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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순시온, 그 여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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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나는 그 때를 꽤 “재밌었다” 고 회상한다. 요즘 우리의 하루 생활 중 많은 부분들을 함께 하는 스탭은 바로 ‘아순시온의 아이들’이다.세상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아기냄새가 아직도 강하게 배여나오는 두 살배기 꼬꼬마들부터우리 YMCA Pre- school 유치원에 다니는 연령 다양한 아이들, 그리고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놀자고 부르는 동네 골목대장 패거리 아이들까지. 원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도 같이 지냈었는데 11월부터 영어 수업이 끝나면서 아쉽게도 작별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가는 유치원이 병설 유치원이라 초등학교 아이들과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같이 영어 수업을 받은 첫 날, 그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필기도구를 꺼내 바르게 앉아 있던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뒤를 돌아봤다,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을 왔다 갔다 난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책과 공책 필기도구를 가방에서 꺼내놓지도 않는 아이들도 수두룩 했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라지만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절대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러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아주 특별한 상황에만 가능했고 화장실은 손을 들어 선생님께 허락을 맡아야 했고(쉬는 시간에 안가고 뭐했냐는 약간의 눈치를 받으며) 발표를 할 때는 입은 다물고 조용히 손을 들어 선생님이 지명을 하면 일어나 바른 자세로 발표를 했다. 담임 선생님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것들은 비슷했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어김없이 일명 ‘사랑의 매’ 로 손바닥을 맞곤 했었는데, 이건 뭐 한국 가면 손 바닥에 불날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을 하고 계시는 데도 자꾸 말을 거는 옆 짝꿍에게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쯤,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내고 풀어볼 사람? 하자 바로 방금 전 나한테 말을 걸던 앞뒤좌우 아이들이 " Ako! Ako!(저요 저요!) “ 왁왁 소리를 지르며 푸쳐 핸썹을 하는 게 아닌가. 얘네들, 칠판에 써진 문제는 제대로 본걸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내 걱정이 아주 빗나갔던 건 아니었는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들었던 아이들 중 절반은 정답, 절반은 오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답을 틀린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이 그저 씨익- 하고 웃고 만다. 내가 소심했던 건가. 난 내가 발표한 답이 정확히 정답을 빗겨갔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 외에도 칠판 앞에 나가 풀이 설명을 한다던지의 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망설임이나 부끄러움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우리들에게 아이들이 손을 억지로 들어올리거나, 발표 후 얼굴이 빨개진 나에게 "Don't be shy." 라며 토닥토닥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매를 들지 않는 필리핀 선생님과 자유롭게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있는 필리핀 교실과 내가 자란 한국 교실은 아주 많이 달랐다. 선생님이라는 위치가 요즘 아무리 무시당한다 해도 유교 문화권 테두리 안에 있는 스승은 여전히 높고 어렵다. 그리고 엄격하리만치 학생들의 바른 태도를 중시하는 것도 그런 영향권 안에 있는 국가들의 당연한 모습이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존재하는 교실과 어른과 아이, 상하 위계질서가 각 잡혀있는 예의바른 교실. 처음엔 -필리핀의 모든 것이 우리보다 좋아보이던 그 시절-엔 이 아이들을 보며 한국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랐으면 그 똑똑한 아이들이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무대체질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하지만 아이들을 3개월 동안 관찰해보니 그렇게 했더라면 절대 우리나라가 이 만큼 성장할 수 없었겠더라. 