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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봉의 에세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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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봉의 에세이 # 1. -동기-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타국의 그리고 태국의 공기와 호흡했을 때 생각보다 신선했고 생각보다 선선했음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던 시간이 어느덧 한 달의 기간을 갖고 돌아볼 여유를 가진다. 여전히 맥주를 마시면 다음날 속이 쓰리고 여전히 팍치의 향에 적응을 못하고 여전히11명과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개가 물어간 내 운동화의 다른 한 쪽은 여전히 행방불명이며 여전히 여자친구의 따뜻한 온기가 무척이나 그립다. 제법 많은 학교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일주일 간 머물며 여러 아이들과 학생과 선생님과 기타 등등의 인물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한류의 본국에서 날아온 신기한 까올리(태국 사람이 한국인을 부르는 말) 인지 그들을 변화시키려 온 자원활동가인지 이기적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 그들을 만나고 있는 경험주의자인지. 애초에 즐거울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고 충분히 즐겁다.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의미를 두기 싫지만 무언의 압력이 날 이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내가 온 이유는 이미 지나간 일이건만 새로 더 큰 의미와 뜻을 가미해서 포장하라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날 자꾸 조인다. 비겁하지만 조금은 수긍하여 내가 지원한 동기를 수정해본다. ‘당장 내가 즐겁고 싶어서 그리고 모두와 함께 즐겁고 싶어서’ . .
[뉴스 클리핑-2]Timor-Leste's to be set up in employ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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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1일 목요일 Timor-Leste's to be set up in employment office in South Korea 동티모르는 노동자의 구직을 촉진시키기 위해 한국에 고용 사무실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2009년 정부는 한국에 가서 일할 티모르 인력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 예정이다. 정부는 한국을 마케팅 매니저로 선정했으며, 한국 기업들과 인력 데이터 베이스를 연계할 것이다. 데이터 베이스의 정보는 1년 동안 유효하다. 그리고 직업 계획에 따라 재등록이 가능하다. SEFOPE(State Secretary for Professional Formation and Employment)의 Benedito Freitas는 한국의 노동부의 산업 부문은 자격있는 잠재적 티모르 인력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검토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 기업과 동티모르 인력을 연결시켜 동티모르에 알려줄 예정이다. 동티모르 정부는 약 6000명의 인력이 한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먼저 지원자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고 작업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그들은 한국어 수업을 듣게 될 계획이다. 17명의 한국어 강사가 3달 동안 딜리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Freitas는 “이러한 것들은 2008년 5월 13일 한국과 체결된 협정의 결과이다.”말했다. 한국에서의 고용을 위한 자격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18-38살 사이이며 범죄 경력이 없으며 행동이 바르고 한국어 수업 과정을 3달 수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부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Apolinario Simao(실업자)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함께 보조를 맞춘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 높은 청년 실업률과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비난했다.
[에세이-6]티모르 레스테, 그리고 UN by 심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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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단체의 마크를 붙인 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UN 마크를 단 차가 가장 많다. 간단히 UN에서 시작하여 UNDP, UNICEF, UNMIT, UNPOL 등 UN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곳 동티모르에 관여하고 있다. 9월 21일 PEACE DAY 행사장에는 각국에서 온 UN 국제 경찰이 자리를 함께 하였는데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이곳에 인력을 파견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UN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다. 99년 10월 25일, 동티모르 독립이 현실화될 때까지 과도기 통치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가진 ‘UN 동티모르 임시 행정 기구’ 이른바 UNDAET의 설치가 결정되었다. 원래 국가 간 분쟁 사이에서 정전 감시나 군사 철수가 중심 역할이었던 PKO(평화유지군)의 새로운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UN PKO는 캄보디아, 코소보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3권 모두를 직접 통치하는 과도 정부는 동티모르의 경우가 처음이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비판과 회의적 시각이 있었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동티모르가 아직 외부 세력의 지배 하에서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시각 역시 있었다. UN의 활동은 처음부터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많았다. 특히, 독립-자치 선거에서 독립이 결정되고 일어난 유혈 사태는 치명적이었다. 이 때 UN의 많은 직원은 동티모르를 빠져나갔으며 이로 인해 동티모르 주민으로부터의 신뢰를 많은 부분 잃어버렸다. UN이 제시한 독립에 관한 로드맵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무리에 의해 살인과 폭력, 파괴와 방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과도 정부는 2002년 5월 20일에 독립을 선포하면서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곧 따른 대통령 선거에서는 82.7%의 선거율을 보이며 사나나 구스마웅이 선출되었다. 그렇지만 UN이 완전 철수한 것은 아니다. 2008년 지금에도 많은 UN 관련 기구를 찾아볼 수 있다. 과도 정부 이후에도 동티모르의 안정과 행정능력의 확부 등을 위한 후속 PKO와 UN 동티모르 지원단이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PKO로 상록수 부대를 로스팔로스 지역에 파견한 바 있다. PEACE DAY 행사장에서 동티모르에 파견되어 있는 한국 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타지에서 만나 반갑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독립한지 6년이 지난 지금 아직 경찰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동티모르의 현실이 아쉬웠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하나씩 신생국 동티모르는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2008년 9월 11일 딜리 위클리에 의하면 PNTL(Timor-Leste National Police)은 NU 경찰로부터 2009년 5월에 치안에 관한 모든 책임을 위임받게 된다고 한다. 물론 여기엔 경찰력이 그때까지 완비되지 않는다면 기간은 유예될 수 있다라는 조건이 붙여져 있긴 하지만.
