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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김진아
99+
마지막 이야기 지난 5개월은 너무 짧았다. 그렇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5개월이 딱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뭐든지 아쉬울 때가 가장 좋은 법이니까. 나는 타지 생활을 자주해서 라온아띠 생활에 전혀 걱정이 없었다. 사실은 엄청 자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 그전에 와보기도 했고 어딜 가도 나는 적응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나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편한 사람이라 4명의 팀원이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자신감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그만큼 편한 마음으로 말레이시아에 왔고 무조건 즐기자 라는 마음만 가지고 왔다. 그런 마음만 가지고 왔던 나에게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즐겁지만은 않았던 때도 많았다. 그래도 지난 5개월을 돌이켜 보면 한순간 한 장면 하나가 소중하다.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다. 굳이 라온아띠가 되기 전과 되고난 후를 비교한다면 나에게는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사실 나는 나름대로 대외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내 생활에 만족하고 살고 있었지만 대외활동이 사람들 만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라온아띠를 만났다. 글 솜씨 없는 내가 서류에 합격한 것부터 조별 토론 때도 아무말도 못하던 특별한 점 없는 내가 라온아띠에 뽑혔을때부터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국내훈련은 정말 특별했다. 구미에서는 정말 잠 자는 시간 빼고는 쉴 시간이 없었지만 그때 만큼은 정말 하루 하루가 설렜다. 사실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과 아이들을 매일매일 만난다는 것 수화를 배운다는 것도 모두가 나에게 처음이었다. 그러나 훈련때 5기들이 다같이 모여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때 사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혹시나 나에게 의견을 물어볼까봐, 그때 나는 남들 앞에서 말할 게 없고 생각이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말레이시아에서 5명과의 5개월동안의 생활, 그동안 나는 팀원들과의 생활, 대화를 통해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지난 날동안 너무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생각하며 살았던것, 이기적인 내 자신, 계획 없는 미래, 하고싶은 것만 하며 살수 없다는 것 매일매일 적은 일기를 통해 나 스스로도 약간의 발전이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며 살았던 것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어서 좋았다. 팀원들에게 도움 받은게 너무 많은 것 같다. 팀원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전과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말레이시아는 이제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나라이다. 유독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친절한 것 같다. 물어보지 않은 것 까지 대답해 주니 말이다. 나에게 있어 해외 봉사활동이란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며 아이들에게 집 만들어 주기, 아이들에게 공부 가르쳐주기 이런 이미지였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보기 좋게 확실히 빗나갔다. 말레이시아는 라온아띠 파견국 중에 제일 잘 사는 나라이다. 나의 개념을 확 뒤집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현지어를 배울 때 우리는 수화와 현지어를 같이 배웠고 다른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 생활을 할때 우리는 베다니홈에서 지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나는 장애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하고는 너무 먼 얘기라고만 생각했다거나 아예 그런 생각조차 안 해본 것이다. 나는 만약 내가 지적 장애인의 엄마가 된다면 꼭 베다니홈에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면 나는 마치 현실 밖으로 들어온것 같다고 항상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말레이시아에서 했던 활동을 계속 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수화를 배우고, 말레이시아에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을 잊지않을때까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보고 싶다.