비록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질문하고 자기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시간은 이 곳 아이들보다 훨씬 더 적게 누렸겠지만, 가나다를 배우건, 영어 알파벳을 배우건, 분수와 소수를 배우건 성실히 노력하고 빠르게 습득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결코 작은 게 아니더라. 한 국가의 자라나는 꿈나무로서, 우리가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지녔던 사명감과 학업에 대한 착한 의무감을 단지 불쌍하다고 가볍게 표현할 게 아니더라. 대학은 고등 교육이니까 어려운 게 맞다. 10년 동안 지겹도록 학교를 다녀놓고도 더 공부하겠다고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이 대견하다. 내가 말한 것처럼 한국 교육이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지만 오늘은 복잡한 다른 문제들은 일단 다 제쳐두고 열심히 사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가 이 곳에 와서 직접 보니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학생들이 모두 너희처럼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지만, 도망가지 않고 그 치열한 곳에 남아서 하루는 웃으며 또 하루는 울기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멋지지 않니. 추운 수능장에서 몸과 마음을 덜덜 떨던 것 까지도 이 곳 아이들은 평생 겪지 못할 우리들만의 특별한 기억이지 않니. 그러니까 혹여나 억울해 하지 마렴. 나중에는 그 모든 게 참 “ 재밌었다” 고 회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수능을 보는 지혜 셋째 남동생도, 어제 걱정했다던 물리 시험 꼭 대박나길!(니네 누나는 며칠전부터 초긴장 상태야! ) < Sonlon high school 학생들과 >
[에세이-13] 난민 혹은 범죄자 by 심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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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엘메라도 앗사베 마을에서는 서티모르에서 귀환했던 난민의 습격을 받아 주민 5명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와 반대로 귀환했던 통합파의 민병이 주민들로부터 공격받았다는 보고도 있다. 동티모르의 난민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동티모르의 난민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분류를 하자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인도네시아 침공 시기에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 두 번째로 1999년 소란 이전 인도네시아 점령 시기에 떠난 사람, 세 번째는 1999년 소란 시 탈출했던 30만 명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에 대항했던 세력이고, 세 번째의 경우가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세 번째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동티모르로 이주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 동티모르 사람이지만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원했던 사람들, 인도네시아와의 합병을 주장했던 통합파 민병으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연행되었던 사람들과 정치적 신조와 무관하게 폭력을 피해 갔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지금의 난민 문제는 세 번째 경우에서 발생하고 있다. 반 인도네시아 합병의 성향인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귀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보복이나 법에 의한 처벌에 있어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정부와 UNHCR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많은 수가 돌아왔고, 대략 2만 5000명 정도(2005년 추정)가 외국에 난민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은 이들은 귀환 후 복수를 우려하고 있거나, 실제 민병대로 활동을 하며 살인을 했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범죄의 사실이 있을 경우, 동티모르 정부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2005년 여름, 자발적 귀환은 거의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귀환과 재정착을 위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게 되었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도저히 해결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합파의 유력자와 민병대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분이다. 