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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 왜 베트남에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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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저희 팀은 YMCA에서 운영하는 disabled club을 방문하였습니다. 정확히 저희의 일정에는 '베트남 랭귀지 프랙티스 앤 익스체인지'라고 쓰여진 기간이었지요. 아직 저희의 베트남어 실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론 한달 전과 비교하자면 일취월장 하였지만 그래도 이곳의 스탭들은 우리들이 많은 것을 이곳에서 얻어가기 위해서는 베트남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YMCA스탭을 제외하고는 영어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어쨌든, 그래서 저희가 그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참으로 한정되어있습니다. 가족이 몇명인지, 고향이 어딘지에서 부터 시작하는 부가질문들. 사실 더 어려운 것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분명 이해했지만 그것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어로 대답하라고 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을 법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베트남에 왔어요?" 사실 이 질문 꽤 받습니다. YMCA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잘 모릅니다. 게다가 보통 우리가 그들을 만나는 가장 큰 목적에는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 얘들은 왜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건지. 궁금할 법도 합니다. "volunteer!" 처음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서 자원봉사자를 뜻하는 베트남어를 익히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이제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 클럽 안에서 가장 돌봄을 받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 다섯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만큼 쉽게 질리고 쉽게 거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려고 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들과 친구가 되기 어려운 길을 가는 방법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들과 이야기 했고, 같은 방에 일자로 누워서 낮잠을 잤고, 같이 밥을 먹었고,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분명 서로 즐거웠습니다. 그게 다였고, 그냥 그걸로 충분했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되는 과정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고 분명 느끼고 있었습니다. "hoc tieng viet (베트남어 공부)" 그래서 실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에 가장 민감한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결코 베트남어를 공부하러 오지는 않았으니까요. 왜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있냐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대답하지요. 참 잘한 대답 같습니다. "hoc viet nam (베트남 공부)" 그래서 요즘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은 이것입니다. 이 대답을 할 경우 우리의 발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시 베트남어 공부로 오해(?) 받습니다. 그러면 그 앞에 사회라던지, 문화라던지 하는 단어를 붙이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웃습니다. 사실 참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재미있습니다. 이를테면 중추절의 베트남에서 느꼈던 이것저것, 호치민의 GDP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내 전경, 돈이 있으면 나는 당연히 미국의 가전제품, 미국의 자동차를 사겠다고 하는 직업학교 교장선생님, 우리 앞에서 갑자기 한국말을 하면서 백마부대의 사단가를 불러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할아버지, 오토바이와 어지러운 전기줄로 말해지는 지금의 호치민, 그리고 호치민을 조금만 벗어나도 또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베트남과 53개의 소수민족, 투숙객보다 호텔가족이 약 3배가량 많은 우리 홈스테인지 호텔인지 모르겠는 이곳. 하나하나 큰 질문 덩어리들입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베트남을 만나러 왔다.' 라던지 '이 지역과 함께하러 왔다'라던지, 조금 거창하게 '우리는 아시아의 친구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친구, 만나다 등의 단어가 갖고 있는 뉘앙스나 의미가 한국의 그것과 같은지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달 있으면서 베트남어 'hoc(배우다, 공부하다)'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의미를 조금은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일단 지금은 베트남 공부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안까뇨메(생선을 먹다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이건 지금까지의 글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냥 최근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이야기 거리를 하나 소개하려구요. 어느날 우리는 생선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YMCA 에서 늘 밥을 해주시는 꼬남이라는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정말 유쾌한 분이셔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분이지요. 그 꼬남(꼬남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존칭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이건 건방진 표현이 아닙니다.)이 그날 그 생선을 발라주었습니다. 그 광경에 문득 집의 어머니가 생각난 우리 팀원 중 한명이 눈물을 흘렸지요. 그리고 꼬남도 같이 눈물을 흘렸구요. 여기까지는 참 훈훈하고 가슴 따뜻하고 슬픈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는데, 같이 눈물을 흘리던 꼬남은 그 이야기를 그 건물의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 호탕하게 웃으면서요. 그래서 아마 지금쯤 베트남의 약 100명정도가 수연이가 생선 먹다가 운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 이름이 나왔다.) 어쨌든, 참 웃기게도 '안(먹다)까(생선)뇨(그리워하다)메(어머니)'는 지금 우리에게는 가장 즐거운 이야기 거리입니다.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고, 재미들이 있습니다. 어려움도 있구요.( 한달 만에 이렇게 많은 일과 부딪히고 있다는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사람 마음이 다르고 읽는 사람 마음이 또 다름을 알아서 그냥 이번에는 이정도로 하렵니다. 하하. 어쨌든 지금 우리 다섯명은 베트남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정확히는 호치민의 투둑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호치민과 호치민을 벗어난 지역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베트남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 질문에 계속 답해가는 5개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10개 팀 모두 그렇게 지금의 아시아와 만나고 있겠네요. 진심으로 기대됩니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이. 우리는 마치 다른 시대를 지나고 있는 듯한 2008년 아시아를 한번에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덥네요. 한국은 좀 쌀쌀한가요?