개인에세이, 이수빈
99+
당시 나는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곧 4학년이 된다는 부담감,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졸업을 유예시킬 휴학꺼리를 찾고 싶었고,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게 교내에 붙어있던 라온아띠 포스터이다.'파견기간 5개월'. 한 학기 즐겁게 놀다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전부터도 해외봉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은 많이 했었지만 게을러서 지원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3학년이 끝날 때가 돼서야 4학년 공포증의 힘으로 지원서를 썼다. 그리고 꿈처럼 라온아띠에 합격했다. 3주 간의 국내훈련을 거치면서 라온아띠가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발대식 때 외쳤던 우리 팀 구호 "행복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잘 살다 오겠습니다"는 진심이었다. 행복에 겨워서 눈물을 흘려보고, 사랑을 아무리 주어도 자꾸만 샘솟아 날 수 있다는 기대가 들었다. 또 정말 그 곳 사람처럼 잘 살고 오자는 다짐을 했다. 이곳에 오면 당연히 신나고 즐거운 일들만 펼쳐질 것 같았다. 내 나이 또래 다섯명의 팀원들과 힘을 합쳐서 뭔가 대단한 프로젝트도 이룰 줄 알았다. 하지만 파견 첫 달인 3월에 공식활동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침대에 누워있기였다. 5시에 YMCA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잠이 들 때까지 정말로 지루했다. 머릿 속으로 멋진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가끔 팀원끼리 뭐라도 해보자고 머리를 맡대어 보기도 했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았다. 유치원에 나가면서 바빠졌다. 공식활동 시간도 늘어나고 몸도 피곤하니 잠도 잘왔다. 정신없이 활동에 집중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쓰러지 듯 잠들었다. 3월에 했던 잡생각들은 점점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유치원 활동을 끝내고 6월에 하는 활동은 몸이 편했다. 다시 또 3월에 들었던 생각이 마구마구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베트남과 정이 들어있었다. 두 달 밖에 안 남은 시점이라 이곳에서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아까웠다. 마치 4학년 공포증에 라온아띠를 지원했던 것처럼 나는 조금씩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작은 변화가 주는 기쁨은 꽤 컸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조금 더 크게 웃는 일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나를 편하게 느끼는 걸 보니 내가 즐거워졌다. 지금 조금 더 보지 않으면 다시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순간순간이 더 즐거워졌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또 미래에 이곳에 오게 될 라온아띠들을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잘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일도 벌였다. 라온아띠 파견으로 내 인생에 어떤 극단적인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몇 가지 있다면...... 내가 열정을 다해서 보낸 그 순간들을 기억할 때 내 안에 생기는 그 감정은 살아가는 데 에너지가 될 것 같다. 사랑을 미처 다 주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쏟는 내가 될 것 같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이런 작은 변화들을 씨앗으로 야무지고 알찬 나무를 키워하는 게 아닐까 한다. 5개월의 소중한 선물, 라온아띠 고마워요.
개인에세이, 김진경
1
99+
나는 사고로 인해 다른 팀원들보다 2주 먼저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머릿속은 그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내가 피곤한 줄도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 줄도 모르고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 화르륵 분노를 쏟아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잠만 잤다. 정말로 하루종일 자고, 누군가 깨우면 먹고 다시 자고, 그리고 꿈을 꿨다. 몇몇 꿈은 스리랑카에 관한 것도 있었고 가끔은 사람들간의 관계에 있던 것도 있었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꿈도 있었고, 그리고 카메라 렌즈에 대한 것도 있었다. 빨간 바디에 은색 렌즈, 그리고 그 안의 까만 동공. 때때로 꿈속에서 깨어나면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5개월간 내가 무엇을 했을까. 아이들을 만나고 커리를 먹고 페인트칠을 하고, 오샨드랑 루시루때문에 웃다가 짜증내다가 일하기도 했었고,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집에 오면 팀원들이랑 저녁 뭐 해먹을지 생각하고 그랬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한국에 있는 내 침대 위고 책상 위엔 5개월간 내게 날라온 우편물들이 쌓여있다. 다이어리엔 그간 써왔던 일정들이 빡빡하다. 디고롤라, 벽화, 한국어. 그리고 노트북엔 손때가 잔뜩 껴서 5개월간 무던히도 이렇게 살았구나 싶다. 손으로 커리 비벼먹다가 매워서 손가락물고 있었는데 이제는 숟가락 젓가락으로 밥 먹고, 빨래도 세탁기한테 맡겨놓고, 짧은 반바지입고 뒹굴거리다가 빨래 널면 끝이다. 집안일 다 해도 시간이 남아서 다시 침대로 들어가서 잠을 자고, 꿈을 꾸고 그리고 다시 깬다. 그리고 그 곳을 생각한다. 그 곳에서 살았기에 많이 부지런해졌다. 사람들이 말할 때 좀 더 참을성 있게 듣고, 내 의견이 세계 제일인양 내세우지 않는 법도 배웠다. 사람마다 생활방식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사 이해하게 되고, 물도 좀 아껴쓰고 벌레 나오면 소리도 안 지르고 쥐 나와도 잡아죽일 수 있다. 생활의 방식에서부터 사람을 대하는 것까지, 그리고 내 성격의 본 모습을 파악하는 것까지, 20여년이 넘는 동안 못하던 것들을 5개월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공생을 통해 배웠다는 게 약간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정말 내게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많이 서툴고 시야도 좁고 배울 것 많지만....가끔씩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내 안의 증오를 다스리지 못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부족한 내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함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무언가를 이루기엔 너무나 부족한 내 자신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래도 5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이렇게나마 변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라온아띠들에게 처음 부여되었던 시각들을 생각하면, 내 자신은 그 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귀중한 시간과 자원으로 좀 더 큰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그저 내 안으로 삼키려 하는 것이 굉장히 이기적인 일인 것도 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갔더라면 더 많은 일들을 이루고 왔을지도 모른다. 더 큰 화합을 이끌어내고 무언가 의미 깊은 일을 하고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알기에 앞으로의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써보려 한다. 내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많다. 침대 안에서 꿈만 꾼다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내 자신을 추스리는 것이 참 버겁지만 고작 이 정도로 여기서 머물기엔 스리랑카의 5개월이,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내 안의 변화를 지키고 이 곳에서라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지. 아직도 내게 할 일이 참 많이 남아서, 그리고 그 의지도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다.