이들을 전쟁 난민으로 분류해야 할지, 전쟁 범죄자로 고려해야 할지 쉽지 않은 결정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귀환이 정치적 문제가 되어 다시금 복수의 피바람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어려운 결정 사이에서 동티모르 내부와 국제사회 모두 확실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실 화해 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관과 몇 개의 NGO(한국의 경우, ‘개척자들’)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감정의 고리를 풀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오래 떨어진 사람 사이의 영상을 운반해주거나,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확인하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체로 본다면 극히 적은 사람들의 경우이다.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격변의 시기의 감정의 골이 한 세대 안에서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낙관적이다 못해 어설픈 기대가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과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몇 해 전, 한국에도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사법적인 힘은 없었다. 친일파 규정문제에서도 많은 논란을 빚었다. 한세대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끝내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어설픈 낙관은 미래에 더 큰 문제로, 해결하기 점점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진 후에야 날개를 편다.
[에세이-12] 아반이의 수업 일지(1) by 홍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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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이의 수업 일지(1) 라온아띠 1기, 동티모르 사메팀 홍연지(Aban) iamheypk@gmail.com 이번에 수필로 올리는 글은 아띠와 내가 가브라키 초등학교와 로뚜뚜 초등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진행하며 쓰고 있는 수업일지의 일부분이다. 일기와 함께 하루 하루를 정리하며 남기는 글이라서, 아무런 편집 없이 머리말만 조금 붙여 그대로 올린다. (가브라키 학교의 수업 일지는 내가 담당하고 있고, 로뚜뚜의 수업 기록은 아띠가 담당하고 있다.) 2008. 10. 22 수 다섯 번째 미술/놀이 수업 장소: 동티모르 사메, 가브라키 초등학교 색종이로 다양한 문양 만들기 작성자: 아반(홍연지) 준비물: 색종이, 가위, 연필, (풀: 공책에 완성된 문양을 붙여줄 수 있다.) 수업개요: 1)색종이를 접어 다양한 모양을 그린다. -접기 과정까지는 앞에서 설명을 하고, 다양한 모양 그리기는 한 명 한 명 지도를 해준다. -그림을 그릴 때, 지나치게 작지 않게 그리고, 가장자리 주변에 그릴 수 있도록 지도한다. -각자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릴 수 있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2)스케치한 모양을 오려내 다양한 문양을 완성한다. -가위질은 아이들이 두 명씩 앞으로 나와, 아띠와 아반이 한다. -실내가 소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지도한다. 수업노트➊ 대상: 가브라키 초등학교 4학년( 명) 수업시간: 8:30~10:00 1)출석을 부른다. 2)색종이를 나눠주고 색종이를 1/4로 함께 접는다. 3)색종이 가장자리 주변에 다양한 모양을 그린다. 4)색종이 오리기는 아띠와 아반이 도와준다. 아침에 급하게 색종이를 챙겼다. 종이접기, 그리기, 오리기가 복합적으로 작용된 색종이 문양 만들기를 하기로 했다. 4학년 교실에서 먼저 시작한 수업. 결론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오늘따라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유인즉슨, 숙제가 있었는데 아직 안 한 녀석들이 있어 미술 수업 하지 말고 공부를 하자는 거다. 그래도 수업은 시작되었고, 색종이 위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니, 굉장히 어려워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 수록 ‘모르겠어요’ 하면서 아띠와 내가 그려주기를 바랬다. 마음껏,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 칠판에 그려주거나, 일일이 지침사항을 전달해주며 그려라고 하면 곧잘 따라 그리다가도, 그리고 싶은 것 그리기,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기는 어려워한다. 결국 간단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서, 눈은 아이를 쳐다보고, ‘어려워, 안 어려워?’ 하니, ‘안 어려워요.’하는 아이들. 툭툭 어깰 쳐주면서 ‘한 번 해봐.’하니, 그제서야 스스로 그리기 시작하는 아이들. 지난 번 가위질을 하는 걸로 보아,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가위로 오리는 걸 시켰다가는 날이 다 새도 오늘 활동을 완료하지 못할 것 같아서, 간밤에 수업 활동안을 짜면서 오늘 가위질은 아띠와 내가 직접 해주기로 했다. 