비하면 매우 낮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캠페인 같지 않았다. 실제로 16달러인 쌀 값이 17~20달러로 올랐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서는 같지 않은 쌀 값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주, 정부는 쌀 값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국제 유가의 하락이라는 이유로 한 포대에 12달러로 바꿨다. 상점들은 8-9달러로 정부로부터 직접 쌀을 구매했다. 우기에 다다라서 싼 값의 쌀을 구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기 때문에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즘 낮은 가격에 분배된 쌀들을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정부가 낮은 가격의 쌀의 분배를 제한하고 있을까? 만약 상점들이 정부로부터 받을 쌀을 이 시기에 팔지 않고 쌀 위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중에 더 높은 가격으로 팔지 않을까? 낮은 가격의 쌀의 판매 과정이 불투명하다. 사람들은 어디서 낮은 가격의 쌀을 살 수 있는지 정보를 얻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쌀을 판단 말인가? 정부는 쌀의 분배를 잘 해야 한다. 그래서 쌀들이 쌀의 시세를 조정하려는 자들에게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왜냐하면 쌀을 사는 데 쓰인 예산은 대부분이 경제 안정화 펀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말 회계 감사가 끝났을 때, 예산 집행은 100%에 달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러한 예산 집행의 결과를 보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AMP 정부는 그들의 리더쉽에 대한 위험을 읽게 될 것이다. 특히 예산 집행에서. -> 동티모르는 산악 지대가 많아서 쌀을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부터 많이 수입한다. 몇달전의 기사에서도 태국의 홍수로 인해 쌀값이 크게 오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민들의 주식에 대한 적절하고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
[NEWS] ASEAN의 회원이 되기 위하여 인적 자원을 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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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li Weekly 2008. 12. 3.일자 1면 ASEAN의 회원이 되기 위하여 인적 자원을 늘리자. ASEAN(동남아 국가 연합)의 회원국이 되기 위하여 동티모르는 인적 자원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 발전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ASEAN에 대한 인식을 위한 워크샵에서 Agus Tarmidzi(senior advisor for ASEAN Affairs to the Foreign Ministry of Timor-Leste)가 말했다. "우리는 동티모르 정부와 함께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정부가 사람들에게 ASEAN이 무엇이고, 가입 시에 어떠한 이익이 동티모르에 있을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2012년에 동티모르는 ASEAN의 멤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한 인사는(Celso Fonseca, National Meteorology) 동티모르가 2012년에 ASEAN의 멤버가 되더라도, 여전히 강한 경제 시스템과 인적 자원에 대한 결핍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좋은 경제 시스템을 향상시키고 운영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동티모르가 ASEAN의 회원이 된 후에 동티모르는 ASEAN 자유 무역 협정(AFTA)을 2015년에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ASEAN 선언(협정)의 6번째 조항은 만약 신생 국가가(동티모르 같은) 회원국이 되길 원한다면, 그 국가는 경제 발전, 안정성의 향상, 지역 사회의 삶의 질 향상, 인적 자원의 강화와 같은 일정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동티모르 정부는 ASEAN 회원국으로써의 이익을 얻기 이전에, 매년 회비를 내고, 회의에 참가하고, 회의를 개최하는 등등의 일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회원국으로써의 이득은 건강, 교육과 그 외 국가의 다른 분야를 포함한다. 동티모르는 ASEAN의 회원이 되기 위하여 그들의 인적 자원을 향상시키고 풍부하게 해야 한다. ASEAN은 1967년 8월 8일 태국의 방콕에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의 초기 5개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지금은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을 포함하고 있다. --- 아세안 가입 관련 현지 분위기는 반기는 듯 하다. 딜리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아세안 가입과 관련된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사에 보면 아세안 자유 무역 협정에 대한 언급도 있다. 2015년쯤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는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가 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득과 실을 냉철히 따져보기를 바란다.