지역뉴스 in 모라투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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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저희 스리랑카 팀은 다들 잘~지내고 있답니다..가슴 아픈 얘기도 들려오고,,마음이 펺치만은 않네요ㅜㅜ다들 건강하고,,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두 번째 지역뉴스 올립니다.늦게 올리네요^^;;ㅎ
두번째 뉴스클리핑입니다.(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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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주입니다ㅅ< 회원가입을하려했는데 저는왜 14세 미만이라고뜨는거죠 ㅋㅋㅋㅋ ㅠ혜썽이 아이디를 빌려서 뉴스올려요.1) Baguio day program and activities Baguio celebrates its 99th charter day anniversary tomorrow, Monday. September1 and at the same time launches the year-long schedule of activities for the centennial anniversary next year.... 매 년 9월 1일 , 바기오에서는 바기오의 탄생을 기념하여 바기오 데이를 만들어 공휴일로 지정 했습니다. 이번이 벌써 99번째라니, 내년이면 100주년. 와우!!! 내년까지 못 있어서 아쉬워요ㅠ(내년 2월엔 아주 큰 플라워페스티벌도있는데ㅠㅠㅠ) 이날은 일단 쉬는 날 이니 좋았고 ^^각 종 퍼레이드와 행사를 진행하니 볼거리도 있어서 좋고. 날씨도 좋았고.타이밍을 놓쳐서 퍼레이드를 보지 못했는데 한국 꼬꼬마들이 한복을 입고 동참하기도 했다고 해요 . 필리핀은 축제가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지역의 탄생한 날도 정해서 기념하는 게 신기했어요. 2) YMCA-KB FRIENDS OF ASIAN PEACE Volunteer korean college students affillated with Ansan YMCA. from left:Joo, Eun, Lucy ,Hesty and Lily, last week visited The Baguio Repoter office at the YMCA building. The Korean students are in Baguio to promote peace and global citizenship. Also, to later on assist women's group in Tuding, Itogon, Benguet on Women Empowerment and development program... THE BAGUIO REPORTER 라는 신문에 저희 사진과 기사가 실렸답니다 !(물론 아는사람들만 아는 YMCA신문이지만요 ㅋㅋ) 여기서의 의견이라면 왜 우리는 명찰과 신문에 졸지에 안산 YMCA소속이 되었으며 주목적이되어야 할 여성역량강화보다 글로벌시티즌 쉽이 더 강하게 어필되고있는지가^^.... 커뮤니티에 빠른 시일 내에 가고싶어요 .
[에세이_1] 람푼에서의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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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푼에서의 에세이_ 0908 캠프의 첫째 날은 언제나 제게 피곤함을 안겨줍니다. ^^ 지난번 프레지역처럼 이곳 람푼지역에서의 첫째 날도 여전히 제게 피곤함을 안겨주네요. 하지만 제 피곤함을 이기는 것은 새로움과 감사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 람푼지역의 라오빳꺼이 스쿨에서 만난 친절한 선생님들과 지역사회 주민 분들, 그리고 학생들이 한 마음이 되어 11명의 우리팀원들을 반겨줌에 어찌나 감사한지요. ^^ 사실, 아직은 프레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조금은 그립지만 3개월 후 이곳에서 활동하게 될 저인지라 이곳 아이들 역시도 제게 수많은 배움을 안겨다 줄 것이기에 후회 없는 시간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랑을 배풀어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있어 드디어 홈스테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닌 할머니와 3살 박이 손자 나윈이 살고있는 집인데요, 부모님은 도시에서 살고 계시더라구요. 적적한 집에 저랑 선구언니, 유정언니, 화진언니 이렇게 4명이 이곳 가정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고팀장님 말로는 이번 주 홈스테이를 통해 두달 후 어떤 방식으로 홈스테이를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던데, 첫째 날인 지금 당장은 이곳 현지 가정생활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자상한 할머니와 귀여운 손자가 있는 이곳 집이 은근히 매력적이거든요 :) 첫째날의 밤이 어느덧 저물어 가네요. 4일간의 짧지만 긴 활동이 기대되는 이곳 람푼지역. ^^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람푼에서의 에세이_0909 창밖에는 천둥번개가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 태국은 시시때때로 비가 내리지만 실내생활을 하는 덕에 사실 큰 불편함은 없어요 :) 오늘 드디어 람푼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여전히 제게행복한 시간들입니다. ^^ 수업을 진행할 때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제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니깐요 ^^ 너무나 행복한 수업시간입니다. :) 이와 더불어 이곳 라오빳꺼이의 선생님들은 저를 무척이나 잘 챙겨주십니다. 어느 선생님의 딸이 저랑 똑같이 생겼다나요? ^^ 선생님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덕에 감사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수업은 6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교생85명인 이곳 초등학교에 6학년은 12명, 제가 맡은 아이들은 4명이었습니다. 매번 아이들과 함께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곳 아이들과 한국어 수업도 진행하고, 쉬는 시간도 보내고, 다양한 게임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에요 :)똑똑한 이곳 아이들 덕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사실 어제의 피곤함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닌 할머니의 배려 덕분에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현지 음식들은 제게있어 작은 활력소가 되어주네요 ^^ 어느덧 람푼에서의 둘쨋날의 밤에 저물어 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 람푼에서의 에세이 _0910 아침일찍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 이곳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는데요. 태국은 한국인(까오리)에 대한 관심이 참 대단합니다. 그 덕분에 저의 작은 행실 하나하나에 더욱 조심하게 되는 이곳 활동입니다. 단상 위에서 제가 인사를 할 때에 꺄악! 소리를 질러주시던 고마운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ㅋㅋ 오전에는 중학교에서의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조금 힘든 수업이었어요. 머리가 굵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수업시간에 잘 따라하지 않아 조금 힘들었지만, 수업진행방식에 있어 한번 더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난 후 학교식당에서 800원짜리 만찬이 날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오후에는 이곳 아이들과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저녁에는 태국 팀이 함께하는 우리들의 캔들 나이트를 처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 11명이서 함께한지 어느덧 3주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던 우리들. 