[에세이-5]동티모르 딜리의 마을 탐방 by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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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부터 21일가지 3일간 동티모르(Timor - Leste) 수도 Dili(딜리)의 여러 마을을 홀로 걸어 다녔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도로 가의 건물과 사람들이 아닌, 사람 사는 모습을 몸소 느끼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다. 3일간 여섯 마을을 체험했다. 한 도시에 있는 마을들 이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각각 달랐다. 1. Merkadu Tai Besi(New Marker) 뒤편의 산동네 이 마을은 산에 위치하고 있어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길이 하나밖에 없는 외길이다. 그래서 외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다. Same(사메)에서와 같이 아이들이 나를 보면, 뒤에서 내 걸음에 맞춰 계속 따라온다. 내가 보는 곳을 같이 주시하고, 나에 행동을 보며 신기해한다. 다행히 사메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았다. 멀리서 나를 발견한 주민들은 Malae(말라이 : 테툼어로 “외국인”) 라면서 부른다. 그 답변으로 내가 Botarde(Good afternoon)라고 말하면 즐거워하면서 다시 인사를 건네준다. 산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상수도 시설은 갖추어져 있어 위생과 아이들의 모습은 괜찮아 보였다. 이 마을에서는 주로 걷기만 하여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러나, 길을 몰라 주민들에게 물어봤을 때 아이에서 어른까지 서로 나서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2. UN주둔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 처음부터 이 마을은 동티모르의 마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하게 갖추어진 하수도 시설(동티모르에는 따로 하수도 시설이 집집마다 갖추어져 있지 않다)과 시멘트로 포장된 인도와 도로, 그리고 동네 아이들의 대부분은 혼혈이거나 백인이 많았다. 외국인인 내가 지가가도 주민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이 마을은 UN이나 외국인이 모여 사는 잘 사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티모르의 고소득층이 현지 주민들이 아는 UN이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3. Kuluhun 지역의 마을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마을이다. 길가에는 사람보다 닭, 돼지, 개 등의 가축이 더 많이 보인다. 동티모르 마을의 집들은 외벽을 거의 짓지 않는다. 집과 집 사이로 항상 길이 있다. 그래서 어느 마을이나 다녀보면 미로에 들어온 기분이다. 걷다가 길을 잃어, 발코니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집이 보여 길을 물어보았다. 길은 가르쳐주지 않고 나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보아서,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티모르에 오게 된 이유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 주고, 그 가족들의 구성원과 생계유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었다. 어느 집이나 아이들의 수는 상당히 많다. 아이들만 5~8명 되는 게 보통인 거 같다. 이 마을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자동차는 들어올 수 없다. 공터가 없어 공은 차기 힘들고, 마을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것을 보았다. 비닐봉지를 찢어서 만든 연인데, 아이와 함께 연을 날려보았다. 전깃줄이 복잡하지 않아 엉킬 위험 없이 쉽게 연을 날릴 수 있었다. 마을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나무와 가축 그리고 주민이 어우러진 포근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4. Santa Cruz(산타크루즈) 지역의 마을 산타크루즈 묘지에서 대학살이 이루어졌던 마을이다. 얼마 전에 난민 촌에 지내던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 집들의 벽이 성한 것이 거의 없다. 지붕만 겨우 다시 올려 그 안에서 살고 있다. 내가 집 앞을 지나가니 다들 경계의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 눈초리에 살기를 느껴 마을 걷기가 무서웠다. 그리고 땡볕 속에서 계속 걸었더니 지치고 목이 말랐다. 그때,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가족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반가운 인사가 아닌, 여기서 뭐하느냐라는 인사였다. 딜리의 마을을 알기 위해 혼자 걸어 다니고 있고, 한국에서 왔다고 답변했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중국인은 딜리의 상점을 독점하고 있고, 일본인은 과거에 동티모르를 침략했고, 인사를 잘하지 않아 싫어한다고 한다. 그 가족들과 함께 대나무에 칼을 묶어 나무에 매달린 망고를 따서 먹고,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며 쉬었다. 나중에 여기서 마신 물로 인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했지만, 귀한 식수를 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5. Merkadu lama(Old Market) 지역의 마을 이 마을은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운딜 대학교 옆의 YMCA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같이 운동하고, 이야기 했던 친구들이 많은 마을이다. 나무를 자르고 있는 Nunu라는 이름의 친구를 만가게 되어, 자신의 집과 가족을 소개해 주겠다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온 가족들과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다. 동티모르 악수는 한국과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손을 쥐어 잡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2단계로 엄지 사이로 손을 넣어 다시 손을 잡는다. 친한 친구 사이에는 3단계로 주먹을 서로 부딪치고 4단계로 총 모양을 손가락으로 만들어 상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끝난다. 이 마을은 자갈이 깔린 큰 길이 중앙에 있고, 양 옆에 집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시멘트 바닥으로 된 농구 코트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마켓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정이 많아, 정돈이 잘된 시설 안에서 살고 있다. 6. 운딜대학교 뒤편의 마을 아침이면 닭들의 울음소리가 우리들을 잠에서 깨워주는 마을이다. 여태껏 가본 마을 중에서 가장 깨끗했다. 주민들 스스로 먼지가 나지 않게 집 주위에 물을 뿌리고,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옷차림이 깔끔하고, 청년들은 청바지에 말쑥한 차림이었다. 여기서 Antonio(안토니오)라는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되었다. 역시 동티모르 사람답게 일가 친척의 집과 가족을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었다. 잠깐 사이에 악수한 사람만 30명은 족히 넘은 거 같다. 동티모르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으면 군대, 정부, UN에서 통역이나 번역가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동티모르 군인이었다. 옆집에 살고 있다는 태국 사람의 친구와 이야기 해보라며 나를 소개해 주었고, 그 집 아이들과 사진을 같이 찍었다. 이 마을에는 농구 코트뿐만 아니라, 배트민턴과 배구 코트까지 있다. 