[뉴스클리핑] 49%의 아이들이 가난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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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li Weekly 2008. 12. 3.일자 1면-3면 49%의 아이들이 가난 속에 살고 있다. 2001년과 2007년 사이에 세계 은행(World Bank)에 의해 조사되고 최근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49%의 아동, 3%의 노인들이(?? 이 수치는 오타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네요^^;) 가난한 상태로 살고 있다. 이 조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 기반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티모르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의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동티모르의 하루 1인당 평균 임금이 기본적인 가난 수준인 US 0.88 미만이다. (The average wage in Timor-Leste is under the basic poverty level of US 0.88 per person per day.) 인구의 증가와 함께, 실업률도 증가하고 있다. 이 나라의 가난을 줄이기 위해, 동티모르의 정부는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이 나라의 미래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위해 경제 활동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 이 의견은 세계은행의 대표인 Antonio Franco 가 "발전과 인구"라는 세미나에서 말한 의견이다. Antonio는 2001-2007 조사를 근거로, 많은 동티모르 사람들이 기초 가난 수준인 1인당 하루 US 0.88 미만의 가난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는 증가하고 있고,(The population is significantly increasing compared with the virility tax) 이는 미래에 문제가 될 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세계 은행은 인구 수준, 생산적인 건강 정책 강화, 핵가족(small families-소규모 가족?)의 이득에 대한 교육, 보건 부문의 개혁, 효과적인 가족 계획 프로그램의 보급과 관련된 조건들을 충족시킬 것을 권했다. 세계 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동티모르의 경제 상황은 1인당 소득은 줄어들고 있고, 인구의 증가로 인한 가난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제 성장의 가속을 위해 세금을 줄일 필요가 있다. 3%의 인구 증가가 있다.(?) 한편, 국회 부의장 Vicente Guterres는 국회의 의원수를 유지하기 위하여, MPs(여당?)는 인구에 신경을 쓰고, 발전을 촉진하고, 가난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의원들은 정부가 가톨릭 교회와 제휴하는 것을 포함한 정책들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 문제는 심각한 것이어서, 국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The issue is serious, so it should have a national conscience.) 한편, 국회 부-부의장인 Maria Paixao는 동티모르가 어떻게 가난과 질병을 줄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더욱 강조했다. 위의 조사처럼 인구가 증가한다면, 각 아동의 탄생 간의 평균 시간은 12달이다. 각 아동의 탄생 사이에는 여성이 스스로를 돌보고 아이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것은 세상의 가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2020년에는 동티모르의 인구가 적어도 300만명은 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임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달력의 이용을 통해, Natural KB 방법을 통해, 교회에 반하지 않고 인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만약 엄마들이 한 아이를 더 낳길 원한다면, 그들은 3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다음 아이를 위한 준비를 할 수가 있다. ---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된 기사인 듯 하다. 위 기사의 불명확한 통계 수치자료를 찾아보고자 세계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timor까지 검색했으나, 영어문서인지라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서…^^; 동티모르의 현재는 높은 실업률과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인듯 하다. 그 속에서 경제 성장을 하고자 하는데,,,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업에 기반을 둔 생활을 하고 있고, 수도인 딜리의 경우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루 빨리 산업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것인가?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에 의해? 어떻게 파괴적이지 않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것에 대한 물음은,, 이 곳의 현지 사람들과 함께 해야하는 물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 농업 기반 사회라 해서, 앞으로 쭉 그렇게 유지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 또한 이미 많은 격차가 나버린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서도 힘들 것이다. 세계 은행의 보고서와 코멘트가 기사에 인용되었는데, 세계 은행의 조언이 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 곳의 사람들이 앞으로 겪게될 산업화? 세계화? 속에서 비판적인 태도로, 조심스레 결정하기를 바란다. 앞으로 어떠한 태도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