캔들나이트를 통해 11명 모두가 작지만 큰 나눔을 할 수 있었던,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 수있었던 작지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이곳 태국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11명 모두가 하나되어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 혼자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이기에 이곳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네요. 모두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은 제게 있어 다시는 오지 않을 무척이나 귀중한 시간입니다. :) 람푼에서의 에세이_0911 여지껏 한 클래스에 5명이 한팀이 되어 진행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저 스스로 4학년 13명의 아이들과 2시간 동안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해보았습니다. 수업에서는 늘 그렇듯이 말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진행했던 수업은 풀과 꽃을 이용한 합동 작품 만들기와 간단한 한국어 교육, 그리고 동요 배우기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곳의 4학년 아이들이 제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표현해줌에 있어서 어찌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시작과 동시에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무렵에는 이곳 지역사회의 축제를 방문했습니다 ^^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곳 축제에서 한국인 대표로 인사도 했구요. 돼지잡기, 소싸움, local market등 도 구경하였습니다. 이곳이 그저 농촌사회라고만 생각했던 제 생각과는 달리, 이곳 사회가 무척 흥미로운 곳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87.5 이곳 지역사회의 라디오방송에도 출연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해외봉사단이 이곳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10여분의 짧은 출연시간이었지만 무척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방금 전 누군가 넌 popularity한 사람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만큼 이곳 람푼에서 너무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입니다. 그 사랑 덕분에 저 역시도 더 멋진 미소와 좋은 이미지로 보답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곳에서의 관심과 사랑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마지막날인 오늘밤도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프레에서의 이별이 다음의 사랑에 충실해야 함을 느끼게 해 준 덕분일까요. 이곳 람푼에서의 이별은 제게 많은 기쁨을 안겨다 주네요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간의 사랑이 있었기에 헤어짐에 마음 아파하고,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순수한 이들의 마음 덕분에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내가만난 이곳의 아이들이 같은 하늘아래.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다시는 내 인생에 오지 않을 지금 이시간 이순간 그리고 과거의 그순간 순간 순간에 충실해야 함을 또 다시 느끼게 합니다.행복합니다. 첫 에세이라 그런지 많은 떨립니다. 자아성립이 제대로 되지 못한 기존의 제 모습에 있어 이곳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기에, 수많은 이들에게 저의 나눔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곳에서의 삶을 짧은 글로 표현하기엔 느낀점이 너무 큰 귀하고 소중한 시간과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에세이를 읽어주신것에 대해 감사해요 ^^ 다들 너무 많이 보고싶어요 :)활동중에 있어 많이 힘들겠지만 다들 힘내서 잘 생활하길 바래요 ^^ 파이팅!! > < - 수진 :) -
(09.12) 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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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딜리팀 에세이 (2008.08.21~2008.09.10) - 서영주 - 전통가옥 구조로 신을 모시는 사당 - 예전에는 사람도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그냥 신만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가축 축사 - 동물들이(특히 닭) 계단을 통해서 넘어간다. 정보도 없었던 만큼 기대도 되었던 동티모르에서의 합숙이 시작되었다. 다들 걱정이 많았던 우리 동티모르팀!!! 처음에 공항에 왔을 때 이곳은 다른 곳과 달랐다. 공항 건물부터 시작해서 일일이 손으로 수작업하는 공항직원들.. 요즘 정보화 시대에 보기 힘든 모습이라 색다른 모습이었다. “korea time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무감각한 시간개념” 처음 간사님들께서 우리를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온다고 했나?’ 라고 긴가민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들을 기다리셨다고 하셨다. 그 말씀 중에 '안 오면 담에 오려나?' 하는 느긋한 모습이 보여 의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바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는 느긋함.. 동티모르는 시간개념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한 예로 출근시간이 9시라면 9시까지 출근하는 사람은 갓 출근하는 외국인뿐.. 10시나 11쯤이 되어야 모두다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출근을 제때하지 않아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점점 이곳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이해가 되어간다. 나또한 그들처럼 느긋해진다. 이처럼 동티모르는 시간 속에 얽매여 매일 짜여진 각본에 의해 차근차근 움직였던 이제까지의 우리의 생활 관념을 무너뜨렸다. 하루의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움직이는.. 게을러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동티모르는 애매하다?” 딜리는 특별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동티모르만의, 딜리만의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애매하다. 완전 숲과 어우러져 있는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나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집이 듬성듬성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길거리에 쓰레기는 이곳저곳 아무데나 버려져있고 먼지마저 너무 많다. 건축양식도 일정하지 않고 다들 각기 제각각의 모습형태를 띄고 있다. 이것은 독립한 지 몇 년이 흐르지 않아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딜리만의 동티모르만의 특색이라고 한다. 티모르에 와서 이시바시 간사님과 티모르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그 도중에 ‘동티모르는 아시아 속의 라틴이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아무래도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 지배를 받아서인지 여러 가지 특색이 뒤섞여 애매한 것을 만든 듯싶다. 그래서 그것이 지금의 동티모르의 특색으로 띄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언어만큼이나 이곳 문화도 다양한 것 같았다. 나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은 수도가 띄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수도 딜리의 모습 특색이 곧 동티모르의 특색이 아닐까?!! 