예전에 Mr. Song 이라는 한국 사람이 잠깐 살고 가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줬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인 나에게 모두들 호의적이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내가 자신들의 집 앞을 지나가면 의자에 앉아서 쉬어 가라고 한다. 그래서 그늘에서 마을 주민들과 둥글게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도시의 마을이 아닌 수도 딜리만의 마을을 탐방하였다. 조금씩 다른 점이 있지만 공통된 부분도 있다. 눈이 충혈되거나, 눈병에 걸린 주민이 많았다. 잘 씻지 않고 건기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먼지가 많이 날려서 그런 거 같은데, 딜리 뿐만 아니라 Same와 Lospalos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그 원인을 더 알아봐야겠다. 집 주위는 청결하고 깨끗하나, 마을 공동의 길은 지저분했다. 동티모르는 예전부터 가족중심주의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집안의 일을 돕는다.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 만의 일이 아니고, 누나의 문제는 누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여러 장점이 있지만, 마을 공동 물품이나 길만 보더라도 단점을 알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계를 하지만, 일단 인사를 하면 정말 친절하게 변한다. 가늘고 거친 눈매에서, 동그랗고 선한 눈으로 변할 때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선천적으로 착하고 순하지만, 많은 억압과 핍박으로 인해 지금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박은 어느 마을에서나 있었다. 주로 닭싸움, 카드게임, 번호판에 공을 굴러 멈춰진 번호가 이기는 도박이 일상처럼 행해지고 있다. 워낙 낙천적인 사람들이라 도박으로 인해 큰 다툼은 없지만, 도박에서 주고 받는 액수가 너무나 큰 액수라 보기에 좋지만은 않았다. 딜리의 마을들은 우물을 쓰지 않는다. 다른 동티모르 지역의 마을과는 다르게 상수도 시설이 어느 정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가옥을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딜리이다. 모든 집들은 콘크리트 블록의 벽에, 양철로 된 지붕이다. 동티모르 만의 색을 잃어가고 있는 딜리의 마을들. 한국처럼 기반 시설과 경제 발전에만 열중하지 말고, 자연보호와 전통에 대한 보전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 사진 설명 &&가. 지도 * : YMCA 숙소 1 : Merkadu Tai besi 지역 마을 2 : UN 주둔지와 가까운 마을 3 : Kuluhun 지역 마을 4 : Santa Cruz 지역 마을 5 : Merkadu Lama 마을 6 : 운딜 지역 마을 나. 운딜 지역 마을의 아이들과 나무 그늘 아래에서 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운딜 지역 마을 (마을 청년들이 낚시줄을 이용하여 과일을 따고 있다) 라. 딜리 마을의 집은 대부분 콘크리트 벽돌로 만든 집이다 (가스불 보다는 화덕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위험상 목조 가옥이 사라지고 있다) 1.2.3.*지도*
[에세이-4]아반, 아띠가 말하다 <1> : 시장 by 배효정, 홍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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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과 아띠의 합동 에세이 아반 아띠야, 우리 지금까지 시장에 몇 번 갔었지? 아띠 꽤 여러 번 갔었던 것 같아. 아반 내가 있잖아, 중학생 때는 시장에 되게 자주 갔거든? 내가 사는 데는, 5일장이 서서 4일하고 9일에는 장이 섰었어. 친구들하고 가서 과자도 사먹고 핫도그도 사먹고 막 그랬었는데, 여기 시장이 우리 동네 시장보다 더 크더라. 한 나라의 수도에 서는 시장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너네도 5일장이란 게 섰어? 아띠 5일 장이 있어. 우리 순천에도 5일 장이 있고, 또 다른 여러 장(場)이 있는데, 관심이 없어서 무슨 장이 있는 진 모르겠다. 근데 나도, 부모님이 식당 일을 하셨을 때, 여러 번 따라다녀 봤었는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빠랑 엄마랑 새벽 장에 가곤 했어. 아반 으음. 새벽 장? 여기도 새벽에 되게 일찍부터 장이 서잖아. 우리 아침마다 빵 사러 갈 때도 6시 반? 이 정도로 일찍 나서는데도, 가면 사람들이 막 북적북적하고,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도 많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체로 굉장히 일찍부터 움직이는 것 같애. 그래서 새벽에 시장에 갔는데도, 한국에서 그런 새벽 시장 아니고, 그냥 보통 장날 같은 그런 느낌? 아띠 내가 동티모르 와서, 영주 언니랑 첫 당번이어서 먼저 빵을 사러 시장에 갔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무슨 (특별한) 장날인 줄 알았어. 아반 나는 맨첨에, 딜리 투어 한다고 간사님들하고 다 같이 시장에 갔을 때- 거기 있잖아, 왜. 여기서 제일 가까운 시장. (보람 언니가 라마 시장이라고 알려줬다.) 아, 메르카두 라마! 그 때 딱 맨 처음에 갔을 때, 두부 보고 놀라고, 우리 한국이랑 똑같은 게 있어서, 옷 파는 데 보고 놀라고, 곳곳에 묶여 있는 닭 보고 놀라고. 생고기들을 막 널어놓고 파는 거 보고 놀라고 막 그랬어. 두부는, 한국이랑 똑같긴 해서 좋긴 했는데, 사실은 한 통에 두부가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데, 거기 그 국물 있잖아, 하얀 물 안에 담겨져 있는 두부, 그게 사실은 좀, 비위생적이라 할까. 사먹고 싶지는 않다. 뭐 그런 생각? 그랬고, 옷 파는 거는, 내가 생각했을 땐 그게 구호물잔데, 원조로 세계 각국에서 구호품으로 온 그런 옷가지들? 나는 그런 게, NGO나, 정부를 통해서 사람들한테 그게 무료로 다 배포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어떻게 상인들의 손에 넘어가서, 그게 하나의 벌이의 수단이 되고, 사람들이 원조로 온 그런 물건들을, 돈을 주고 사야하고. 그리고 또, 새 옷이 아니니까, 나는 구경만 하는 말라이 입장에서, 아, 여기서 옷 살 일은 없겠다. 그렇게 생각했고, 닭! 닭이, 나는 걸어 다니는 데 발에 차일 것처럼 막 닭이 있었잖아. 무섭기도 하고, 걸리적거려서 싫었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녀서 신기했어. 생고기들은, 징그럽기도 하면서, 상할까봐 걱정됐고. 아띠 나도 처음 시장 갔을 때, 막 돌아다니는 닭과, 개, 돼지. 돼지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 되게 오기 전에, 광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개가 물진 않을까~ 그리고, 닭이 혹시나 쪼아댈까 봐~ 걱정도 했었고, 너가 말했듯이, 옷. 나는 헌옷을 입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처음에는 정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여기 현지 사람들한테는 어쩔 수 없이 사 입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새 옷을 사려고 하면, 가격이 한달치 아침 식사 값이랑 맞먹는다는 걸 알게 됐고. 그리고, 제일로 놀랬던 거. 우리, 소모초에서 로스 팔 로스 시장에 갔었는데 저녁 반찬으로 사용할 고기 샀잖아. 아주 경악을 했었지. 아반 왜? 아띠 소머리랑 소가죽이 잘린 채로 옆에 있었고, 우리나라에선 쓰레기 취급이나 할 것 같은 고기들... 옆에선 팔려고 내놓은 고기 위에는 수백 마리의 파리들! 그거 보고는 저녁에 밥을 못 먹겠다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 하지만 저녁에 맛있게 먹었다는 거~ (웃음) 벌써 여기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애. 아반 (같이 웃음) 맞어. 나도 그 때, 소모초에서- 그 소고기 장사하시는 분들이, 옆에 있는 소들을 가리키면서, 지금 썰어둔 고기 다 팔면, 옆에 있는 소를 즉석에서 잡아 죽여서, 다시 그 고기를 썰어서 판다고 했을 때- 완전 경악했잖아. 그 옆에 있는 소를 가만히 지켜봤는데, 왠지 슬퍼보이는 그 눈. 아띠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 아반 어, 그 눈. 막, 좀 슬퍼 보이기도 하면서, 동공이 풀린 것 같은... 그러고, 죽을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뭔가... 아띠 멕아리 없는. 아반 응, 멕아리 없어 보이는 그 표정이랑, 그 소가, 항문에 힘이 풀려가지고, 소한테도 대변이라 그러나? 