차례대로 두명씩 앞으로 나오게 했고, 완성된 것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게 했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시끄러울까봐, 한 번 주의를 준 다음 우리는 가위질에 몰두했는데, 아이들이 유심히 교실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고 있었다. 재빠르게 가위질을 하는 우리와, 완성된 색종이 문양을 들고 돌아서는 친구를 향해 ‘다 같이 박수!’하자, 모두들 환호하며 함께 기뻐해주고 좋아해주었다. 종종 자신의 문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 뾰루퉁한 녀석도, 꼼꼼히 하나씩 짚어주며 ‘이건 새를 그린거구나, 와, 여기 별 그림도 있네!’하면서 ‘멋있어.’라고 해주면,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가위질을 할 때 아띠와 특별히 신경을 썼던 부분은, 아이들이 몇 번씩 수정을 해서 지저분해진 스케치를, 가위질을 할 때 어느 선을 오려야 하고 어느 선을 오리면 안 되는지, 그림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물어 결정하도록 한 부분이었다. 지나치게 작게 그렸거나, 오리기에 지나치게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경우, 우리 마음대로 오리지 않고 그림을 그린 친구를 불러 ‘이 부분은 너무 작아서 오리기 어려워. 이 새를 조금 잘라도 되니?’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모두 ‘네. 되요.’라고 했고, 우리는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가위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작은 부분이지만, 아이들의 작품을 존중해주고, 저마다 작은 자긍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논의했던 내용이었다. 가위질 작업까지 모두 끝난 다음에, 모두 자신의 문양을 높이 들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풀을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보관이 어렵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잘 간직하라고 하며, 내일 가져오면 공책에 붙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시간에 남은 종이 쓰레기는 모두 모아 모자이크 수업 때 쓰기 위해 비닐에 넣어 두었다. (쉬는 시간에 6학년 교실의 니끌라우가 우리 반 아이 종이 문양을 홱 찢어버렸다. 유난히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낙인효과’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음 시간 준비물이니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해둔 터라, 괘씸한 마음에 크게 혼을 냈다. 사과를 하라고 한 다음에, 이름을 물어 빈 종이에 적어두었다.) 참고: 아반(홍연지), 아띠(배효정)
[에세이-11] 우리들의 숙소 by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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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동티모르 사메팀. 전기가 전혀 없는 로뚜뚜, 해진 이후 전기가 불규칙적으로 들어오는 사메, 2개의 지역을 1주일에 한 번씩 이동하는 우리들 이런 우리들은 숙소가 4개다. “딜리 YMCA", "사메”, “로뚜뚜 천막”, “로뚜뚜 clinic" 에어컨이 있는 좋은 환경에서부터,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시멘트 바닥에서 자야 되는 열악한 환경까지 우리들은 이미 모든 적응이 끝났다. 1. 딜리 YMCA('08. 8. 20 ~ 9. 29) <에어컨> 운딜 대학교와 전기를 같이 쓰는 YMCA. 전기가 공짜다. 그래서 에어컨은 24시간 풀가동이다.(머리 자르고 좋아하는 두보 그 옆에 일본 YMCA 이시바시 간사님) <세탁기> 새로 들어온 세탁기를 보며 좋아하는 연지 <거실> 책상. 의자, 에어컨, TV, DVD, 칠판 모든 게 잘 갖춰져 있다.(열심히 현지 언어인 테툼어 공부를 하고 있는 연지와 효정) 동티모르에 왔을 때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딜리 YMCA 숙소. 딜리의 환경은 생각처럼 나쁘지가 않았다. 완벽하진 않지만 잘 나오는 상수도, 자주 정전되지만 24시간 계속 쓸 수 있는 전기. 손빨래를 못하게 만든 세탁기.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는 다른 동티모르의 지역과는 완전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동티모르의 딜리”가 아닌 그저 “딜리라는 도시” 라는 느낌이다. 2. 사메 (‘08. 9. 30 ~ 계속) <남자 방> 방은 작지만 창문과 2층 침대가 있고, 비싼 타일이 있다. <창고> 커피 시즌에는 커피 포대로 가득 찬다. 하지만 비시즌에는 두보의 기타 공연장이다. <거실> 잘 꾸며진 거실. 우리들의 식사 공간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부엌> 사메의 다른 집에는 없는 가스레인지. 가스는 딜리에서만 구입 가능하다. <앞 베란다> 좋은 타일이 깔려있고, 그늘이 잘 져서 커피 고르기 작업 등 여러 용도로 사용 가능하다.(현지인들과 함께 커피 힐리 작업을 하고 있는 두호) <뒤 베란다> 말세로 아저씨가 직접 만든 운동기구 나와 두보가 날마다 이용한다.사메는 해 지고 나서 밤 12시까지 전기가 들어온다. 하지만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숙소에는 우리들만 지내는 게 아니라, 피스커피 일을 하는 현지 아저씨들도 같이 지낸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시설은 잘 갖추어져있다.