[뉴스클리핑] 건강부가 지방의 에이즈를 관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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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li Weekly 2008. 12. 3.일자 1면-2면 건강부가 지방의 에이즈를 관리하다. 건강부가 최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동티모르 사회에 에이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 그룹을 조직했다. '에이즈를 예방하는 위원회' 부대표는 커뮤니케이션과 이해의 부족으로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지방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에이즈의 위험성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하기 위해 정보에 대한 보급이 필요하다. 건강부, 에이즈를 예방하는 위원회, 현지 NGO, 국제 NGO 그리고 사회가 함께 일함으로써 예방과 치료에 대한 인식의 확대와 보급이 이루어 질 것이다. 현재까지 동티모르에 56건의 에이즈가 확인되었고, 11명의 사람이 죽었다. 이는 동티모르에서 에이즈의 전염과 관련된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아직까지 에이즈 환자를 위한 시설이 없다. 건강부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는지 모르고, 단지 에이즈 관련 식별만 계속되고 있다. 건강부 산하의 전염병 관련 부서의 대표는 12월 1일인 세계 에이즈의 날을 기념하여, 건강부는 사람들이 아직 에이즈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에이즈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사람들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공유와 교육 제공과 함께, 건강부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워크샵을 진행할 것이다. 이 것은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을 교육시켜서 그들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를 돌볼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다른 사람들로의 전염에 대한 위험성을 이해시키고, 그로 인해 그들이 어떻게 전염을 막을 수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 건강부와 국내와 외국의 NGO들의 중재는 간염 가능성이 높은 그룹-매춘부, 동성애자, 군인, 경찰, 택시기사, 호텔과 술집과 디스코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중점을 둘 것이다. '에이즈를 예방하는 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의 실행을 위해 모든 정부 그룹을 조정할 것이다. 건강부는 국가에서부터 낮은 단계의 행정단계까지, 모든 정부 단체가 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건강부는 에이즈가 티모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에이즈를 줄이고자 한다. 티모르 사람들은 에이즈 예방을 꺼려해서는 안 된다. -> 에이즈 뿐만 아니라, 동티모르의 전반적 의료 시스템에 대한 보강이 필요할 것 같다.
[에세이-21] 로뚜뚜에 사는 다미아나 by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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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 선생님은 몸이 탱탱 부었고, 마음씨 나쁘고, 사람 안좋아요!!!” 로뚜뚜 마을에서 다미아나가 나를 보면 항상 하는 말이다. 다미아나는 12살의 작은 여자 리더라. 그녀는 동네 여자 아이들을 거느리면서 다닌다. 그래서 로뚜뚜에서 다미아나가 하는 말을 들은 여자 아이들은 똑같이 그 말을 따라하면서 나를 놀린다. 몸이 탱탱 부었다는 것은 로뚜뚜 천막 숙소에서 자면서 온 몸에 벌레가 물린 자국을 다미아나가 운 좋게 본 것이다. (사메와 로뚜뚜에서 나는 자주 상의를 벗고 다닌다) 마음씨 나쁘다는 것은, 아이들은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내가 수업 시간에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벌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 안 좋다는 것은 이렇게 다미아나가 나를 놀리면 난 뛰어나서 그녀를 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미아나를 동티모르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 나에 수업시간이 되면 교실로 뛰어 들어와서 맨 앞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가장 열심히 나에 말을 경청한다. 거의 유일하게 집에서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 아이다. 가끔 팀사정으로 1주일정도 로뚜뚜 학교 수업을 못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기다렸다고 말을 해주는 미워할 수 없는 아이다. 우리들(라온아띠 사메팀)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메의 가브라키 아이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들 근처에 오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로뚜뚜 아이들(그래서 로뚜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사메라는 같은 지역의 두 마을이지만 아이들의 성격은 너무나 다르다. 다른 팀원들은 적극적이고 정감 넘치는 가브라키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수한 로뚜뚜 아이들이 더 좋다. 로뚜뚜 마을은 5개의 부락이 모여 있다. 우리가 지내는 로뚜뚜 마을 부락의 첫 번째 길목의 집이 다미아나의 집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해주고, 떠날 때 가장 오래 우리를 배웅해 주는 다미아나. 우리의 숙소 근처로 놀러오지만 멀리서 보기만 하고, 이리 와라고 부르면 도망가는 다미아나. 하지만 학교에서는 가장 적극적은 아이. 한국 초등학생들에게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물으면 의사, 대통령 등 다양한 직업이 나온다. 하지만 동티모르에서는 이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답변을 하지 못한다. 너무나 현실의 생활에 치우쳐 살기 때문에 자신의 꿈과 미래를 생각하고, 그런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러움 많고 그러면서 장난기 많고, 공부에 욕심이 많은(테툼어로 된 책이 없어 영어를 빨리 배워 많은 책을 읽고 싶다고 한다) 다미아나. 자기만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품고 살아가는 다미아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 사진설명 로뚜뚜 학교 5, 6학년 수업 시간에 교실 안에서 찍은 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가 나이고, 두 번째는 릴리아나, 세 번째가 다미아나 이다.