이 시점 나는 궁금한 게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이곳은 이 애매한 특성이 자리를 잡아 애매한 특색으로 비췰지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한 보지 못한 동티모르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췰지 말이다. 언젠가는 동티모르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 동티모르만의 동티모르를 대표할 수 있는 특색이 보일 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바다” 이곳 바다는 정말 예쁘다!! 한 바다에서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도 바닷가 쪽에서 태어나 바다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동티모르의 바다는 오염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고나 할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바다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낀 동티모르는 ‘애매하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그래서 여기서의 프로젝트도 우리가 생각하고 만들어 가야하는 것인가? 지금 내 인생도 ‘애매하다’라는 말이 어울렸다면 이곳에서 팀원들과 함께 작지만 하나하나씩 만들어서 이루어 나가 나의 정체성도 찾고 싶다!
[뉴스 클리핑-1]가진 자와 못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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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 Weekly는 딜리의 주간지이다. 좋은 기사를 발췌하여 번역해서 올리는 방식으로 뉴스 클리핑의 일정 부분을 소화해 나갈 예정이다. 이 기사는 8월 말의 내용이다. 번역이기 때문에 내용이 다를 수도 있다. 너무 믿지 마시길...2008년 8월 21일, 목요일*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여전하다(사설)-동티모르가 독립한지 거의 10년이 되어 간다. 수도와 여타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딜리는 명백하게 동티모르의 일부분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국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도시로 한계지어서가 아니라 국경을 경계로 기준을 잡고 고려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수도 딜리 밖으로 20-30분만 나가면, 우리는 진짜 동티모르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티모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Metinaro 혹은 Tibar 표지판이 진짜 티모르로 들어가는 지점을 표시하고 있을 테다. 환영합니다! 동티모르의 인구는 대략 100만 명 정도이다. 딜리에 10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지역에 90만 명이 12개로 나누어진 지방에 살고 있다. 지금은 딜리와 지방을 나누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어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논해 보겠다. 음식에 대한 접근성, 깨끗한 물, 교통, 기본적인 의료 그리고 교육을 기본적인 요소들로 규정지을 수 있다. 다소 추상적인 것, 자유, 독립, 안전, 안정성, 정의 또는 지역 청사의 건물과 같은 것들은 논외로 하겠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굶주림은 이러한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니까.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한 가냘프게 보이는 고등학생이 나온 적이 있다. 선생님이 아파보인다고 말하자, 그 학생은 집에 음식이 하나도 없어 하루 종일 굶었다고 대답했다. 실제 상황이다. 동티모르 전역에 걸쳐 대부분 가계는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있다. 그나마도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이다. 생존에 가장 기초적인 음식은 건강한 몸과 건정한 정신에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일반적이다. 독립 후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대부분의 주민이 하루에 60센트, 한 달에 20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을 꾸려 나간다. 이 돈으로 초라한 집과 음식을 마련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약품과 옷 등을 사야한다. 중요한 점은 엄청나게 비싼 동티모르의 물가이다. 딜리는 지금 계속 커나가는 수도이다. 많은 차와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거리가 채워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동티모르의 지방 지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딜리를 제외한 지역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때 딜리는 많을 것을 가지고 있다. 딜리는 여타 도시와 달리 특별하다. 주로 딜리에서 일하고 사는 4000명이 넘는 외국인이 수도에 살고 있다. 도시의 외국인은 하루에 150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반면 딜리를 제외한 지역은 하루 60센트이다. 이러한 차이는 외국인과 국내의 현지인 사이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예로, 외국인은 1.5달러로 신선한 우유를 살 수 있다면, 지방에서는 농축된 우유 캔만 살 수 있다. 그것도 살 돈이 있다면 그렇다. 외국인에서는 좋은 쌀을 구할 수 있는 반면, 지방에서는 오래되고 질이 낮은 쌀이 보통이다. 외국인은 자가용으로 거리를 달리지만, 지방은 만원 버스를 타야하거나 걸어야 한다. 외국인에서는 양질의 특허 받은 약을 구입할 수 있다면, 지방에서는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위조 약을 산다. 외국인은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살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파리가 꼬인 고기가 전부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질이다. 외국인은 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지만, 티모르인은 높은 가격의 질 낮은 제품을 산다. 아마도 이것이 시장 경제의 결과이리라. 모든 것을 가진 자(외국인), 대부분의 사람보다 더 가진 자(딜리의 사람들),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자(지방에 살고 있는 90만 명의 티모르인) 사이의 삶의 질의 불일치는 계속 되어오고 있다. 이것이 왜 우리의 관계와 국제사회에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이다. 어떻게 해야 독립된 티모르의 대다수의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10년 혹은 나라가 세워질 때와 달리 지금은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많은 인적 자원이 훈련되고 개발의 빛을 보지 못 했던 사람들이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일을 할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이라크의 경우, WFP은 1년 긴급 구호로 약 100만 명의 이라크 난민에게 1억 2천 6백만 달러의 비용을 지원했다. 1999년 이래, 약 40억 달러가 직간접적 원조로 동티모르에 쓰였고, 쓰여질 예정이다. WFP의 자료에 의하면, 10억 달러 이상이 10년 동안(1999-2008) 기본적인 요소들(음식, 옷, 교육, 의료)을 동티모르 주민에게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10억 달러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같은 목적으로 사용 될 것이고, 20억 달러는 그 10년 간 국가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것이라 한다. 이 돈은 잘 쓰여지고 있는 것일까?