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3. 로뚜뚜 천막(‘08. 9. 30 ~ 계속) <숙소 풍경> 양철 지붕으로 된 건물이 숙소, 노란 색 천막 지붕은 부엌, 그 옆에 작은 건물은 화장실이다. (재킷과 긴팔은 로뚜뚜에서 필수다) <방> 따로 방은 없다. 바닥엔 매트릭스를 깔고, 벽은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천막을 씌웠다. 두꺼운 옷과 침낭이 없으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거실> 현지 주민들의 집의 벽과 같은 대나무이다. 고산지역의 로뚜뚜에서 이런 벽은 외풍이 매우 심하다. 바닥은 시멘트라서 먼지가 많이 난다. (일기를 쓰고 있는 은정) <부엌> 장작을 태워서 요리한다. 연기 때문에 눈물이 장난 아니다. 로뚜뚜의 숙소는 우리들의 상상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로뚜뚜에는 전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로뚜뚜에서의 밤은 항상 캔들 라이트이다. 여기는 너무 추워 모기가 없다. 다만, 콧물이 많이 나온다. 날마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러한 현실을 암울하게만 보지 말아 달라. 우리는 이런 로뚜뚜의 생활을 즐긴다. 밤에 다들 모여 별과 은하수를 보며, 팀원들끼리의 깊은 대화를 나눈다. 로뚜뚜의 생활은 참으로 불편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팀의 연대와 단합을 키워주고 있는거같다. (토~화요일은 사메 숙소, 수~금요일은 로뚜뚜 숙소에서 생활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육 봉사 학교는 2곳이기 때문이다) 4. 로뚜뚜 clinic(‘08. 9. 30 ~ 계속)<클리닉 풍경> 하얀색 페인트의 깨끗한 클리닉 <방> 원래 용도는 환자용 방이다. 바닥에 매트릭스를 깔고 잔다. <거실> 원래 용도는 환자 진찰실이다. 모든 바닥이 타일로 깔려있다.(동티모르에서 타일은 무척 비싸다) <베란다> 클리닉에 들어오는 통로. 하지만 우리들은 베란다로 쓰고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경치를 감상한다. <화장실> 말 그대로 수세식 화장실. 용무를 다 마치고, 물을 부어 그것을 처리한다. 클리닉 바로 앞에 우리들의 천막 숙소가 있다. 클리닉 건물은 의사가 없을 때 일시적으로 우리들이 사용한다. 즉, 잠깐 빌려 쓸 수 있는 것이다. 클리닉과 천막을 비교하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듯, 로뚜뚜에서 최고의 시설의 클리닉 이지만 우리들은 이상하게도 천막 숙소를 선호한다. 하나의 공간이 아닌 여러 공간과 숙소를 사용하다 보니 사메팀은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 강해졌다.
필리핀 바기오 여섯번째 에세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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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6. 높고, 넓고, 깊게.. 1) 중간평가 이후. 지난 10월 24일~ 27일 원팀장님과 지혜간사님의 방문과 중간평가 이후에 생활과 활동에 있어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달라졌어요. (잠시동안!) 1기 바기오 팀으로서의 사명감이 생겼고, 무언가 제안하거나 요구하는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중간 평가 이후에 바로 라온아띠 프로젝트 제안서를 준비하면서 연일 계속되는 회의가 피곤하기도 했지만, 완성하고 나니 매우 뿌듯한 느낌이 좋았어요♡ 2) Community center work 첨부한 사진이 Tuding 지역 Community center 활동 모습입니다. Pig pen 근처에 울타리를 만드는 모습이에요. 현지 관계자 두 분과 우리팀 5명이 땅을 파고, 나무를 깎고, 돌도 캐고, 못질도 하면서 수작업 100%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 ) 3) 추위, 그리고 단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바기오의 날씨. 요즘엔 더 추워졌어요.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은 가디건, 니트 들이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잠 잘때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옷을 아래위로 두세겹씩 껴입고 담요을 세 장이나 덮어도 한파가 느껴져요. 필리핀은 더운 줄로만 알았는데, 바기오는 역시 좀 달라^^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엔 연일 단수가 계속 되었습니다. 몇 일동안 비가 안오고 쨍쨍한 날씨가 원인이었어요.물탱크에 받아둔 빗물이 떨어져서 화장실에 물이 뚝 끊겼습니다. 그나마 에세이를 쓰고 있는 지금, 비가 많이 와서 이젠 걱정 없어요. 이젠 바싹 마르지 않는 빨래 걱정이.. +) 얼마전에 민다나오 YMCA에서 손님들이 오셔서 다바오팀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ㅠ 다들 보고싶어요♡여섯번째 에세이는 여기까지 입니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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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하루는 길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뜨겁고도 강렬한 필리핀의 낮이 지나고 고요하고 적막해진 검정색 밤이 오면 우리는 일제히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 우리 오늘은 무슨일이 있었지?