[에세이-20] 세계지도 by 양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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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 아반이 나에게 물었다. " 브라질이 어디야? " 나는 말했다. " 멍청하냐? " 나는 침대에 누워 멍 때리고 있는 두보오빠에게 가서 물었다. " 오빠 브라질이 어디에요?" 두보오빠는 말했다. " 말세다.. " 이런 제기랄,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말세라니. 나는 말했다. " 이건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7차 교육과정의 문제라구요. " 두보오빠는 말했다. " 이런 건 혼자라도 했어야지. " 어이구야.. 잘나셨네요.. 몇일 후 나는 세계 지도를 벽에 붙였고 오늘부터 아반과 나는 심오빠에게 1시간씩 세계지도 특강을 듣는다. 무척이나 재밌다. 이제 남아메리카가 어딘지 아프리카가 어딘지 알 수가 있다. 세계지도를 가슴에 품은 라온아띠 1기가 되어야지.
[에세이-19] 독립기념일에 웃다 by 홍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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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에 웃다 라온아띠 1기, 동티모르 사메팀 1. 오늘은 2008년 11월 28일 금요일이다. 지금은 오전 8시 27분, 나는 조금 들뜬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로부터 티모르 레스떼가 독립한 기념일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오늘을 기념하려는 티모르 사람들은 대단했다. 우리 숙소 바로 앞에 사는 마을의 유지(有志)는 소(牛)를 잡았다. 기쁜 마음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싱싱한 생고기를 우리에게도 가져다주었다. 여담이지만, 안주(양은정)와 나는 그 고기를 아픈 두보 오빠를 위해 힘겹게 구해온 거라고 거짓 영웅담을 지어내 자랑했지만, 거짓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짭쪼롬하게 양념한 소고기를 먹으며 우리는 앞집에다 대고 ‘Obrigada(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2. 간밤에 ‘기념 의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밤새 이어졌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누누(두호오빠)만이 참석했다. 나는 어두운 야외에서 모여 있을 많은 사람들과 취객들이 두려워 숙소에 남아 아르만두, 아띠와 함께 <City of God> 영화를보고 있었다. 누누의 외출은 생각보다 길었다. 총격전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금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무사히 돌아올까? 별 일 없겠지? 그리고 별 일 없이 돌아온 누누. 다녀온 이야길 간단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가브라키 초등학교의 꼬맹이들도 부모님과 함께 그 자릴 찾았다고 했는데, 여자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모두 남자 아이들만 왔더란다. 티모르 전통 술도 한 잔 얻어 마셨다는데, 영 맛이 별로였나 보다. “비추야, 비추!”하며 고갤 흔든다. 마을 청년들도 모두 모인 그 자리, 사람들 소리가 숙소까지 들렸다. 의식 속의 노래와 춤은 디스코텍 같은 시끌벅쩍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가만히 앉아 듣기에도, 의식이 치러지는 동안 들리는 노래는 노래라기 보다는 주술을 읊는 소리 같기도 하고 염불 소리 같기도 했다. 낮은 소리지만 강하게 공중을 떠돌아다니는 소리가 계속 되었다. 누누 오빠의 설명도 그랬다. 춤 역시 화려한 춤이 아니라, 정말로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약간의 몸놀림 정도가 오랫동안 계속 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자리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그리고 잠이 든 후에도 그 노래와 춤은 계속되었다. 나는 문득문득 잠에서 깨곤 했는데, 잠이 든 새 꾸었던 꿈과 집 밖에서 들려오는 그 노랫소리가 섞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몇 시까지 계속된 걸까. 6시 반, 아침 빵을 사러 나간 아띠(효정이)가 들어와 키득키득 웃으며 말한다. “빵 굽는 아줌마들도 다 밤 새셨나 봐. 다들 눈이 퉁퉁 부어있어.” 3. 전기(電氣). 3일에 한 번씩 완전한 정전의 날이 있고, 나머지 날에는 저녁 6~7시 무렵부터 12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오는(사정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다.) 