개인에세이, 이혜리
99+
지금은 이 순간을 기억하세요라온아띠를 지원할 때 난 여섯 나라 중 처음부터 베트남에 매력을 느꼈고, 그 이유는 5개월 간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활동에 있었다. 첫 달, 베트남어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둘째달부터 홍안유치원, 워크캠프, Hope school, Disabled youth club 그리고 그 외 우리의 자발적으로 참여한 붕따우 캠프, 베트남 장애인 체육대회, vinh son school 활동 등 5개월간의 활동은 숨가쁘게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다채로운 활동에 만족만 할 수는 없었다. 국내훈련 동안 꿈꿔 온 베트남과 다르게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첫번 째 부딪힌 문제는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외국인인 우리가 베트남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정부의 허락이 필요한 복잡한 절차가 요구되었다. 350ppm캠페인을 준비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었다. 그 중 350ppm 캠페인의 대상자를 정할 때도 일반 대중에게 하면 안된다는 점을 알았을 때 이곳에서의 활동은 처음부터 많은 제약이 따른 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여러 기관을 다니다보니 활동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기관활동에 빠져 들 때쯤 되면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니 기관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기관을 파악하기 전 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상황에 속상했고 우리의 활동에 이전만큼 집중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라온아띠를 지원할 때 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처음 라온아띠를 지원한 가장 큰 계기를 생각해 보았다. 지원서에서 "왜 라온아띠가 되려고 했나요?"라는 질문에 "있는 힘껏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말했던 내를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활동에 ‘있는 힘껏’ 임하지 않고 있었다. 베트남은 베트남 만의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우선 다른 지역보다 다채로운 활동 덕분에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 만큼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친구들은 각자 자신만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므로 그들의 다양한 삶을 접하며 외국인이지만 베트남의 이곳 저곳의 생활을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색다른 매력을 가진 베트남에서 내가 놓칠 뻔 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우선 이곳이 베트남임을 인식하기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부터 모든 활동에 내가 베트남에 가진 모든 기대를 채우게 되었 던 것 같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내가 참여한 활동들은 베트남에서만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고 내 삶을 통틀어 평생동안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지 모르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유치원의 수많은 아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려 노력하는 일, 내 몸이 힘들더라도 일주일간의 목표를 위해 전진했던 일, 장애라는 특수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2주일을 지낸 일, 베트남 시골의 순수한 청년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가진 일...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내가 가는 곳,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본 베트남의 저녁 놀 마저도 나의 삶에서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더이상 다름을 탓하기 보다 나에게 이리도 애틋한 시간을 있는 힘껏 행복하게 만들고자 했다. 라온아띠 베트남을 지원하는 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 베트남, 그 공간에 집중하기 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세요:)”흐르는 시간만큼 나도 흘러간다이곳에서 5개월을 지내다 보면 베트남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흐르는 시간만큼 변해갔던 것 같다. 처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베트남의 공기, 호텔로 가면서 바라본 베트남의 모습은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어느덧 나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처음 한국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베트남에서 한국과 같은 점도 찾고 한국과 다른점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이해했다기 보다 살아보니 같은 점이건 다른 점이건 모두가 ‘그냥’ 베트남이었다. 수많은 오토바이들, 길고 좁다란 집, 아침에 5시면 일어나는 사람들, 국수를 즐겨먹는 사람들… 쌀국수만 베트남이 아닌 내가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베트남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베트남에서 한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을 ‘한국보다 발전이 늦은 나라’라고 말했었다. 내가 살면서 본 베트남은 발전이 늦은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속도로 살고 있는 나라였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으로 베트남을 판단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를 그들이 생각한 한국인을 바라보기 보다 나, 이혜리를 보고 한국인을 생각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말, 한국의 과일, 한국의 음식, 한국의 옷, 한국의 가수까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한국에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 만났을 때, 특히 아시아인을 만났을 때 그들이 나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조금은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라온아띠로서 이자리에서 깨닫게 됨을 감사했다. 