[에세이-2]동남아 오리엔탈리즘 by 심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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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은 서방세계에서 동양을 보는 시각을 이야기한다. 동양을 서양과 구분해 덩어리로 취급하며 일방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부각되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근본적 가치가 아닌 피상적인 오리엔탈적 가치에만 관심을 갖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리엔트 중 하나인 한국에서도 동남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중일은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극동아시아의 범주에 속하길 원하며, 동남아시아와 구분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바람은 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만든다. 개발도상국, 가난한 나라, 타락한 정부 관료와 타성적인 국민, 더운 나라 특유의 게으름 등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애초에 구분 짓기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원인보다 결과를 중요시 한다. 동티모르 역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인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있다. 서구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상대적으로 낮추거나 신비화하여 자신들의 합리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에 비교해보면, 우리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리고 라온아띠는 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고 있을까. 이 곳 동티모르에서는 과거 우리가 경험했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일을 다시금 볼 수 있다. 채 정비되지 않은 도로 시설, 학교 속의 군대 문화, 인맥, 지연이 그렇다. 또, 1999년 자치-독립 선거, 2002년 독립, 2006년 분쟁 등 치열한 21세기를 거친 마지막 독립국으로 여러 강대국의 영향력에 크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정세도 그러하다. 국가의 발전 정도는 다만 속도와 위치의 차이가 있다. 문화 역시 문화상대주의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시대에 우열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우리보다 느리면 게으른 것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곳에서 한국에서와 같은 속도로 일 한다면 과로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친인척 공동체가 일반적인 문화에서 무조건적으로 인연과 지연을 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 부족한 학교와 교수 수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합당한가. 대안이 없는 비판은 욕설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대안은 피상적인 모습에서 나올 수 없다. 대안이라 함은 문제의 본질, 즉 이유를 알아야만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봉사나 자원활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도 이러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유를 알아내고,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 것. 이것은 계몽적인 봉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곧잘 행해지고 있는-혹 많은 선교사들이 하고 있는- 제 3세계 곳곳의 계몽적 봉사 활동 장소가 비판을 받곤 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은 호기심과 소일거리로 갖는 관심을 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어설픈 관심으로 편견과 왜곡을 만드느니 아예 관심을 끊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서로의 관계는 끊어질 수 없으며 더욱 굵게 이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애착과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을 통해 피상적 표피를 뚫고 진정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남은 기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테다. (이곳 동티모르에서 4개월 남짓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결코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3주간 지내면서 봉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여러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많은 것을 생각하기에 한국의 일상을 벗어나 멀다면 먼 티모르 섬 어딘가에 있어본다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인 것 같다. 앞으로의 4개월의 시간이 그 너머의 긴 시간에 의미가 있길 바란다.)