사메에서, 어제는 6시 즈음부터 약 12시간 동안 내내 전기가 들어왔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화장실이며 사무실 방 안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니, 들어온 게 아니라, 들어온 불이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미 충전이 완료된 노트북과 카메라는 여전히 코드를 꽂은 채 벽에 달라붙어 있었고, 여전히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말라리아 양성 반응 판정을 받고 무조건적인 휴식 상태에 강제 소환된 두보 오빠는 자다가 깨서 전기가 나가지 않은 걸 보고 ‘아직 자정이 안 됐구나.’ 했단다. 깨고, 깨고, 또 깨도 ‘자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 잠결에 당황스러웠다며, 아침에 일어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웃었다. 아침 빵을 먹으며 꺼내는 이야기도 모두 이 신기한 ‘12시간 들어온 전기’ 이야기였다. 만약에 우리나라에도 ‘3.1절 전야제’라 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 날을 기뻐하며 음식을 나눠 먹고 노래하고 잔치를 즐긴다면? 그리고, “‘특별한 날’이라고, 오전에도 전기가 들어온다면?” 이라는 대목에서 모두 쓰러졌다. (완전 깜빡했다. 우리나라는 24시간 전기와 만나는 구나.) 아침, 무심결에 충전기를 콘센트에 연결하던 아띠가 ‘아차!(전기 안 들어오지.)’하는 순간, 놀랍게도 전기가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 경건하게 앉아 랜턴 불빛으로 책을 보고 있었는데,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왔다! 정말로 전기가 들어온 거다! 커다란 오디오를 돌려 노래를 크게 틀었다. 티모르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는 신나게 듣는다. 녹음을 해서 트는 건지, 매일매일 생방송인지 모를 티모르의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신나는 티모르 음악도 한 곡 흘러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하며, 노트북에 전기 밥을 줘가며, 수필 하나를 쓴다. 오늘은 동티모르의,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 기념일. Loron-bo'ot tebe-tebes(정말정말 큰 기념일)다. *이 날 결국은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전기가 나갔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6시 무렵,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는 사실! 사메가 최고다. 2008. 11. 28 금요일 홍연지(Aban) iamheypk@gmail.com
[에세이-18] 말라리아 첫 타자 기념 에세이 by 양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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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첫 타자 기념 에세이 clear , sat 22 Nov 2008 D - 59 지난 9월초 일주일에 한 알씩 먹던 말라리아 예방약이 내 몸속에서 뒤틀렸다. SAO MIGUEL 학교에서 돌을 나르던 나는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빈혈이 쏟아지는 말라리아 부작용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날 이후로 효정이와 나는 그 비싼 9만원 돈의 말라리아 약을 접었고 그렇게 말라리아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로부터 약 2개월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고 사메 에서의 활동으로 몸이 많이 지쳤다. 그리고 비자연장을 위해 인도네시아를 가야했고 일주일동안의 딜리 휴가가 다가왔다. 우리 팀은 흥분했다. 딜리에서는 답답하지만 인터넷도 할 수 있고 에어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깨끗한 물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전기도 있고 고기도 먹을 수가 있다. 우리 팀은 딜리를 가자마자 인터넷 카페를 다녀오고 뷔페에 가서 고기도 실컷 먹었다. 죽었던 몸이 되살아나는 기분 이었다. 다음날부터 딜리의 풍부한 전기를 맛보기 위해 영화 황진이와 크로싱을 연달아 보는 중이었다. 보람언니가 튀겨온 설탕 듬뿍 묻은 빵이 속에서 느끼함으로 가득 찼다. 저녁에 되니 너무나 더부룩해 동티모르에 와서 처음으로 식사를 거르게 되었다. 저녁 시간 나는 온몸이 추웠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갑자기 쐬어버린 에어컨 바람에 냉방병인줄만 알았다. 동화간사님은 나의 온도를 재더니 " 말라리아네 "라고 하셨고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괴로운 밤을 보냈다. 다음날 9명의 단원들은 인도네시아로 갔고 동티모르에 와서 가장 큰 발전을 보인 정현이는 뜨거운 물을 끓여 차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마움을 느낄 새도 없이 아팠다. 나는 침대에 뻗었고 간사님은 클리닉에 가서 말라리아 체크를 해보자고 하셨다. 택시를 타려고 문을 열고 나갈 때 배가 심하게 아파왔다. " 간사님, 클리닉에 화장실 있어요? " " 화장실 가야돼? 그럼 여기 화장실 쓰고 가자 " 그대로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화장실에서 30분 동안 앉아 있었다. 설사로 인해 밑으로 빠지고 헛구역질을 했다. 