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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Jr 1기> 캄보디아.. 그 후 (링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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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으... 미치겠다 진짜일어나자마자... 도저히 적응이안된다 침대에서 혼자 잠이든다는거, 잠들때 코고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거, 아무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다는거, 일어나면 주위엔 아무도 없는거, 아침을 혼자 식탁에앉아서 차려먹는거, 아침밥을 접시가아닌 밥그릇에 먹는거,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이다가 이제는 내가 자유롭게 일정을 짜가면서 움직여야 한다는거......... 일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행동한 모든게 다 어색하다...캄보디아에서의 생활에 너무 적응해버렸나봐... 마치 그곳에서의 생활은 꿈이고 이제 꿈을깨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지금도 내 눈엔 캄보디아 어린친구들이 달려들어서 장난을 걸구, 우리 팀이 한마음으로 캔들라이트 하고 밤새고 놀고, 센터갔다가 오는길엔 트럭타고 다같이 노래를 부르며 시골길을 달리고, 라온아띠 형,누나들과 다일공동체 식구분들이 따뜻하게 챙겨주는 모습이 어른거리는데.....너희들과 헤어진지는 하루, 24시간도 채 되지않았는데 벌써부터 너네가 너무 그립고 보고싶다 이 홈피 딱 들어갔을때 BGM으로 '언젠가는' 저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 알지? 10박 11일동안 우리는 살짝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내 생각엔 우린 환상의 하모니였어각자 캐릭터들이 너무 개성있어서 한번도 만나보지못한 친구들이였는데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캐릭터였기때문에) 우리 팀 모두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각자의 가슴속에는 캄보디아에서의 모든활동이 네버엔딩 스토리로 기억될 거라고 믿어캔들라이트때 얘기가 나온거처럼 우리 10명모두 연락 쭉 하면서 우리끼리라도 다시 캄보디아에 다시 가보자 난 캄보디아에서 얻어온게 진짜진짜 많은거같애 먼저 캄보디아에서의 잊을수 없는 추억도 있고(아직도 캔들라이트를 하는 순간과, 배구대회때 클리닉에서 애들붙잡고 운기억은... 절대 못잊어 ), 외동인 나에게 완소 동생이 생겼구, 가장소중한 라온아띠 Jr 팀과의 우정들... 가장 좋았던거는 내자신을 다시 돌아볼수있는 계기도 되었던거 같애... 너희들도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많은걸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최고연장자인 나와 5명의 고2들은 아마 많은 기회가 없겠지만 막내 시뚱이를 비롯해서 중딩들은 이런기회가 아마 진짜 많을거야. 난 이런 활동이 있다는것을 너무 늦게알아버렸지만 너희들은 이 활동을 계기로 더 많은 경험을 해보길 바랄게그리고 고딩들은... 알지? 죽어라 공부만하자 ㅋㅋㅋㅋ 그러고 2년후엔 각자의 꿈에 가까워진 상태로 다시 모이는거야 ㅎㅎㅎ할말이 진짜진짜 많은데....... 기억이 안난다 ㅋㅋㅋ 하고싶은말 기억날때마다 들려서 또 글 올려야지모 ... ㅋㅋ 연락끊는자식 한명이라도 생기면 내가 찾아가서 싸대기때린다 ㅡ_ㅡ (안되면 꿈에서라도....)다들 다시 만날때까지 몸건강히 잘 지내고!!! 우리 추억 잊지말자!!!!출처 : 라온아띠 주니어 1기 캄보디아팀 카페글(본인 작성) http://club.cyworld.com/5356766813/218164
[Last scene]듸비아 에서 엄윤아로 돌아오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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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이 걸렸습니다.인도에서의 이름. 'DIVYA'로 5개월간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을때 나에 대해 실망하며, 라온아띠를 후회하며, 다른 사람을 탓했습니다온전히 인도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으나 나는 '한국피를 가진 인도인'이었나 봅니다.