[에세이-1]동티모르의 일상 by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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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1(목)20일에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에서 출발하여 발리에서 하루를 보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처음 나와보는 외국이다. 인도네시아 발리 공항의 현지 직원들의 표정은 묵묵했고, 서핑을 즐기기 위한 서양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아스토닉 호텔로 갔다. 호텔의 홀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어서 간단히 산책을 하고 출국 후 첫잠을 잤다. 발리를 떠나 동티모르 딜리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양동화, 이시바시 간사님 그리고 일본 친구 유타가 마중 나와 있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 후 트럭 짐칸에 타고 운딜 대학교 옆에 위치한 YMCA 숙소로 왔다. YMCA에는 딜리 대학교 학생들이 스텝으로 있었다. 다들 모여 현지 음식을 먹었는데 약간 싱거운 맛이 나는 우리나라 음식 맛과 비슷했다. 다들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게 먹었다. 현지 음식 적응하는 걱정은 많이 안 해도 될 거 같다. 8. 22(금) 오전에 트럭 뒤에 타서 시티투어를 하였다. 그 느낌은 퍼레이드를 하는 기분이었다. 현지인들은 우리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동티모르식 현지 인사를 하면 다들 좋아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가늘고 높은 “히야~ 후아~~”라는 소리를 내면서, 인사를 건네면 엄청나게 좋아해준다. 팀원들 중에서 내가 가장 현지 인사를 잘한다고 간사님께서 칭찬해 주셨다. 오후에는 동티모르 한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님과 전체 대화 후 바로 앞에 있는 해변에 가서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어제 새로 오셨다는 영사관님이 어제 발리 공항에서 만났던 한국 아저씨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동티모르로 공사 감독하러 오시는 직원으로 생각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어설픈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저녁에는 배드민턴을 쳤다. 효정이와 같이 플레이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과 청년들이 구경하러 왔다. 같이 하자(jogu hamutuk)라고 하면 좋아하면서 열심히 같이 쳐준다. 딜리에도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을 판다. 그리고 농구공, 배구공, 축구공도 있다. UN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큰 마트가 있고 웬만한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구 코트도 있어서 다음에 운딜 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경기 하기로 약속했다. 8. 23(토) 오전에 걸어서 딜리 시내 답사를 하였다. YMCA를 떠나 야시장을 지나갔다. 처음 보는 각종 과일과 채소가 많았다. 시장 주민들은 우리들을 정말 신기하게 쳐다본다. 같은 아시아 사람인데 이렇게 특이하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티모르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은색이 아닌 짙은 브라운 색이다. 그래서 자신들은 초콜릿색 피부라고 말하고는 한다. 정부 청사 앞에 있는 바다에서 잠깐 쉬고, 인터넷 카페 위치를 익히고, 대략적인 시내 구조를 알아갔다. 오후에는 테라산타 지역에 있는 Sao Miguel(성 미구엘)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500명이 넘는 학생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교사 수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수녀 분의 송별회에 같이 참석하게 되었고, 2시간 동안의 송별회 시간 동안 테툼어가 많이 오고 갔지만 거의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수월하게 그리고 깊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으려면 테툼어를 최대한 빨리 익혀야겠다. 8. 24(일) 동티모르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일요일이다. 동티모르에서는 97%의 인구가 천주교인이다. 성당에 대해 알고 느끼고 싶어 연지와 함께 아침 일찍 성당으로 갔다. 정문 앞에는 깔끔한 차림의 청년들이 서 있었고,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여성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온다고 한다. 대부분 원피스를 입었고 오늘은 특별히 결혼식이 있어서 전통 의상인 “다이시”를 입은 여성이 몇몇 있었다. 결혼식 외에 여러 행사가 겹치게 되어 미사를 2시간 동안 진행하여 결국 중간에 꾸벅꾸벅 졸았다. 긴 시간 동안 한 명의 조는 사람 없이 엄숙한 자세를 유지하는 딜리 시민들은 주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오후에는 내일 일본으로 떠나는 유타를 위해 환송회 준비 음식을 마련하였다. 한국 음식으로 된장국, 제육볶음, 소 불고기를 하였고, 또 내일 한국으로 캠프를 떠나는 운딜 대학생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였다. 오랜만에 김치를 먹고,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에 댄스 타임을 가졌다. Hadomi Timor(사랑해요, 티모르)라는 노래에 다같이 서로 눈치보지 않고 신나게 춤을 췄다. 춤과 노래로 인해 한결 서로에 다가가게 되었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내 침대에 앉아있는데 약간 술에 취한 유타가 들어왔다. 판이가 유타에게 우리 여학생 중에 맘에 드는 아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보람이가 좋다고 했다. 평소 거의 말이 없는 유타가 오늘은 스스로 말이 너무 많아서 너무 웃겼다. 유타와 내가 좋아하는 일본 SMAP 라는 구룹의 “요조라노 무코니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부르고, 바로 코를 골면서 자버렸다. 친해지려고 하니깐 헤어지게 돼서 너무 아쉽다. 이런 만남과 헤어짐을 잘 극복해야만 나중에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힘들지 않을 거 같다. 8. 25(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현지 일과가 시작되었다. 성 미구엘 학교에서 화단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커다란 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데 삽과 도구가 전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을 하였다. 나중엔 나무판자로 삽을 대신하고 시멘트 포대로 돌을 옮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씨가 더워서 고단한 시간이었다. 오후 4시부터는 테툼어 전문 강사님이 와서 언어 수업을 하였다. 