하루 일과를 곰곰히 되짚어보면 마치 어제 있었던 것 같은 아득한 일이 오늘 일이라는 것에 우리는 가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긴 하루들이 촘촘히 모이자 거기엔 짧게만 느껴지는 2달이 있다. 그래, 믿기진 않지만 어느 덧 절반이다. 어느 때,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 건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은 고백한다.한국에서부터 이 곳에 와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코 그게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였다고는 말 못하겠다. 우리가 겪었던 모든 어려움과 갈등, 그리고 거기서도 발견했던 소소한 행복까지 모든 것은 한 길로 통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긴 긴 필리핀의 하루를 힘겹게 꿀꺽 넘겨야만 했다. 각자 그 누구 할 것 없이 고독에 빠졌고, 그것이 타국에 와서 느끼는 감정이 아닌 이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옆 친구를 다독여주지 못하는 나의 작은 그릇을 책망하고. 집 안 모서리 모서리마다 고스란히 배여있던 경계심들이 밖에 나간다고 없어질 리 없었다. 각자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 어루만져주느라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은 만져주지 못했다. 우린 하루하루 여유를 잃어갔다. 왜 하필. 왜 하필.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많고 많은 50명 중 왜 하필, 이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땅땅 내리쳤고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은 어김없이 슬퍼졌다. 한국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던 그 때.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가장 큰 중심이 결국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접했을 땐 너무나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뒤, 우리는 또 한번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한 사람은 떠났고 세 사람은 남았다. 다섯이 넷이 되고 넷이 셋이 되고. 그 셋은 잘 할 수 있을까. 다섯이서도 삐걱대던 일들을 셋이서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 섞인 질문들에 답을 얻은 건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는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였다. 그 동안 내부문제로 집중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에 돌입한 우리는 그제서야 그동안 몰랐던 아순시온의 또 다른 모습들을 하나 둘 발견했다. 왜 넌 이곳은 할 일이 없다고 불평 했었을까. 지금쯤 한국에 있을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그 답을 얻었다고. 그리고 그건 순전히 우리의 태만함 때문이었다고. 여러 날의 회의를 통해 드디어 프로젝트 주제가 정해지고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한달음에 자료를 구해왔다. 밤새 그 영어자료를 번역하고 제안서, 한글 프리젠테이션,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과정마저 몸은 고통스러웠을지라도 마음은 편안했다. 우리들 스스로도 조금씩 잃었던 여유도 되찾았고 닫았던 마음도 열었다. 그리고 다섯 중에 둘이 없다는 것에서 우리들도 모르게 느끼고 있던 자격지심도 극복했고 셋이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우리는 팀 이름처럼 킹왕짱 다바오팀이 아니라는 걸.킹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짱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여자 세 명일 뿐이라고.우리는 남겨진 셋이 아니라 처음부터 셋이었다고.셋이서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네 옆에 있어주겠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린,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뉴스 클리핑5 - Baguio joins APEC-style "sister c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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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기오시가 10 월 17일 중국 Hangzhou에서 열린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 정상회의에서 도시 자매 결연에 참여하기로 뜻을 밝혔다.Reinaldo Bautista, Jr. 시장은 지난 주 바기오시가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32개국이 협력하는 국제 도시 자매결연 협정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공표했다. 