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현지옷을 입고, 현지식대로 밥을 먹으며, 현지어를 하는 제가 신기한 외국인 정도로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언제 또 올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아례일랴(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어쩌면 이게 진짜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너무 매정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만약에 잠깐 왔다 가는 것이었다면 그냥 또 오겠다며 거짓아닌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겠지요.난 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진짜 제가 올때까지 기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미안합니다.외국인 몇명이 허락도 없이 삶을 헤집어 놓고 갑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헤어짐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당신네들이,말이 아닌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것이.인도에서 나는 듸비아 였지만한국에서의 나는 엄윤아 입니다.또다시 이렇게 제 생활로 돌아왔지만듸비아로 살아갔던 5개월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조언과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이말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윈둠까남" (또 봐요)
2009.08.01. Campaign in Samkhanpaeng street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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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우리의마지막활동이될듯한캠페인...우리가 살고 있는(우리의 주요 숙소) 삼칸펭YMCA 바로 앞에는 Main street가 하나 있는데,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마다 STREET MARKET이 열린다.치앙마이에 있는 나이트바자나 선데이마켓보다 조금 더 서민적이고,외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정말로 태국스러운 곳이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이벤트 중에 하나이다. 바깥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토요일의 Street market은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여기에서 지낼 땐 항상 토요일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뭔가 사고 싶어서라기 보단 그냥 그 분위기 자체를 즐겼달까,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6월 이후(사실은 5월 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에는 본격적으로 태국의 우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street market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오늘은 살 수 있을까, 오늘은 비가 안와야 될 텐데 하면서 6, 7월을 보냈다.홈스테이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제대로 street market을 가지 못했는데 벌써 마지막이다.이제 태국에서의 토요일도 마지막이야,바로 3일 뒤면 태국을 떠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왠지 평생 살고 있을 것만 같았던 곳이여서 그랬나 ?어쨌든,7월 마지막 주 부터 태국팀은 좀 바빴다.태국으로 한국에서 오는 2팀의 단기 봉사팀이 들어오게 되어 송국장님과 피인타논의 부탁으로 심각하게 회의를 한 끝에(?) 더이따오팀은 주니어 라온아띠를 맡아서 활동하게 되었고 우리 미녀 람푼팀은(^^) 인천Y에서 오는 꼬꼬마들을 맡아서 활동하게 되었다.이제 끝일 것 같았던 홈스테이도 하고 벽화도 그렸다.그리고 오늘은 공식적으로 우리의 마지막 활동이 될 캠페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제대로 설명을 듣진 못했지만 (아마)1기 활동의 연장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 삼칸펭 street market에서의 캠페인활동은 이어질 것 같다.태국아이들은 전날 부터 삼칸펭에 머무르면서 이런 저런 준비도 하고 각 팀별로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전투적인(?)태세로 캠페인에 몰입했다.주니어 라온아띠 친구들, 그리고 인천Y 친구들 모두모두 열심히 다 참여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또 성공리에 캠페인을 마칠 수 있었다.마지막에는 집에 옮겨심을 수 있는 새싹(?)과 재활용 가방을 팔았었는데 팔다가 노래부르다가 팔다가 춤추다가 태국친구들, 한국친구들 함께 즐길 수 있었다.우리의마지막활동이이렇게끝났다▲ 각자 팀을 나눠 준비한 주제로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발표▲ 피챠님의 반 협박으로 이뤄진 응원단(웃음)▲ 함께 즐겨준 고마운 인천Y 친구들 윗줄, 좌로부터 오플로이, 간지지수, 영어를잘할것만같은정열이, 김퐈, 구따완, 귀염둥이...▲ 찍사한다고 제대로 사진 못찍어서 같이 찍어준 친절한 애기들과 장마리