영어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실력이 상당할 것이다. 팀원들끼리 서로 경쟁하면서 실전 연습을 하며 언어를 익히니 금방 실력이 느는 것 같다. 밤에는 기타 치는 동네 청년들이 있어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O Rai Timor라는 여기에서 아주 유명한 노래이다. 티모르여 영원 하라 라는 주제의 노래인데 음이 생소하여 배우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영상으로 찍어서 자주 연습해야겠다. 8. 26(화) 판이와 함께 딜리 축구장을 가서 경기를 구경하였다. 전문 축구선수들은 아니지만 상당한 실력들이었다. 운딜 대학 학생들이 경기한다기에 응원하려고 왔더니 딜리 국립 대학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게 되었다. 근처 상점에 가서 축구공을 하나 샀다. 가장 좋은 것으로 골랐는데 12달러에서 10달러로 깎아서 사게 되었다. 밤에는 그 공으로 족구를 하려고 나갔다가 동네 청년들이 갑자기 끼어들어 족구가 아닌 공차기가 되어버렸다. 바디 랭귀지와 어설픈 테툼어로 규칙을 계속해서 설명하여 1시간 후에는 어느 정도 갖추어진 족구경기를 할 수 있었다. 동네 청년들은 한국을 좋아한다면서 나에게 팔에 있는 문신을 보여주었다. 팔에는 “저예요”, “아기” 라는 글자가 문신으로 되어 있어 엄청 크게 웃었다. 큰 걱정과 근심 없이 즐겁게 사는 여기 청년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8. 29(금) 사메의 첫경험 2박 3일 일정으로 딜리에서 사메로 왔다. 사메는 1200m 고지에 있는 산악 도시이다. 딜리에서 사메로 오는 길은 포장 보다는 비포장 도로가 더 많다. 그리고 산사태가 많아 엄청 위험한 도로이다. 하지만 풍경은 지금껏 내가 봐온 것 중에 최고였다. 하늘과 구별이 가지 않은 바다색에 나에 눈이 놀라고, 나보다 밑이 있는 구름을 보면서 나에 마음이 흔들렸다. 딜리와는 완전 다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중간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사메 YMCA 사무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좋은 집이었고, 현지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운 말세로와 함께 양초와 램프를 사기 위해 근처 마켓으로 갔다. 딜리와는 다른 엄숙한 분위기의 사람들. 먼저 나에게 인사를 보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주민들과 어색한 눈인사만 나누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운 줄리앙이 해주는 저녁을 먹고 밤하늘의 많은 별을 보면서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사메팀만의 모임에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숙소는 2층 침대이고 나를 반겨주는 것은 “때끼”라고 부르는 작은 도마뱀이었다. 뒤뜰에는 마운 말세로가 직접 만들 운동기구가 있어 두보와 함께 운동을 했다. 사메에는 계곡이 있어 물이 풍부하지만 석회질 성분이 너무 많아 식수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전기는 저녁부터 밤12시까지만 들어오고, 긴급상황 시에만 발전기를 사용한다. 잠깐 동안의 동네 아이들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내가 동물원의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손님이 아닌 현지인과 잘 어울리기 위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될까..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9. 1(월) 아침식사 당번인지라 파트너인 정현이와 6시에 빵을 사러 시장으로 나갔다. 빵집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다는 표현을 하셨다. 3달러 빵을 사고 돌아와서, 커피를 만들고, 버터에 발라먹는 빵의 맛은 여기 동티모르라서 맛있다. 오늘은 성 미구엘 학교에 개학 날이다. 군대식으로 정렬된 아이들. 채찍을 들고 위협하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장. 하늘색 셔츠에 하얀 바지의 예쁜 교복과 상반되게 엄격한 통제의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메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풋풋함은 없고, 사회 물을 먹은 딜리 아이들이 썩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은 젤리를 듬뿍 바른 헤어스타일.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여자 아이들. 건방지게 앉아있는 아이들. “딜리는 티모르가 아니다”라는 신문기사에 나온 기자의 말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9. 3(수) 500명의 학생을 10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라온아띠 멤버들이 각 그룹에 한 명씩 배정이 되었다. 나에 그룹 명은 “Estrera”이다. 다른 그룹들은 교실로 배정이 되었는데 우리는 공사중인 건물 안으로 배정이 되서 처음 분위기는 음산했다. 이런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인지 고학년 학생들이 나서서 학생들을 무작위로 골라 강제로 노래를 시켰다. 폭력과 욕설을 하면서 후배들을 혼내는 학생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Agus(아구스)라는 학생이 많이 도와줘서 수월하게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David(다비드), Abeto(아베토)도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오늘의 그룹 활동을 정리하자만 충격이었고 안타까웠다. 어린 학생들이 벌써 계급사회를 배웠고, 권력의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닌 듯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예전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다. 9. 4(목) 평소에 계속 연습했던 O Rai Timor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손을 들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신청했다. 토요일에 있는 축제 때문에 학생들끼리 노래를 부르면서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 내가 끼어든 것이다. 학생들 앞에 나가서 짧은 내 소개를 하고 함께 노래 부르자고 하니 이 노래를 모르는 학생이 없었다. 웃는 모습으로 즐겁게 따라 불러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고, 반응이 너무나 좋았어 힘껏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 우레와 같은 박수에 내 기분이 들떴다. 이제 가사를 완벽하게 외워서 안보고 불러야지. 한 여자 아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에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았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상당히 놀랬다. 갑자기 내 손을 꼬옥 잡더니 놓지 않고 못 알아 듣는 말을 해줬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난 봉사자라서 아무것도 답례를 해줄 수 가 없었다. 나에 처음 에세이는 이렇게 일기 형식으로 쓰기로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나에 생각과 느낀 점을 정리하는 글을 올려야겠다.