이 협약은 경제협력과 무역, 과학과 기술의 공유, 인적자원 훈련과 산업연수생의 확대, 관광산업과 그에 따른 환경보호 전략, 그리고 이 협약에 가입해 있는 지역들의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강화시킬 것을 서약한다고 시장은 말했다. 또한 그는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달로 세계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고 말하며, "그런까닭에 선언서는 더 나은 망을 제시해주고, 바기오시를 성장시킴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 안에서 시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출처: The Baguio Reporter바기오시가 국제적인, 그 중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하는 서약에 참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는 클 것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동아시아국가들(중국, 한국, 일본)이 주를 이루던 협약에 필리핀의 바기오시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국가단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교류가 이루어 지는 것이었다. 이 협약을 통해 바기오시가 세계시장안에서 악영향은 완화시키면서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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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자르며- 여자들에게 손톱은 남자에게 있어서 보다 훨씬 그 의미가 크다. 남자들에게 손톱은 물건을 집을 때, 혹은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순간에나 사용하는 신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여자들에겐 스트레스 해소나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수단이기도 하다. 필리핀에 오기 전 나는 항상 손톱이 길었다. 원래 손톱이 긴 편이라 짧게 자르면 아프기도 했지만 형형색색의 매니큐어 바르는 재미는 내 삶에 기분 좋은 활력소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핀에선 손톱을 손끝에 바짝 붙여 자르고 있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타를 칠 때는 손가락으로 코드를 잡기위해 줄을 꾹 눌러야 하기 때문에 손톱을 바짝 잘라야 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손톱을 잘 잘라줘야 했다. 이렇게 시작한 손톱을 깎는 시간. 이 시간은 내게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몇 안 되는 가시적인 단서가 된다. 필리핀에 와서 만 10번은 족히 손톱을 자른 것 같다. ‘시간이 가고 있긴 한 거지!’ 장난스런 투정에 너무나 분명히 시간은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는 손톱. 한국이라면 여름이 끝나고 가을도 지나 이제 겨울이 오고 있는 시점. 벌써 철이 3번이나 바뀌었을 시간. 필리핀은 여전히 여름이다. 하늘은 여전히 그 높이 그대로 파랗고, 구름은 뭉게뭉게 하얗다. 야자수도 여전히 푸른색 그대로고, 잠잠한 바람과 뜨거운 태양의 열기도 8월의 첫 그 느낌 그대로다. 물론 사람들의 옷차림도.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다. 새삼스레 한국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도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일까? 한국 사람들은 시간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벌써’ 라는 말은 입버릇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다. ‘벌써 여름이야?’ ‘벌써 수박이 나왔어?’ ‘벌써 목도리를 하는 구나’ ‘벌써 연말이네’ 등등. 한국 사람들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조급증도 시간에 대한 민감성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또 오늘과 같은 필리핀 사람들이 느긋느긋한 것에도 시간에 대한 민감성이 조금은 작용하는 것일까. 확실히 이곳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이 안 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안 되면 또 그 내일 하면 되고. 그렇게 몇 날이 지나고 지나도 하늘도, 태양도, 바람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보는 건 분명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각자의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각각의 삶 속에서 체득하게 된 삶의 방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생각해 보면 ‘문화 상대주의’라는 이름 좋은 포장 때문에 긍정적인 비판조차 못하게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속도를 생명으로 아는 한국 사람으로서 ‘필리핀 사람들은 너무 느려’라고 말 할 수 있는데도 마치 그렇게 말하면 필리핀의 문화와 환경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는 의식이 덜 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느리다는 사실을 좀 더 다양하게 분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애초부터 박탈 당한고 있는 건 아닌지. 손톱을 깎으며 시간의 흐름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너무나도 뻔한 결론에 도달했음이 조금은 속상한 마음이 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다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턱턱 막혀버리는 순간 오면, 혹시나 내가 고정관념에 묶여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 된다. 갇혀버린 생각이 틀을 깨고 나올 만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더 공부하고 생각해야 겠다.