막 그런 게 다 나와 있는 거 보는데, 진짜 기분이 이상한 거야. 또 그걸 사가지고, 맛있게 먹어댈 나를 생각하니, 좀, 기분이 그랬어. 옷, 옷! 아띠 옷? 아반 옷도, 나도 그거 보면서, 시장에서. 헌옷이기도 하고, 낡아 보이기도 하고, 절대로 내가 사 입겠다거나, 사 입을 수 있다고 조차 생각을 못했었는데, 사메(Same)에 가져갈 긴 옷이 부족하다고, 옷을 사겠다고 딱 마음을 먹으니까, 갑자기 한 컷 풍경에 지나지 않던, 그 시장에 옷들이, 예쁜 옷도 보이고, 우리 유행에 맞을 것 같은 그런 옷도 보이고, 옷 욕심이 막 생기잖아? 그래서 딱, 너랑 같이 시장 가가지고, 옷을 산 날. 내가 제일 많이 샀잖아. 사고 나니까, 헌 옷이다 낡았다, 그런 생각이 안 들고, 현지에 적응을 했다 해야 하나-. 그냥 자연스럽게, 일상인 것처럼, 그랬어. 아띠 근데, 나는 너하고 좀 반대의 생각을 해. 둘이서 시장에 가가지고, 옷을 샀잖아? 근데, 사고 나서도, 세탁을 한 번 하고 나서도, 그냥. 왠지 모를 찝찝함에, 이걸 입어야 하나... 입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어. 근데, 막상 입으니까, 그냥, 헌 옷 같지 않은 느낌. !?!? 지금은 잘 입고 다녀. (웃음) 아반 잘 입고 다니고, 또 잘 어울리잖아. 아띠 나야 뭐. (졸라 웃음) 아반 (잠시 침묵. -_-) 나는, 헌옷이라서 찝찝했다거나, 그렇다기 보다는. 여기 사람들이, 우리도 그렇지만, 그렇게 옷을 자주 사 입고 그렇지는 못할텐데, 헌옷을 사면서도 기쁘고 행복하다고 느낄까. 다른 나라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입다가, 거의 버리기 직전에, 혹은 자선한답시고(?), 이건 좀 표현이 그렇다. 무튼, 그렇게 보내온 물자들을, 사 입으면서 진짜로, 우리가 옷 살 때처럼, 행복하고 기쁘고, 막 설레고, 자랑하고 싶을까~ 그런 생각했었는데, 내가 사고 나니까, 똑같다는 걸 느꼈어. 아띠 응, 나도 그건 너랑 같은 생각을 했어. 그리고, 산 헌 옷을 입으면서도, 사람들이 옷이 이쁘다고 막 그랬었잖아. 그냥, 왠지 뿌듯했지. (웃음) 너도 지금 산 (헌) 옷을 입고 있어. (웃음) 아반 (와하하하) 아띠 또 시장에 대해서, 인상적이었던 건 어떤 게 있어? 아반 음. 우리 숙소 양쪽으로 시장이 두 개가 있잖아. 왼쪽으로 가면, 라마 시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리가 아침마다 빵 사러 가는 무지무지 큰 시장! 라마 시장도 꽤 규모가 있는 시장 같은데, 가까운 곳에 시장이 여러개가 계속 있으니까, 그것도 좀 신기한 것 같애. 거리에 잡상인이 많은 건 뭐, 그렇다 쳐도. 우리 사오 미구엘 학교 가는 길에, 시장 큰 거 또 있잖아? 아띠 맞어. 우리나라에는 보통- 뭐라 그래야 하지? 시장이라 하면, 차를 타고 가야 갈 수 있는데, 여기는 그냥 눈에 띄는 곳이 다 시장이잖아. 아반 맞어, 맞어. 나 저번에는, 딜리 시내를 그냥 걷고 있었거든? 어떤 아저씨가, 나뭇가지 끝에 오징어랑 생선을 몇 마리씩 묶어가지고 팔고 다니는 거야-. 아띠 정말? 나는 그 거까지는 못 봤는데- 아반 오징어를 팔더라니까~ 아띠 그것도, 파리가 끓던? (웃음) 여기는 무슨, 시장에 파리밖에 없어. (웃음, 웃음) 아반 파리는 모르겠다. (웃음) 해산물 시장이 있다고 동화 간사님한테 듣긴 했는데- 아띠 여기에? 아반 저기- 바다 있는 해안 지방에 가면 있대. 큰 지 작은 진 모르겠지만. 아띠 그럼 그 고기 잡는 건 봤어? 아반 아직 내 얘기 안 끝났거든? 아띠 에이에잉~~(웃음) 아반 음. 해산물 시장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아직 딜리 시내에서는 못 봤잖아-. 그렇게 사람들이 그 날 그 날 잡은 생선을 들고 다니면서 파니까, 여기서는~ 엄마들이 식사 준비 할려고 하거나, 그럴 때 되게 즉흥적일 것 같애. 내일은 뭐, 생선 요리를 해야겠다, 라던가 그런 계획이~ 생선 장수를 만나면, 성공하는 거고, 그 날 생선장수를 못 마주치면,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거고. (흐흐) 고기 잡는 건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 봤어? 아띠 저번에 사무국에서 원팀장님이랑 김지혜 간사님 오셨을 때? 그 때 해변가에 외식(저녁식사)하러 나갔었잖아. 그 때 뒤편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서, 등을 들고, 그룹으로 다니는 거야. 그 때 궁금해서, 간사님한테 물어봤었는데. (생각 중) 그게 고기잡으러 다니는 거였대. 고기를 어떻게 잡냐면, 막 이렇게, 등을 잡고 그룹으로 다니다가, 고기가 탁 수면위로 튀어 오르면, 돌맹이 같을 걸 딱 던져서 고기를 잡는 거야. 아반 엥? 돌로 튀어 오르는 고기를 잡는다고? 좀 웃긴데? 아띠 멀리서 본거였는데, 그게, 고기를 잡는 게, 진짜 보였어. (웃음) 되게 잘 잡던데? 아반 낚싯대 같은 걸 쓰는건가? 아띠 낚싯대는 아니었어. 돌아다니면서, 뭘 던져서 기절을 시켰어. 아반 완전 신기하다-. 아띠 그리고 또 있어. 며칠 전에 해변가에 갔었는데, 거기서도 고기 잡는 걸 봤거든? 보통 우리나라에서 쓰는 그런 낚싯대가 아니고, 페트병에다가 낚시줄을 감아놓고, 바늘 하나 달아서 낚시 하는 걸 봤는데, 분명히 낚시 중인 사람은 네다섯명이나 됐는데, 잡는 건 한 번도 못봤어. 아반 ㅋㅋㅋ(웃음) 등을 들어라 그래라~ (웃음) 오오, 하긴. 해산물 시장은 못 봤어도, 우리 로스팔로스 갈 때랑 올 때~ 해변가에 있는 도로로 막~ 가다가, 점심을 해변가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했잖아~ 그 때 반찬이 다 생선이었던 거 보면, 그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방법으로 생선을 잡아서 요리해둔 게 아닐까 싶어. 거긴 또, 반찬이 생선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더라. 사메 갈 때는 그래도 산악지방이고 해서 그런지, 닭고기도 있고, 이런 저런 야채 요리도 식당에서 팔았었는데, 유독 해변가 지날 때 들렸던 식당에는 생선 요리가 많았던 것 같애. 아띠 아, 그 생선? (묘한 웃음?) 아마, 생선의 반은, 뱉었던 것 같애. 너무 짜서. (웃음) 진짜로. 아반 나는 완전 잘 먹었는데. (웃음) 아참, 그러고 보면 큰 마트랑, 시장이랑 비교해 봐도 재밌을 것 같애. 아띠 비교? 아반 너의 화교이야기. 이건 다음에 할까? 아띠 흠. 그래도, 제일 웃긴 건, 가격인 거 같애. 아반 가격? 어디서 무슨 가격? 아띠 시장하고- 마트하고 가격 차이가 무지 나는 것 같애. 아반 같은 상품이? 아띠 응. 과자같은 경우도, 그냥 길거리에서는 50센트에 팔던 과자가, 큰 마트에 가면 2달러에 팔리고 있고... 무튼, 다 애매한 것 같애. 또 가격 차이가 나는 게 되게 많았는데...? 마트끼리도, 똑같은 상품인데도 가격이 되게 차이 나는 걸 많이 봤어. 아반 으음~ 난 자세히 관찰 안 해봤는데. 신경 써가면서 물건 사야 되겠다!
(09.23) 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두번째 -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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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두번째2008.09.23written by - 함보람‘ 찌나 찌나~ ‘ 처음 이 곳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찌나 찌나~” 길거리에 지나다니거나 이동할 때 트럭 뒤에 타고 있는 우리를 보고 현지인들이 던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알고 보니 중국인들을 부르는 테툼어였다. 화교들이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딜리 시내에서 동양인들을 보면 의례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별 생각 없이 흘려 들었지만 오후에 외출하거나 밖에 나갈 때 마다 우리를 놀리는 듯한 어투로 ‘찌나’ 라고 외치는 현지인들을 마주 치는 것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간사님께서 그냥 무시하고 대꾸하지 말고 지나가라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을 그냥 흘려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길에 지나다니다가 이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난다. 일부러 MP3 음악 소리 볼륨을 귀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키우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이, 어렸을 때 파란 눈의 외국인이 지나가면 괜한 호기심에 “Hi” “Hello” 같은 인사말을 건네면서 친구들끼리 키득키득 웃었던 경험이 있으리라. 낯선 생김새의 외국인에 대한 큰 의미 없는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동티모르에서 내가 그런 ‘외국인’의 입장인 셈이다. 호기심 섞인 장난 조차 웃음으로 받을 수 없는 내 자신이 왠지 작아 보였다. 