그래서 일까. 5개월간 베트남에 관련된 잡지, 서적을 스스로 찾아 읽고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스스로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나는 베트남에 해외봉사단원으로 왔다. 5개월, 베트남이라는 아시아의 한 나라를 이해하고 가기에는 길지 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베트남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느낀 많은 생각들이 한국에서 다른 수 많은 새로운 경험들과 맞딱드리며 어떻게 변해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길지도 않지만 짧지만은 않았던 5개월은 내가 살고 있는 곳 이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에게 많은 변화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아띠로서의 해외 활동의 경험으로 앞으로 나의 삶에서 주어질 많은 변화들을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 다르게 변화하는 내가 더 기대된다.
개인에세이, 이유진
99+
누구나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말들, 그래서 어쩌면 진부할 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 마음으로 깨달았던 시간을 진솔 되게 풀어나갈까 한다. '다름'을 '마음'으로 이해하기.처음 라온아띠로 뽑혔을 때는 머리로는 나와 다른 사람,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에 자신만만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니까. 하지만 베트남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머리로 이해가 되었던 '틀림이 아닌 다름이' 실전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은 이해해야지 하다가도 이해 안 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때때로는 극단적으로 오히려 내가 이 생활을 경험하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타문화에 대한 다름과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더 하고 살지 않았을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한가지 예로 시간에 관대한 베트남인들. 5시 출발 예정이 6시 반이 되고 처음엔 버스에 앉아서 속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베트남 생활이 길어질수록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친구는 시간에 관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이들은 내가 무엇을 할 때도 재촉하지 않고 나를 편안히 기다려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음을 알았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가끔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가족 마냥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부정적으로 보였던 모습 하나둘이 이제는 내가 베트남을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 문화를 가진 베트남사람이 아닌 바로 내 옆에서 하루 24시간, 총 5개월을 사는 우리 4명의 팀원 역시 내가 이해해야 할 고민이었다. 나와 성격과 코드가 맞아서 친구가 된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른 성격일지라도 같이 5개월을 지내야 하는 친구였다. 내가 평소 '정말 이건 당연하다.'라고 여겼던 생각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땐 사실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다. 말로는 '그래 네 말도 맞아.'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내 말이 더 맞아.'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사람의 생각도 속으로도 '맞네!'라고 느끼는 나를 자연스레 발견할 수 있었고 그땐 스스로 놀라기도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엔 나와는 달라서 힘들었던 점들이 반대로 나와 다르므로 하나 둘 본받을 점들이 되기도 하였다. 라온아띠의 5개월은 '틀림이 아닌 다름' 그 당연한 말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만들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하기.라온아띠가 정말 정말 정말 되고 싶었다. 라온아띠가 되고 해외봉사만 떠나면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해외봉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그리고 꿈만 같았던 라온아띠에 합격하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하지만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올 리는 없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해외봉사이고 뭐든 행복할 것만 같았던 '이곳'에서 바보같이 나는 '한국'에 가면 가족도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겠지라며 '한국'에 가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여전히 '영어공부, 취직 걱정 등….' 걱정에 치여 사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나 자신을 보고 행복의 문제는 '환경'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다 접고 '지금 이 시간, 공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안에서 행복을 찾기'라는 작은 결심을 다짐했고 힘들 때마다 그 결심을 떠올렸다. 그 뒤로 내 생활은 정말 신기하게도 '행복'해졌다. 평소에는 제대로 의식조차 못했을 바람 한점이 아이와 나 사이에 불 때도 미소가 지어졌고. 하품하는 나를 보고 덩달아 하품하는 아이의 모습에도 나른하게 행복해졌다. 