번외편 : 나의 부전공 간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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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음식문화를 접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먹어본 간식들.베트남의 아주 다양한 간식들을 다 올리지 못하고, 사진도 없어서 아쉽지만 만약에 베트남에 오게 된다면 한번쯤 먹어보면 좋은 것들이다. 사진 있는 것들 1. 짜요 or 짜죠 : 한국에서는 스프링롤이라고 하는 튀김만두 같은 것이다. 짜요만 해서 소스에 찍어먹기도 하고, 짜요와 쌀국수와 야채와 함께 비벼먹기도 하다.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라고도 한다. 가격대는 아주 다양 3만동부터 2. 소이 찐 xoi chien : 찹쌀로 만든 풍선과자 같은 것인데 가운데는 뻥 뚫려있다. 어느 분이 사주셔서 먹긴 하였는데 사실 따로 사먹은 적은 없다. 과일 3. 탕롱(용과) : 한국에서는 용과라고 해서 용의 눈물이라는 뜻의 선인장과일이다. 겉의 모습은 조금 징그럽긴 한데 속은 하얗고 검은 씨(키위씨앗같다)가 많다. 차갑게 하면 더욱 맛있다. 1kg 10,000동 4. 리치 : 얇은 껍질을 까면 하얀 열매가 들어있다. 1kg 5000동 5. 쫌쫌(람부탄) : 겉은 벌레같은 모습이지만 속을 까보면 하얀색의 열매가 들어있다. 열매 안에는 큰 씨앗이 들어있는 데 알맹이를 잘못 먹다보면 씨앗의 껍질이 함께 들어와 목이 까끌거릴 수 있다. 열매의 과즙은 풍부하고, 달콤한 맛이다. 1kg 10,000동 6. 반베오, 반 똠 banh beo , banh tom : 한국의 떡같다. 새우모양의 떡도 있고, 새우 맛이 나는 것도 있어서 반 똠(새우)라고 한다. 넓은 떡은 가운데 밤고물같은 것을 무쳐서 주기도 하고 감자떡같은 것도 있다. 여러 가지 반베오 위에 액젓같은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이동하면서 파는 아줌마에게 산다면 4,000동에 먹기도 한다. 7. 반쌔오(banh xeo) : 베트남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부침개 같이 부친 것에 안에는 새우, 돼지고기, 숙주가 들어있다. 이것을 한입 크기정도로 뜯어서 월남쌈에 야채와 함께 싸서 느억맘(피쉬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길에서 파는 작은 반쌔오는 한 장에 2,000동부터하고 가게에서 큰 크기로 파는 것은 10,000동부터 한다. 8. 콰이미 (khoi my) : 삶은 고구마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코코넛 밀크에 넣어서 팔기도 하고, 소금에 찍어 먹기도 한다. 한국의 고구마와 다르게 베트남 고구마에는 가운데 줄기 같은 것이 있다. 코코넛 밀크에 담겨진 고구마는 달아서 몇 개 먹으면 질리기도 하지만 배고플 때 먹으면 일품이다. 사진 없는 것들 1. pho 퍼 (쌀국수) :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쌀국수이다. 한국보다 다양하고 국물맛이 시원하다. 퍼보는 돼지고기 넣은 쌀국수이고, 퍼가는 닭고기를 넣은 쌀국수이다. 길에서도 가게에서도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호치민시내에서 파는 것은 30,000동부터 하고, 노상으로 파는 것이나 호치민시내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서 파는 쌀국수는 20,000동부터 한다. 2. bun bo 분보 : 하얀색 면발에 햄, 선지, 소고기,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국물은 맑은 듯하면서 붉은 기름이 있다. 기호에 따라 야채를 넣어서 먹는다. 쌀국수와 같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20,000동부터 3. my quang 미광 : 노란색의 칼국수 같은 면발에 돼지고기를 살짝 걸쭉하게 우려낸 국물이다. 돼지고기가 크게 들어가고, 땅콩을 넣는 것이 특징이다. 다랏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있으나 호치민시에서는 사실 본적은 없다. 4. banh my 반미 : 바게트 빵에 반을 나눠서 오이, 칠리고추, 햄, 돼지고기, 라우텀 등 다양한 것들을 넣는다. 들고 다니면서 쉽게 먹을 수 있다. 바게트 빵만 해서는 2000동부터 하고 빵에 고기와 야채를 넣으면 5000동부터 한다.*베트남의 과자는 한국의 과자와 비슷해서 나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음료수, 우유 같은 것들은 단맛이 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입맛에 맞춰서 자라왔기에 그 입맛을 따라서 찾을라면 베트남의 정말 맛있는 것들을 놓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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