일어서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 머릿속의 뇌가 흘러내리는 기분이었고 빈혈은 최절정에 달했다. 나는 정말 한걸음도 걸을 힘이 없었다. 그대로 침대로 가 쓰러졌다. 간사님은 현지인 친구를 불렀고 YMCA 숙소 앞으로 '요디'라는 현지인 친구가 트럭을 몰고 왔다. 나는 그 트럭을 타고 클리닉으로 가는 도중에 창문 밖으로 노란 물을 퍽퍽 토해 내었다. 아.. 그 광경이란.. 무슨 트럭에 찌나인지 자판인지 꼬레아인지 모르는 외국인 여자애가 토를 하면서 지나간다.. 그때 수많은 현지인들의 눈빛을 나는 느꼈지만 그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당장 나는 죽게 생겼으니까. 클리닉에 도착해 나의 짙은 피 몇 방울을 드리고 간사님과 요디는 마트에 금방 갔다 온다며 가버렸다. 나는 검사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클리닉 앞 의자를 벽에 붙이고 쓰러져 있었다. 그때였다. 내 앞에 앉아있는 티모르 대학생 정도로 되 보이는 남자 3명이 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런 죽일 놈들 내가 모를 줄 알고 3번씩이나 찍는 것들, 나는 맘 같아선 내 피를 헌혈해 말라리아에 걸리게 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힘도 없었다. 의사는 나를 불렀다. " 말라리아 로스까? (말라리아 맞나요?) " "로스 (맞습니다) " 그대로 나는 약을 받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나를 위해 간사님은 한국에서 가져온 버섯스프와 식빵 두 개를 준비해 주셨다. "이것도 안 먹으면 약 먹고 속 더 뒤집어 진다 " 나는 오랫동안 식빵 두 개와 스프를 먹었고 딱 봐도 거부감이 생기는 말라리아 약 3개를 5분 간격으로 먹었다. 크기도 큰 알약은 내 목에 걸려 덕분에 식빵 한 개를 더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로 또 쓰러졌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거렸고 나는 이때의 생각을 말했다. " 간사님.. 제 나이가 한 60됐다면 안락사를 놓아달라고 했을 거예요 .. " 그렇게 생애 첫 말라리아를 만나고 딜리로 올라갔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일은 또 터졌다. 배가 아파서 죽을 것 같은 것이다. 새벽3시50분.. 나는 아반을 깨우러 거실로 나갔다. " 아반.. 나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손 좀 따줘 " 아반은 항상 그렇듯 어느 때 깨우더라도 안자고 있던 사람처럼 일어나 나를 간호해 주었고 곧 간사님도 함께 나를 간호해 주셨다. 따뜻한 팩을 배에 붙어주었고 아반은 내 옆에서 잤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의 상태는 점점 양호해져 갔다. 로뚜뚜를 가는 날, 아직 호전되지 않은 나는 마흔 줄리앙운과 사메집에 남고 딜리팀과 간사님은 딜리로 우리팀은 로뚜뚜로 올라갔다. 처음 혼자 있어 보는 시간 나는 진정으로 무서웠다.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깜짝깜짝 놀랐고 그 첫날 저녁에 전기가 안 들어오는 날이었다면 나는 혀 깨물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도 그렇게 징그럽게 무서운 날을 보내려고 하는데 누누오빠 목소리가 들린다. 심오빠와 아반과 아띠도 왔다. 동티모르 특성상 수업이 없다는 통보를 받지 못해 고생해서 올라간 그 높은 로뚜뚜에서 "빨리 와" 내 한마디가 생각나 하루먼저 4시간 되는 그 거리를 2시간 만에 내려온 우리 팀.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올릴까. 나 아팠다고 투정 부리는 거? 위로 받고 싶은 거? 3개월 동안 라온아띠 1기 단원으로 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리고 슬픈 소식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핸드폰 없이도 MP3없이도 internet없이도 전기 없이도 한국음식 없이도 씻을 물 없이도 다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 없이는 못 산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 사람에게 기대어 사는 것 이다. 사람이 없다면 사람은 외로워서 살 수가 없다. 곧 죽을 것이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 이 말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 나에게 깨달음을 주다니.. 국내훈련을 포함한 6개월의 시간이 나에게 도움을 줄지 손해를 줄지는 모르는 상황 이었다.모든 것은 내 자신에게 달려있었다. 지금 3개월이 된 시점에서 아직도 이 5개월 동안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단원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끝난다는 거. 나는 어쩌면 죽을 때 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 깨달음을 진정으로 깨달아 버린 것 이다. 더군다나 나는 보너스로 아시아 연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과 실천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제대로 손빨래 하는 법도 배웠다. 여러분 나는 이미 5개월을 성공 했습니다.