문장 그대로, 순간순간이 참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배웠다. 매 순간이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커다란 의미가 되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기'라는 나의 다짐은 초등학생 때 소풍 가기 전날 밤 잠자리에 들며 설레던 그 마음을 유치원에 가는 전날마다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기'는 지금뿐만 아니라 내일까지 나를 기대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나의 5개월간의 크나큰 교훈이자 에너지였다고 자신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은 수천 가지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좋은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좋은 생각들은 늘 가지고 살았지만 이를 실천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라온아띠 5개월간의 활동은 내 생각에서만 머물렀던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주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노력은 비단 5개월 활동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
개인에세이, 이새암
99+
컴퓨터 앞에 앉아 라온아띠 5기 지원서를 쓰던 때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5개월을 뒤돌아보는 마지막 일기를 쓰고 있는 내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모든 일정 하나하나 자세하게 짚어보고 회상해볼 수는 없지만 큼직큼직하게 되돌아보려한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행동들을 시작하게 된 우리는 가장 먼저 현지어인 베트남어를 배운다. 더운 날씨와 주변 사람들에 적응할 시간조차 없이 현지어 배우기에 돌입했던 난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정적인 코디와 다른 팀원들 덕분에 선의의 경쟁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공부했던 것 같다. 5주 배워서 쓸 일 없을 것 같던 현지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사항이 되었고 다른 생활과 활동들을 하면서 우리의 현지어는 점점 늘어갔다. 현지 적응시간을 갖고 난 뒤에 베트남 팀의 주된 활동인 홍안유치원 활동을 시작했다. 오고 가는 교통수단이 우릴 힘들게 했지만 갈 때마다 하얀 이빨 보이며 웃어주는 아이들 때문에 2달간의 유치원활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매일을 생활하며 언어와 문화, 그리고 나이를 넘어서 친구가 되었고 라온아띠가 되었다. 그 뒤에 있었던 워크캠프와 장애인학교, 장애인 체육대회 봉사, 그리고 베트남YMCA 워커들의 일 돕기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재미있게 보낸 듯하다. 적은 활동들을 꾸준히 하는 다른 팀들과는 다른 베트남 팀만의 특색인 다양한 활동을 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정말 많고 다양한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그들의 문화와 인생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지나와 보니 현지에 깊이 빠져들기엔 아쉬운 시간이었다. 이곳을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는 것이라고 국내훈련 때 배웠다. 내가 흔적을 남겼을까? 하하... 하나 확실한 것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흔적을 남긴 것이다. 흔적이라기보다 는 추억, 나중에 꺼내보며 웃을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개인에세이, 곽경필
99+
라온아띠 5기 베트남팀 곽경필입니다. 이제 5개월의 활동이 거의 끝나고 이주일의 시간만 남아있는 지금 활동을 한번 되돌아보면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시설을 방문하고 많은 행사에 참여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일까?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어떨 때는 그냥 방관해 버리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너무나 짧은 인연이 아쉬울 때도 있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 나는 항상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도 우리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회를 갖는다. 한국에서도 해보기 힘든 경험들을 나는 베트남에서 참 많이 경험했다. 여기서 했던 모든 활동들이 나에게 모두 신선한 활동들이고, 두 번 다시 하기 힘든 활동들이 많았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항상 언어라는 녀석을 나의 이런 마음가짐을 방해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 점도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잘 해온 것 같다. 여기서 활동을 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우리 라온아띠는 항상 베트남YMCA의 짐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언가를 할 때 마다 우리 곁에는 코디네이터, 혹은 봉사자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사실 외국인 5명이 돌아다니는데 현지인 1명씩 함께하는 것이 맞지만 항상 드는 미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베트남에 있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매우 추상적이지만, 다수에게 받은 고마움을 다른 이에게 또다시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남은 2주 동안 나는 다행히, 운 좋게도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분명 큰 나눔은 아니지만,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더 없이 좋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까지 일하고 싶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무언가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앞의 4개월만큼이나 중요한 마지막 1개월이 되는 것 같다.