여전히 나는 닫혀있는 것만 같은 생각에 거리를 걸을 때 마다 발걸음이 무겁다. ‘ 무료함과 여유 사이 에서 ’ 여기 도착해서 처음으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료함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5시에 테툼어 수업 시작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책도 계속 읽다 보니 지루하고 날씨도 더운 곳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해야 할 고민과 끝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 무료함이란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던 무료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비슷한 어려움을 팀원들이 대부분 겪고 있었다. 이대로 쭉 가다 보면 이 무료함에 지쳐 무기력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무언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무료함을 어떻게 체득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꼭 해야 할 일’ 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긴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나름의 답을 얻었다. 그것은‘ 비어있는 시간 ‘을 ‘ 할 일 없는 따분함 ‘ 이 아니라 여유로움으로 머리 속으로 끊임 없이 되뇌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일들에 치여 미처 생각하고 고민하지 못했던 것을 되돌아보고 그리고 사치라고만 여겨졌던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쉬면서도 불안한 이 느낌. 양치질 하고 제대로 헹구지 못한 것 마냥 찝찝했다. 하지만 하루 하루 나도 모르게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익숙해 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 그 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을 한 번 뒤집어 보고 그 것에 나를 맞추어 본다는 것. 현지 적응의 가장 첫 걸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동티모르 생활 한달 차 풋내기의 동티모르 생활 팁’ 1. 물건을 살 때에는 우선 반 값으로 깎고 본다. 외국인은 무조건 돈이 많은 줄 알고 값을 높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2. 유제품은 되도록 사먹지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유제품들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것들인데, 냉장보관을 제대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모조리 한 달 이상인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방부제가 들어갔길래 유제품의 유통기한이 그리 길 수 있다는 말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빙성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어서 선택은 개인에게 달렸다. 그러나, 나는 사먹지 않는다. 3. 택시를 탈 때에는 흥정을 먼저 한다. 딜리 시내가 좁아서 웬만한 거리는 택시로 2 달러 정도면 모두 갈 수 있다. 하지만 타기 전에 미리 흥정을 하고 타는 것이 좋다. 내릴 때 값을 비싸게 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흥정을 해도 도통 먹히지 않을 떄가 있다. 그럴 떄는 과감하게 보내버린다. 왜냐고?! 택시는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미터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전 기사의 판단에 따라 값을 부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합당한 값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더운 볕에서 택시를 잡고 흥정하는 수고는 감수해야한다. 4. 길을 건널 때에는 무조건 오른쪽을 먼저 살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랑 교통 방향이 모조리 반대이기 때문이다. 운전석도 반대다. 5. 점심시간에 상점을 방문하는 것은 헛탕 칠 가능성이 많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상점들이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다. 큰 마켓조차 점심시간이라고 문을 닫아놔서 땡볕에서 말 없이 되돌아 왔던 경험이 있다. + 사진 (첨부파일 참고해주세요) - 구아바 사진 - 구아바 구아바~ 여기 사람들은 너무 흔한 구아바를 왜 먹는지 이해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맛있는 구아바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아름의 구아바를 안고 며칠이나 행복했다 - 3달러 사진 -열 명이 넘는 입들의 아침을 행복하게 해주는 3$ .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빵사러 가는 길, 빵 사진 - 하지만, 여기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 안개 자욱한 길을 걸어가면 큰 시장이 나타나는데 그 곳에서 이렇게 생긴 빵들을 많이 판다. 흡사 바게트마냥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것이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아 크게 질리지 않는다.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오래 받은 동티모르이기 때문에 아침을 빵과 커피로 한다고 한다. 사진에 나온 빵이 가장 기본적이고 다른 모양의 빵들이 두어가지 더 있지만 맛은 사실 비슷비슷하다.
(09.23) 판이의 뉴스 클리핑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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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 Thursday, 28 August 2008] Little hands should carry schoolbooks 아이들의 손은 교과서를 들어야 한다 When I moved abroad, and more specifically when I moved to Dili from the districts, I thought my politics on consumerism - my belief that countries that refuse to allow unions or protect the rights of their workers should not benefit from my money - would be in the majority or at least enjoy some comfortable numbers. I assumed that aid workers, many of whom come from first world countries and are well aware of the politics of child labour, would be vigorously opposed to child labour. But I was wrong. I have written briefly once before about the wrongness of supporting child phone card sellers, but of course it is more than that. Every weekend, armies of school aged children wander along the beach selling fruit and peanuts. All along the boulevards of Dili, children sell water, snacks, beer and cigarettes, all of which foreigners buy. Indeed, on the cover of the Report on Human Rights Development in Timor -Leste released this month by UNMIT, there is a large colour photo of a child selling fruit. Apparently the UN could find no clearer image of a human rights abuse than a working child. It is true there are almost no factories in Timor and Nike isn't coming anytime soon. But the principle is the same - child labour in wrong, for a number of reasons, some ethical and others logical. If a foreigner who works on a livelihoods project buys a bottle of water from a school aged child, she has just contributed to the problem she's trying to eradicate. As that