태국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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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많이 그리울 것 같은 사람들과 장소는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싸우고 웃고 운동했던 숙소, 쌍캉펭YMCA나 YMCA 사람들이 아니라집 앞에 있는 작은 TESCO LOTUS와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름을 묻고, 여기 왜 왔는지 묻기 시작했다.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사실 여기서 나는 봉사자가 아니다. 다치면 안되는 '귀빈'이다.내 이름은 춈푸, 박선하가 아니었고 '콘까올리(한국인)' 또는 '국민은행과 한국Y서포트를 받아서 온 아이' 였다.그것에 질리고 질려 있던 내게 막무가내로 반말을 찍찍 하며 이름을 묻던 그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Y에서 하지말라는 일은 다 종용하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내가 말을 못알아들으면 발차기부터 날라오는 게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지점장 아저씨가 돈도 안쓰고 앉아서 시끄럽게 놀다가 별 희한한 짓 다 하고 가는 나를 슬슬 째려보기 시작해도 나는 버티고 앉아 있었다.매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테스코에 가서 가끔 일도 하고, 발차기하고 머리 치면서 놀고, 되도 않는 태국어로 수다떨고,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아이들과 술을 마셨다. 태국 Y의 답답함에 눌려 있던 내게 그 아이들은 오아시스 같았다.실제로 알콜을 공급해주는 오아시스였다. (ㅋㅋㅋ)나를 막 대해주는 그 아이들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ㅋㅋㅋㅋ)쉬는 날에는 차나 오토바이로 시내에 놀러가기도 했다.유일한 여자아이인 BIW가 남자친구에게 차였을 때 같이 위로주를 마셨다.며칠씩 다른 지역을 가면 아이들은 언제 오냐, 선물 사와라며 계속 전화를 해댔다.그러면서 태국어가 참 많이 늘었다.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아이들은 내게 태국어를 열심히 가르쳤다.그러던 내게 얼마 전한 친구가 물었다."6일날 우리 다같이 원숭이 보러 가기로 했어. 같이 갈꺼지?""나...사실 말 못했는데, 4일날 한국 가."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가 중요한 선언을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음...... 그럼 비행기 표 바꾸면 되겠네. 더 있다 가."며칠 후, 내가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아이들은내 MP3에 태국 노래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자기 USB를 빌려줬다.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다음에 태국 또 놀러올 때, 그 때 돌려줘. 그니까 꼭 다시 와."인건비가 싸고 전자제품은 비싼 태국에서 비싼 물건일텐데,그만 염치도 없이 받고 말았다.꼭 다시 올게.이별이 아니라, 돌아가서도 처음 라온아띠 출국날짜를 설레며 기다렸던 것 처럼다시 너희를 만날 날을 설레게 손꼽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게.4일,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이별을 고하기에도 내게는 부족한 시간.