개인에세이, 윤무종
99+
활동을 마무리하며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딱 5개월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많은 것을 얻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든다면 유용한 기술을 배워 간다든가, 아주 큰 규모의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든가, 나의 바람이었던 꿈을 찾는다든가... 하지만 지금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얻었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꼽자면 의식의 변화쯤이라고나 할까? 만약 라온아띠로 오지 못했다면 이 말레이시아라고 하는 매력적인 나라를 아주 늦게 알았을 것이다. 이 나라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 종교까지. 거기다 뛰어난 관광 요충지이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이 나라의 번화가 한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내가 정말 아시아에 있는 것인지, 아니 과연 이곳이 내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가난한 동남아시아의 나라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내훈련에서 배웠듯이 국제활동이 꼭 힘든 일을 맡아하거나 못사는 사람들에게 퍼담아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오기 전에 살짝 흘려들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우리는 장애인들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데 이 이유는 기본적 사회 바탕이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을 주변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였다. 내가 뭔가를 배워가자. 이 시간동안 뭔가를 받아가자. 긴 시간동안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왔다. 물론 일반적인 스태프들부터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봉사자들과 말레이시아의 일반적인 사람, 친구들. 덕분에 우습게도 눈에 띄게 얻어가는 것은 페이스북 친구목록이 많아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청각장애인들이다. 그들은 밝은 미소를 잃을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착해서 바보 같다. 항상 우리가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내가 이 시간동안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점은 받은 만큼 주지 못한 것이다. 이들 덕분에,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배운 수화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가게 되었다. 아마도 돌아가게 된다면 이제는 한국 수화를 배워 보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 정말로 내가 느낀 것은 별것 아니다. 이곳에서의 활동 중에 나 자신에게 가장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부모님의 생신을 잊었던 것이다. 그냥 새로운 환경에 도착하고, 마냥 모든 것이 신기해서 한국에서의 것들은 모두 잊었던 것 같다. 생신을 잊은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연락도 너무 소홀했다. 덕분에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에 대한 소홀함도 미안해졌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준 친구들과 지인들까지... 정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고 있었다. 5개월간 새로운 친구를 많이 만났던 만큼 내가 머물렀던 그 자리,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 가장 중요한 나의 깨달음이었다. 만약 나의 주변사람이 해외로 나가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정말 계획을 정확히 세우고 가는 것이냐고. 그만큼 나의 허술한 5개월에 후회가 남긴 하다. 물론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안목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자신이 위치해 있는 그 자리에서 더 발전해 나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 희노애락을 나누며 별탈없이 같이 생활했던 4명의 단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개인에세이, 문기
99+
말레이시아를 떠난다5개월간의 말레이시아 생활이 끝나가고 있다. 지금에 와서 자원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면접과 국내훈련 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지금도 자원 활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5개월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은 것을 공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나만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 와서 나의 무능력함을 다시 느꼈다. 영어와 말레이시아어를 못하는 나는 staff과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고, 미술과 율동에 능통하지 못하고 번뜩이는 창의력과 아이디어도 없는 나는 프로그램 준비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컴퓨터를 못하는 나는 보고서 제작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함께 활동한 단원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또한 나를 뽑아준 한국 YMCA에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나로 인하여 탈락한 지원자들에게 미안하다. 나 말고 다른 지원자가 왔었다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를 지극히 아껴주시는 아이린 선생님, 수화선생님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샌디, PMY 유치원 선생님인 에스더 누나, 베다니홈 체육 선생님인 아즈미 형, 나에게 많은 힘과 용기가 되어준 베다니홈 학생들, 페낭 YMCA 수화 선생님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메이메이. 그리고 모든 staff와 봉사자들은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받은 가장 큰 축복인 것 같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많은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했다. 수화 선생님인 샌디, 메이메이, PMY 유치원 선생님인 에스더는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또한 베다니홈 체육선생님인 아즈미도 청각장애인이다. 나는 이들에게 수화 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배웠다. 베다니 홈 학생들은 모두 지적 장애인이다. 나는 이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자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너무나도 행복했고, 많은 힘과 용기를 얻었다. 이것들은 내가 평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페낭 YMCA에서는 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소개 워크샵을 개최하고 청각장애인 학교를 방문해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한국 게임을 하고 한복을 입어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들은 모두 프로그램이 끝나면 한국 수화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이들에게 진정한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 곧 말레이시아를 떠난다. 말레이시아에 있으면서 항상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었다. 왜냐하면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의 지친 삶을 탈피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빨리 돌아가서 한국의 삶 속에서 나의 길을 찾고 싶다. 말레이시아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앞으로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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