[에세이-17] 종교 관용? 동티모르 속 이슬람 by 심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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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관용? 동티모르 속 이슬람 2008년 6월 26일자 Dili Weekly에 관심 가는 기사가 보였다. 이슬람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언뜻 이해가지 않은 부분이었다. 동티모르 인구의 98%가 자신을 가톨릭이라 부른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영향이다. 이런 이유로 서쪽으로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 이전까지 이슬람과는 동떨어진 땅이었다. 이런 면에 비추어보았을 때 주간지에 한 면을 차지한 기사는 의외였다. 기사에 의하면, 과거 적지 않은 무슬림이 있었다. 하지만 1999년 자치-독립 선거 당시의 사태, 2006년 유혈 사태 등을 거치며 많은 무슬림이 떠나갔다. 떠나간 무슬림은 인도네시아 인이거나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동티모르인 중에는 사실상 무슬림은 적었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동티모르의 어두웠던 시절에 호국 종교와 비슷한 존재였던 듯하다. 이제 남은 무슬림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딜리 Markoni에 모스크가 있지만, 외국인을 위한 면이 많다. 모스크의 상황도 좋지 않다. 창유리 안쪽이 부서져 있고, 천장은 썩어있으며, 바닥 타일은 깨져있다. 딜리의 유일한 모스크는 재정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이며 존재 자체가 가장 큰 의미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는 무슬림에게 학교이며, 집이고, 연대의 장소이다. 또, 불안정한 정국에는 피난의 장소가 된다. 교육 방식은 동티모르의 방식과 현격히 다르다. 동티모르 학교의 경우,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레자'가 조례와 종례에 행해진다. 상세한 교육 내용도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기사 중 가장 염두 하여 읽은 부분은 종교관용에 관한 부분이다. [ 2006년의 불안한 시기 동안, 딜리에서 몇 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근처의 수 십 채의 오두막집은 불탔지만 모스크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모스크의 직원은 어떠한 박해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티모르는 이러한 종교적 관용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rifulloh는 "우리는 모두 티모르인이다. 우리는 가톨릭과 무슬림 사이에 사실상 차이가 없음의 예시를 세계에 보여주길 원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스크가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직접적인 침입과 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투석과 같은 간접적인 피해는 받았다. 이러한 점을 차치하면 2006년 사태에 무슬림이 희생자 그룹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할 일이다. 하지만 이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적 관용, '나는 너의 종교를 인정하고, 너는 나의 종교를 인정한다.'라는 명제에 부합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항상 통계 이면엔 또 다른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티모르의 98%가 가톨릭이고, 1%가 프로테스탄트, 1%보다 적은 무슬림이 있지만,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100%가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 가톨릭 신자라 할지라도 전통을 넘어서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집에 조상을 모신다. 전통은 종교를 뛰어넘어 동티모르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전통이란 더 강한 종교 아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무슬림이 존재하는 듯하다. 티모르 문화에는 Uma Adat(Spirit House)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조상을 모신다. 무슬림은 개, 돼지 등을 먹지 않지만 전통은 지킨다. 혹은 집에 조상을 모시는 곳이 있지만 전통적 의례를 행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코 전통에서 동떨어져 나가진 않는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일요일에 성당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가톨릭 속에서 살아왔던 탓일까. 이곳 사람에게는 신념과 절박함, 혹은 신성함으로써의 종교라기보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관용을 떠나, 종교로 집단이 나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일 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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