순간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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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티여우 익 마이?' 안녕-안녕-하는 슬픈 말 대신 아이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묻는다.한국 안보내 줄거야. 라고 억지를 부려보던 친구들도 이제는 체념한 듯 이렇게 묻는다.고작 3일동안 밥만 축내던 우리를 보내며 우리집 메(엄마)가 펑펑 우시며 물었다.모두들, 안녕이라는 인사는 하기 싫은지 내 손을 꼭 잡고 묻는다.'또 놀러 올거야?' 라고. 그럼 또 나는 되묻고 싶다.'왜 또 살러 올거냐고 묻지 않는거야?' 그들도, 나도 알고 있다. 이곳이 내게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1달간의 홈스테이를 마치고 차에 탈 때 펑펑 울던 우리집 아이도,고작 3일간 많이 먹고 늦게 일어나던 게으른 우리를 보내며 펑펑 우시던 치앙라이 엄마도,나의 '탈선행각'에 큰 도움을 주었던 YMCA와 상관없는 동네 친구들도,매일 우리를 위해 밥을 해 주시던 스탭들도.나는 이곳을 5개월간 느리게 지나가는 사람.이제 나의 발걸음이 4박자를 맞추어 이 곳을 완전히 빠져나가면내가 없었다는 듯이 이 사람들의 일상은 돌아가겠지만아마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학교에 갈때마다 꼬질한 내가 뭐 그리 좋다고 달려들던 도이따오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자전거 타던 쌍캉펭의 예쁜 하늘,매일같이 놀러가서 요구르트 하나 사고 앉아서 놀았던 집 앞 TESCO 친구들,어디 멀리 가서 숙소에 없을 땐 전화를 해서 선물사오라며 한마디씩 시끄러웠던 그 아이들,그 앞에 앉아서 같이 맥주를 마시다가 봤던 밤 거리 풍경,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코끼리,내가 머리에 쓰고 다니던 수건이 보기 싫다며 확 뺏어버리던 도이따오 선생님들,나를 보내주며 펑펑 울던 매홍손의 꼽,벤이 아닌 자전거를 타며 달리던 길도이따오에서 9살짜리가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던 길,음악을 연주하며 같이 태국 유행가를 불렀던 것놀아달라고 쫓아오는 아이들이 무서워서 자는척하다가 더워 질식할 뻔 했던 것,밤에 몰래 집 앞에 나갔다가 문이 잠겨서 담넘고 들어왔던 기억스탭이랑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싸우고 한달 넘게 말도 안하고 지냈던 것'깨- 너 맨날 까불지만 니가 참 좋은 애라는거 알아. 너 정말정말 좋아해' 했더니얼굴이 빨개지며 자전거로 저 끝까지 달려가 버리던 도이따오 산골아이'YOU! 띵똥 막막 러이 - (띵똥 : CRAZY / 막막 : 너무, 엄-청!)" 하던 치앙라이 아이들별 대단한 것들보다쉽게 지나칠 수 있던 순간들이 기억속에 선명하다.이제 곧 모두가 '과거'가 되겠지만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나를 위로해 준다.너의 영원한 미소 그리워 이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겐 기쁨이 더 많았어영원한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이제 모두 영원한 순간이 되려하네참 잘 했다, 라고 스스로 뿌듯해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기에.
[인도를 떠나며] 꼭 다시 만나요. 윈둠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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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달간 Ayiramthengu YMCA에서 요가, 스트레칭,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였다.1) 최유진 단원의 한국어 수업2) 강은지 단원의 요가 수업 7월 18-19일 이틀간 인도 케랄라 지역 Uni-Y 멤버들과 함께Indo-Korean Youth Camp를 진행하였다.1) 유세근 단원의 단소 공연2) 한국 전통의상 및 관련 자료를 전시1) Ayiramthengu YMCA 전경2) 옆 동네 Alappad 지역의 해변3) 접니다. 하하하 살이 좀 쪘죠?마지막 활동 지역인 아이람땡구에서 다섯명 모두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고현지 코디와의 갈등도 최고조에 이르렀고일이 없다며 송실장님과 윤간사님께 SOS를 외쳐대고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반대하던 홈스테이를 두번씩이나 했다. 모기한테 50방도 넘게 물려 잠못자던 밤, 우리 숙소가 얼마나 편한건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인도의 보통 사람들 속에 묻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정작 내몸은 편한것만 추구했던 게으른 내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소중한 친구들, 또 그들의 가족들, 이웃들과 소통하면서 '참' 인도를 만난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헤어질 때 눈물 한방울 안보인 나에게,그렇게 많은 정을 주지 않았던 모진 나에게,뜨거운 눈물과 함께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준 모든이들에게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난니. 윈둠까남!"(고맙습니다. 또 봐요!)