child sells water, his older brother or sister is (if they are lucky) sitting in a skills training program or at home, unemployed. Timorese need money and all of us should support micro-economies by buying from local produce vendors down the street or from neighbourhood kiosks whenever possible, but children should be in school. Every time a child is rewarded for selling a phone card, the more the child is encouraged to sell instead of attend school. Can it possibly be that children only work on holidays or after school? Riiight. And even if they did, what kind of a callous adult would wish upon a child a day of school lessons followed by a day of work, instead of a childhood of games and fun? Jobs statistics gathered by a survey of employed adults paint an inaccurate picture of Timor, since they ignore a majority of the real workforce. Until there are no more unemployed adults, there is no reason to have even a single child at work in Dili. So what can we do about this? To start with, don't buy anything from small children, ever. And don't simply refuse to buy anything, tell them why. Because most small children don't know English (or math or Portuguese or science or the alphabet or much of anything else because they're too busy selling you oranges to attend class), here's how to make the piont in Tetun, "O nia tinan la to'o, entaun hau lakohi hola buat nee. Hau la hola sasan husi labarik kiik oan." Imagine a Dili where every foreigner did this. The kids would go home and say, "Mom, people aren't buying anything from me. They said I should go to school!" Just imagine! Within a month or two the beaches would be full of teenaged brothers and sisters carrying a stick heavy with fruit. Livelihoods classes would empty. This should be enough to fix the problem, but of course, it isn't. Non governmental organisations and aid agencies themselves have to make this problem a priority. The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amongst others, must have fairly strict anti-child policies, but to date I've seen nothing done about the problem. We need posters ("Little hands should carry schoolbooks!"), we need classroom curricula, we need law enforcement to get on board and we need to get on the radio, television and newspapers and scream from the rooftops : Child labour is always wrong. We need to change some minds at the local level. Foreigners mostly come here to try to make life a little better for the people here and the Timorese welcome them because they hope they can help develop their country. Turning a nation's children into robot waiters while depriving them of an deucation isn't going to do either one of those things. We can't afford to forget that. 2008년 8월 28일 사설 아이들의 손은 교과서를 들어야 한다 내가 밖에 나갈 때, 특히 지방에서 딜리로 이동할 때, 나는 나의 소비 옹호론이-내 신조는 노동조합 결성이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를 거부하는 나라들은 내 돈으로부터 이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거나 적어도 납득할만한 수의 의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부분은 1세계 국가들에서 왔고 아동 노동에 대해 잘 아는 국제 구호자들이 아동 노동에 대해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이전에 간단히 전화카드를 파는 아이들을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한 지적을 한 적이 있지만, 물론 상황은 그보다 더하다. 매주 취학 연령의 어린이들의 떼가 과일과 땅콩들을 팔며 해변가를 떠돈다. 딜리의 가로수길가에서 아이들은 물, 과자, 맥주, 담배를 파는데 대부분 외국인들이 산다. 정말로, UNMIT에서 이번달에 발행한 동티모르의 인권 성장(개발)에 관한 보고서에는, 과일을 팔고 있는 아이의 커다란 칼라 사진이 있다. 분명히 UN은 일하는 아동보다 인권 학대에 대한 확실한 그림을 찾을 수 없다. 티모르에는 거의 공장이 없고, 나이키 같은 회사가 바로 들어 올 것도 아니다. 그러나 원칙은 같다. 아동 노동은 윤리적이거나 논리적인 여러의 이유로 잘못된 것이다. 만약 한 외국인이 취학 연령의 아동에게 물을 산다면, 그녀는 곧 그녀가 해결하려는 문제에 기여하는 꼴이다. 그 어린이가 물을 팔고 있기에, 운이 좋다면 그의 형이나 누나는 기술 교육 프로그램에 앉아 있거나, 무직인 상태로 집에 있을 것이다. 티모르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고, 우리는 가능하다면, 길가의 지역 상품 상인이나 이웃의 가판대에서 구매를 함으로써 지역경제(또는 마을 단위의 작은 경제규모?)를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전화 카드를 팔아서 보상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은 더더욱 학교에 가기 보다는 물건을 팔려고만 할 것이다. 과연 아이들이 오직 휴일이나 방과 후에만 일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으~렇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무감각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루의 일을 마치고 어린시절의 놀이와 즐거움 대신, 그날 그날의 학교 교과에 대해 공부하기를 바랄까? 고용에 대한 조사에서의 직업 통계는 티모르의 상황을 잘못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다수의 실제 노동력을 모른체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실업상태의 어른들이 없을 때가 돼서야, 딜리에서 단 한명의 어린이라도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로, 어린 아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사지 마라. 그리고 단지 구매를 거절하지만 말고, 그들에게 이유를 말해라.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에게 오렌지를 파느라 매우 바빠서 수업에 참가할 시간이 없었기에 수학, 포르투갈어, 과학, 알파벳 등을 모른다) 여기에 테튬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적어둔다. “ 너의 나이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사고 싶지 않다.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물건들을 사지 않는다.” 딜리의 모든 외국인들이 이렇게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 아이는 집에 가서 말할 것이다. “엄마, 사람들이 저한테서 물건을 안사요. 저는 학교에 가야 된데요!” 상상해보라! 한달이나 두달 안에 해안가는 과일로 가득한 막대를 든 십대인 형 누나들로 가득 찰 것이다. 