[에세이] 아순시온, 그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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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순시온, 그 두번째 이야기.># 기타는 내 운명.유독 한국에서부터 기타에 욕심을 부렸었던 우리 팀.기타라고는 줄 한번도 튕겨본적 없던 나와 아띠 초영, 아띠 깡지, 그리고 어디서 어깨너머로살짝살짝 줄은 건들어 본 듯한 윤철이까지 기타에 대한 욕망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었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코리아에서 기타를 치던 베트남 팀 이태영 오빠와 필리핀 바기오팀 영주가 멋져보였던 것도 한 몫 거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팀원들에 비해 기타에 대한 흥미가 적어서 한국에서 기타에 대한 토의를 할때도잠자코 의견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여기가 어딘가.여기는 바로 필리핀.어린애들부터 호호백발 할머니 할아부지들 모두가 음악과 춤을 사랑한다는 이 곳.실제로 이 곳 아이들은 노래 불러줘 춤을 보여줘- 하는 우리의 요구에 단 한번도 빼는 걸본적이 없다. 이 곳은 여섯살짜리 여자애가 렐라 렐라 렐라~ 하면서 섹시 웨이브를 날려준다. 어느 곳에서나 팝송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음악과 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기타가 빠진다는 건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일이었던 것이다.우리 따따이(한국말로 아빠라는 의미. 우리는 스텝을 아빠 라고 부른다)는 정말 정말 음악을사랑하셔서 기타와 함께 나나이와(한국말로 엄마 라는 의미) 노래를 부르시는 데 와우- 우린 반해버렸다. (밑에 사진- 하루에 한번씩 꼭 우리 앞에서 뽀뽀하시는 따따이와 나나이)따따이께서는 우리가 기타를 배워보고 싶어한다는 걸 아시고는 바로 전문가 선생님을 구해서 모셔오셨다. 나는 일주일에 월수금이나 하겠지- 했는데 매일매일 주 5일제 수업이었다. 난 정말 태어나서 기타 처음 잡아봤다. 기타 줄이 이렇게 손가락을 아프게 하는 건지도 처음알았고, 기타줄을 튕길때 그 느낌이 얼마나 황홀한지도 알았다. 도저히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에게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시지 않는멋진 선생님 ^^ 지금 선생님께서 들고 계신 기타가 가장 좋은 기타라고 한다그리고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이곳은 라온아띠 책자에 나온 아순시온 YMCA 오피스. 초 큐티 아담 사이즈 오피스지만 없는 거(아주 많이) 빼고 있을 건 다 있다. 따따이와 우리는 한가지 약속을 했다.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는 각자 필리핀 노래 한곡씩을, 그리고 따따이는 한국 노래를마스터해서 기타로 연주하기로.개인적으로 나는 호텔 캘리포니아를 욕심내고 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생님도 코드가 투 매니매니 많다고 했던 그 호텔 캘리포니아를 ㅋㅋㅋㅋㅋㅋㅋㅋ이곳의 스텝들은 기타를 다 칠줄 안다.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필리피노.여담이지만 여기 스텝들이 어찌나 디스코바(한국으로 치면 클럽정도)와 가라오케를 좋아하는지 밤새 디스코바에서 놀고 그 다음날 체력소진해서는 출근을 한다. 우리도 가고싶지만 다바오에서 테러터진 이후로 따따이가 우리의 안전에 대한 문제에서는 매우 엄격하시기 때문에 절대 따따이 없인 움직일 수 없다. 따따이도 디스코 바를 가신다면 좋을련만....하지만 가라오케는 가겠지-하며 위안해본다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필리핀은 축제가 많아서 우리가 기타를 잘 연습해서 노래 한곡만 마스터 해놔도 크게 쓰일 것 같다. 오늘은 YMCA HI-Y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순농 하이스쿨에 방문했는데 이 필리피노들, 여지없이 오늘도 우리에게 노래를 시켰다 어디 학교에만 가면 노래 부르라고 하는 통에 오금이 다 저리는데 벌써 몇 번째 필리핀에서 유명하다는 드라마 풀하우스에서 송혜교가 불렀던 '곰 세마리' 를 나란히 서서 부르고 퇴장했다 젠장! 노래를 부르긴 했으니 박수는 쳐주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실망스러운 눈빛들이란....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짐했다. 텔미 동영상이라도 다운받아서 연습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매일 오전엔 비사야어 수업과 기타수업, 그리고 오후에는 하이스쿨 방문 혹은풋풋 드라이버스(릭쇼) 가정집에 직접 방문하는 스케줄을 치루고 있다.첫번째 이야기에는 힘들다고 투정 부리더니 두번째 이야기엔 너무 자랑하는 건 아닌지 싶지만, 그래 사실 이건 자랑이다 ㅋㅋㅋㅋㅋㅋㅋ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모두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이 곳.요즘은 따따이의 개그 보는 낙으로 산다. 어찌나 장난꾸러기 같으신지.우리가 스텝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고 같이 장난치고 춤추고 기타치면서 지내게 되었다. 어느 덧 한국 스텝 필리핀 스텝이 아닌 아순시온 YMCA 스텝으로 하나가 된 것 같다. 내일은 따따이가 어떤 개그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실까.그리고 TOTO, (이 곳의 히든카드 스텝, 차츰 설명해가기로 한다 왜냐하면 또또는 에세이 하나로도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가 내일은 어떤 저질댄스를 보여줄지 너무 기대된다. 그럼, 오늘도 샤워하다 바퀴벌레 한마리 잡은 지은이가 보내는 아순시온의 소소한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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