준호와 세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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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오기 전 몇몇 라온아띠 단원들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세근이랑 준호 어떤애들이야? 둘 다 되게 괜찮은 애들 같은데 국내 훈련기간 동안 둘 다 너무 조용해서 얘기를 많이 못했어."세근이 같은 경우에는 팬클럽도 결성 됐었다.회장에 희곤이, 부회장에 은지였나?아직도 이 둘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사진 한 장에 간단한 소개 올립니다. 우리팀에 딱 둘밖에 없는 남자 팀원들,준호와 세근이는 86년생으로 동갑내기이다.준호는 대구에 살고 사진을 전공하고 있고,세근이는 서울에 살고 전공은 보건행정이다. 아무튼 이 둘은 나이도 같고남자가 둘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그러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어색했다. (그 둘은 아니라고 우겼지만 여자 셋이 볼 땐, 인도 와서도 한동안 어색함 그자체였다)세근이는 DISC진단으로 극C형이다. 내성적이면서 꼼꼼하고 매사에 신중하다. 겉모습도 그렇듯 매우 어른스럽다. 준호는 I형으로 매사에 설렁설렁 넘어가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면서 때로는 소녀같은 감수성을 보일때도 있다. 또 한가지 특징은 놀러가거나 다른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조증'을 보인다는 것? 참! 술도 못마신다. 생긴건 제일 잘 마시게 생겼는데 한잔도 잘 못마신다.이 둘은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많이 달라서친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둘의 유일한 공통점 '먹을걸 좋아한다는거' 때문에 그나마 친해질 수 있었다. 여자 단원들보다 입맛도 까다롭고 먹는양도 더 적지만먹을게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갈만큼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아무튼 그 둘은 그렇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친해졌다.맨날 팀에 오빠 없다고 툴툴대는 나에게 때로는 친구같기도, 때로는 아들같기도 했던 둘이다. Photo by 여준호
우리 8월 4일 한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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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8월 4일 한국 가요.다음주 금요일 마지막이에요.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어쩌다보니 '마지막'이라는 글자 빼곤 수업시간에 가르쳐 주었던 단어들이었다. 한자한자 되뇌며,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새로이 알려주었더니 희곤(18), 세민(16) 두 형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을까? 미안했다.그 다음날, Children's club 아이들과의 마지막 시간.반나절 함께 놀다가 끝날 무렵, 그동안의 모습을 담은 소식지와 즉석사진을 찍어 나눠주는데, 아까 짝피구할 땐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던 씩씩한 우리 아이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또 미안해졌다.난 하나도 안 슬픈데, 아이들은 슬픈가보다.난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우리가 좋은 친구였나보다.헤어짐이 아쉬워서이기보다는, 아이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에, 그리고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초등학교 2학년, 좋아하던 선생님이 전근 가시던 날.초등학교 4학년, 전학 가던 날.초등학교 6학년, 친한 친구들과 다른 중학교 배정받던 날.나에게 몇번 안되는 헤어짐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어딜가나 항상 손님이었던 우리 5명."기힝엔낭"(안녕히계세요)을 자주 쓰다보니 가끔가다 "기힝엔너"(안녕히가세요)를 써야할 때도 "기힝엔낭"이 툭 튀어나온다.가까운 사람일수록 쓰지 않는 단어, 기힝엔낭.이제 그 가까운 사람에게 이 잔인한 말을 해야할 날이 머지 않았다.
Good bye..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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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만 느껴지던 5개월의 기간.. 그 기간동안 이곳 케랄라에서 참 많이 웃고 즐거웠던기억도 많지만, 활동기간이 3개월,4개월로 넘어가면서 현지인들의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이 화나다 못해 분노하고 욕하기도 하고 라온아띠를 내던지고 싶을때도 있었다.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왜 라온아띠에 지원했을까? 라온아띠를 위해서 내가 버리고 포기해야 했던 크고 작은것들...이 생각나 더욱 감정을 격분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떠나고 싶던 케랄라 였는데, 막상 이렇게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가 라온아띠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5개월동안 생활하면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얼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아쉽게만 느껴진다. 가족과 떨어져서 매끼 카레만(현지인들은 다르다지만 우리가 느끼기엔 카레) 먹으며 함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던 유진누나,세근,윤아,은지...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를 망설임 없이 친구로 받아준 마을식구들...그리고 우연히 버스 옆자리에 앉아 우리가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이곳에서 스타라며 우리가 5명이고 YMCA에 지내고 있고 한국인이고 매일 어디서 어디로 이동한다는것을 알고 있던 이름모를 사람들... 그들이 이곳에 주인공인데 내가 주인 마냥 행동하고 그들에게 바라고 그들의 삶에 허락없이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이룬일 아니 한일 하나 없는데 이렇게 떠난다니...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지만 살면서 한번도 못올수도 있지만 확실한건 우리가 서로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수있을거라 믿고, 마음과 웃음을 나누고 눈물을 나눴던 눈이 크고 아름답던 친구들...오랫동안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것같다.. 우리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친구들...난니..나마스까람..보이뜨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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