동네 교실을 비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치 않다. 비정부기구와 국제 구호단체들은 이 문제를 우선 사항으로 정해야 한다. 다른 단체들 중에 국제 노동 기구는 공정하고 엄격한 아동 노동 반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이 문제와 관련되어 아무 것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포스터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손은 교과서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교실이 필요하다, 우리는 안내판(아동 노동에 대한?)을 걸어야할 법적 강제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신문에 연락할 필요가 있고, 지붕위에서 외쳐야한다. 아동 노동을 언제나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는 지역적 수준에서 마음의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현지의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이곳에 왔고, 티모르 사람들은 외국인들이 티모르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에 외국인들을 반긴다. 나라의 아이들을 교육으로부터 떼어놓는 동시에 로봇 웨이터로 변하게 하는 것은 나라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안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잊을 여유가 없다. * 본 해석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밑줄 친 부분은 해석이 심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09.23) 판이의 뉴스 클리핑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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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동티모르] [Editorial - Thursday, 7 February 2008 Jobs, not rations, key to independence This week is a week of mixed progress in Timor-Leste. Monday the Untied Nations Police handed over three neighborhood police posts to the National Police of Timor-Leste as a sign of trust and faith in our local police. If PNTL can manage this without a spike in criminal activity, this may be taken as a positivefirst step in a long goodbye to foreign peace keepers. If this move proves successful, no one will regret it. Another step toward normalcy-though this one much more dubious-is the reduction of rations for the internally displaced people(IDPs). Three years ago only widows, veterans and victims of natural disasters got regular government handouts. Then, in th last two years tens of thousands of people suddenly demanded the government's aid. And surely there are many tens of thousands of these people who are truly needy and there are few among us so callous as to deny a genuinely needy person his rations. However many registered names, possibly up to a third, are fraudulent. That is to say, tens of thousands of people who should not be getting rice, oil, beans and tents. And there are few among us who would accept this. But can the government really slash food rations by half? Who here is so well off as to not need some extra beans or rice? The price of rice is rising in Dili as well as in Oecusse (where locals say it's already reached $40 a bag) following flooding in Thailand and Vietnam. And now, after our own recent spate of natural disasters in the west, it seems likely times will get worse before they get better. It seems clear that, even if one is not a legitimate IDP, one could still use the government's handouts. But of course, a handout based economy is a fraudulent economy. Moreover, there is a certain shame to constant dependence that we cannot tolerate. If we do not produce, if we do not create or strive to progress and move forward then we will become a begging bowl society. We struggled for decades against colonialist oppressors and high odds to determine our own path and that path must be one of self reliance. Work and sweat in Timor are hot, hard, bitter things, but the fruits of one's labor are still sweeter than free handouts from foreigners. Much like PNTL with UNPol, we can take lessons from the foreigners but we cannot depend on them. What the government should do then is offer greater work opportunities to everyone-not just the IDPs. The government should take the money it spends on rice, oil, etc and spend it on work programs across the nation. Anyone who needs work should be able to find it. There is a vast potential for work here. Until every last piece of litter is picked up, until the seafront sparkles from sand rather than Aqua bottles, until every last hole is patched and all the roads paved and until all the public buildings are painted and the parks maintained only then will we believe that there is no more work to be had in Timor. We will be independent only when most able bodied people have means to support themselves and their families. So we ask the government to remember, jobs are the key, After the rations have been taken away and the food prices go up and the bellies get hungry, what then? If there are no jobs to be had, what then? 2008.2.7 사설 배급이 아닌 일자리가 독립의 관건이다. 이번 주는 동티모르에 복합적인 발전의 한주이다. 월요일에는, UN경찰이 3개 지역의 경찰서를 동티모를 경찰에게 우리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표시로 양도했다. 만약 동티모르 경찰이 특별한 범죄행위 없이 잘 운영한다면, 이것은 외국의 평화지킴이들에 대한 긴 이별의 긍정적인 첫 걸음으로 여겨질 것이다. 만약 이런 움직임이 성공적으로 입증된다면, 아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향한 다른 한 걸음은-비록 이것은 더 의심스럽긴 하지만- 국내의 난민들에 대한 배급의 감소이다. 3년 전에는 오직 미망인, 퇴역 군인, 자연 재해의 피해자들만이 정부의 보조(금)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지난 2년간, 수만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정부의 원조를 요구했다. 그리고 분명히 정말로 빈곤한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 중에는 정말로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배급을 반대할 만큼 냉정한 사람들이 없다. 그러나 등록된 사람들 중의 많게는 1/3정도까지가 거짓이다. 즉, 쌀과 기름과 콩과 천막을 받지 말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쌀과 기름과 콩과 천막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과연 식량배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까? 여기의 누가 약간의 콩과 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부유할까? 태국과 베트남의 홍수 때문에 오이쿠시 지역(한 가마니에 이미 $40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딜리도 쌀 값이 오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서부(?)에서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그들이 회복되기 전에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어느 사람이 합법적인 난민이 아닐지라도, 그가 정부의 원조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경제에 기반을 둔 원조는 허울 경제일 뿐이다. 더욱이, 지속되는 의존에 대한 참을수 없는 수치심이 있다. 만약 우리가 생산하지 않거나, 발전하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걸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수십년간 식민 통치자들과 우리의 독립의 길에 대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저항했다. 티모르에서의 일과 땀은 덥고, 힘들고, 쓰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결실은 여전히 외국의 무상 원조보다 달다. 동티모르 경찰과 유엔 경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외국인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일자리를 단지 난민들이 아닌 모든이들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는 쌀, 기름 등등에 쓰이는 돈을 거두어서 전국에 걸친 일자리 프로그램에 써야 한다. 일자리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는 거대한 노동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쓰레기 한 조각이 주워 질 때까지, 해안이 아쿠아 물병(*현지 생수 브랜드)보다는 모래에서 빛날 때까지, 모든 구멍을 메꾸어 모든 도로가 포장될 때까지, 모든 공공 건물이 페인트칠 되고 모든 공원이 유지될 때까지. 그제서야 우리는 티모르에 더 이상의 할 일이 없다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유능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을 지원할 수단을 갖게 될 때가 돼서야 독립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에게 일자리가 관건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배급이 끝나고, 식량값이 오르고, 배가 고파지면, 그 다음엔? 만약 일자리가 없다면, 그러면? * 본 해석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밑줄 친 부분은 해석이 심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에세이-3]산타끄루즈 묘지를 다녀와서 by 양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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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008 , Sunday , timor Leste Dili , ANJU 민족의 대 명절, 추석. 오전시간에 산따끄루스 답사가 있던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시바시 간사님께서 일정을 잡았을때부터 막연한 기대를 하였다. 왠 크리스마스 마을인가 하고 괜한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답사 전 약간의 오리엔테이션과 동영상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산따끄루스 대학살’사건은 1991년 10월 28일 인도네시아 군인과 경찰이 ‘고메즈’라는 청년을 붙잡아 저항세력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40여명의 청년을 연행한 사건이다. 11월 2일, 무덤에 꽃을 놓는 동티모르 관습에 따라 수 천 명의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고메스의 유해가 안장된 산따끄루스 묘지를 향해 행진했다. 그때 인도네시아군의 무차별 발포로 273명이 사망했고, 250여명이 실종됐으며, 37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건으로 동티모르가 단번에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동티모르의 참혹한 인권상황이 국제문제로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그럴수록 인도네시아 정부는 강압적인 통치로 침공 1년 동안 동티모르 저항군과 주민 10만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영상속의 총을 맞고 쓰러져있는 아저씨와 가족인냥 보이는 남자가 그를 안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안고 있는 모습에서 나도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한국전쟁이 생각 났다. 겪어보지 않은 일인데도 그렇게 마음이 아픈데 이 사람들을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 사건이 100년전 50년전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들의 유족들이 아직 이 사건을 기억 하고 있고 가슴속에 묻었을 것이다. 라온아띠에 선발되고 동티모르로 확정이 되고 집에서 보는 올림픽 개막식에는 동티모르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었다. 해설자는 동티모르.. 참 슬픈 나라라며 소개를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슬픈나라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그 전에 많은 지식을 쌓지 못한 봉사단원으로써의 내 마음가짐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묘지로 가는길.. 산따끄루즈 바로 앞에서는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묘지가 있었다. 이 무슨 기묘한 현실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죽인자와 죽은자들의 무덤이 쌍방을 향하여 있고 인도네시아 군들의 묘지는 정갈하게.. 산따끄루즈 묘지는 한자리가 비좁다 하고 틈을 두지 않고 묘지가 빽빽히 있었다. 이시바시 간사님은 “결국은 모두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고 어쨌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산타 끄루스 묘지에는 한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무자비 하게 죽은 자들의 묘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나라 였다면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화장을 했을텐데 라는 생각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군의 묘지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에서 이런 동티모르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시바시 간사님께서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총 하나로 목숨을 잃었을 생각을 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가슴이 아팠다. 나는 오늘부터 ‘띠모르레스떼 탄생’책을 열심히 읽어 보아야 겠다. 다른 친구들에게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친구들이 바로 이해 할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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