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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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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이 곳은 선뜻 글을 쓰기가 꺼려진다. 비겁하게 변명을 하자면, 원래 글 솜씨가 없는 탓, 다른 라온아띠들의 글을 읽고 기가 죽은 탓, 스리랑카에 온 후로 컴퓨터와 TV와는 완전 작별을 한 탓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4개월이 지났고, 이제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미 한달 전부터 귀국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면 눈물이 글썽여질만큼 이곳에 정들어버렸다.어떻게 남은 한 달을 보내야 할 지, 한 달 동안 무얼 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 멍청하게도 가는 시간만을 아쉬워하면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스리랑카에 4개월을 있었지만, 만약에 사람들이 나에게 스리랑카에 대해 묻는다면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오직 짧은 내 시야로만 본 것들이 스리랑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이렇다, 여기 문화는 어떻다라고 단정지어 말을 하기가 겁이난다. 내가 스리랑카의 모든 사람을 만나본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모든 일을 체험해 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스리랑카는 친자식같이 우리를 챙겨주는 YMCA 사람들이 있는 곳, 이제는 우리와 허물없이 친해져버려 똥얘기도 스스럼 없이 하는, 그렇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정말 슬퍼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공항까지 마중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는 코디네이터가 있는 곳, 매일 지나다니는 시장에서 우리를 볼 때마다 공짜로 망고를 건네주는 인심좋은 아저씨가 있는 곳, 일과를 마치고 10분만 걸어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5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서로 부대끼며 지낸 4개월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난, 이 곳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러 왔지만, 오히려 이들이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난 나누기 보다 받기만 한 것 같다.
고마운 라온아띠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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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y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환경 캠페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코디네이터가 소포 꾸러미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라온아띠 코리아 팀 앞으로 한국에서부터 소포가 왔다"고. 우리팀 모두는 궁금해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보내줄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지?' 그러나 뜯는 순간 전 누군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짜파게티 다섯 봉지와 멤버 모두에게 쓴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이 소포는 라온아띠 1기 스리랑카 친구 중 한명인 기쁨이가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 와서도 궁금한 점이 있거나 생각이 나면 종종 연락을 하곤 했는데 한번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농담으로 짜파게티 좀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지나가는 말로 던진 말인데 그 친구는 짜파게티가 그리울거라며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농담인거 알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보내줄 줄이야. 모든 멤버들은 오랜만에 만난 한국의 맛과 인심 덕분에 훈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다음 날 저녁, 코디네이터와 함께 집에서 함께 짜파게티를 끓여먹었습니다. 비록 짜파게티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기쁨이가 보내 준 마음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멤버 모두 기쁨이가 정성들여 써 준 각기 다른 내용의 편지를 보며 그 관심에 기뻐했습니다. 편지를 통해 우리의 근황, 자신들이 심었던 망고 나무, y 스텝들의 안부와 그들의 경사를 다 기억하여 묻는 것을 보며 스리랑카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현지에서는 "타리카(기쁨)"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 의해 회고되는 것처럼 y에 남은 자료들을 통해 생활 당시에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모든 일에 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지어 공부를 한 노트를 봤을 때는 그 열정이 그대로 느껴져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 적도 있습니다. 현재도 한국에서 꾸준히 싱할라어를 공부하고 있고 아이들과 편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남은 시간의 마무리와 앞으로의 본인 행보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과연 나는 현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후속 멤버들에 대해 관심을 꾸준히 쏟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깨달은 것들을 발판 삼아 더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이제 스리랑카에서의 생활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는 법이지만 저는 여기서 마주쳤던 사람들을 언젠가는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헤어짐? 전 그런 것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비록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드넓은 세상, 이 우주 속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을 준비하지만 슬프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헤어짐 이후에도 어떻게 서로의 소중한 추억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유지 하냐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웃으며 만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 짜파게티 다섯 봉지와 우편료보다도 비싼 소포비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기쁨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저도 라온아띠가 끝나면 기쁨이를 본 받아 3기 친구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고 싶네요.기쁨아 고마워 ^^
저도 잠깐공간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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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들어서 많이 생각납니다치열한 한국사회는 너무 힘들군요 ㅠㅠ 스리랑카의 5개월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걱정은 안했을텐데..고민이라도 사람이라든지 때문에하는 건전한 고민이었다고 생각했는데한국에돌아오니 모든게 걱정이네요.. 취업이니 군대니 돈이니..ㅎㅎ돌아온지 벌써 반년이나지냇는데 너무 그립네요.. 달카레가 ㅋㅋㅋ 2기분들 사진보니깐 이제다들.. 스리랑카인하셔도되겠어요~ ㅎㅎ 이제 2기도 얼마안남았네요 남은시간동안 퐈이팅하시고다들보고싶다고 전해주세요 ㅋㅋㅋ
# 2. 6월 5일 ~ 6월 12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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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6월 5일 ~ 6월 12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여행길. 5월 말까지 계획되어 있던 놀이터, 데이케어센터 일까지 모두 끝낸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던 날 했던 세레모니를 보고 감동 받으신 필리핀Y 사무총장님께서도 마침 “일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안 좋은 일도 있었으니 휴식 겸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여행을 떠나면 좋겠다.”는 존경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이리하여 우리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 위한 길을 떠났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며 가벼운 발걸음 닫는대로’ 갔던 여행은 아니었다.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며 길을 찾아 헤메는 모험을 기대했으나 다른 라온아띠들도 그렇겠지만.. 극심한 보호를 받는 우리들이 아닌가. 6월 5일, 우리는 밴을 빌려 새우자세로 잠을 청하며 장장 14시간을 달려 마닐라에 도착했다. 예전에 혼자 여행을 할 때도 숙박비 아끼겠다고 밤에 버스로 이동하곤 했었는데 해가 뜨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때문에 이번엔 눈 부릅뜨고 벼르고 벼르다가 찬란한 일출을 목격했다. 나는 차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솟아 오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태양이, 어스름했던 풍광을 오렌지 빛으로 서서히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경이롭기 이를 데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단연 첫 번째였다. 새벽을 맞은 어느 이국의 풍경이란… 그저 신선할 뿐. 1. 바기오, 이모님과 호돌이. 5일 오후 마닐라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YMCA호텔에서 1박을 한 후 6일 아침에 바기오로 향했다. 차 안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을 구경하고, 핫초코를 마시며 과자들을 주워먹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잠 자는 옆 친구도 구경하자니 드디어 차가 산을 타기 시작했다. 바기오로 가는 길은 끊임없는 오르막길이었다. 에어컨도 안 나와 창문을 열고 안개 낀 풍경과 산 중턱에 집이 즐비한 광경들을 보는데.. 그 순간이 너무 생소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덥디 더운 필리핀이란 나라엔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았던 높은 지대.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능가하는 그 격하고 높은 커브. 안개마저 서린 풍경의 신비함은 가면 갈수록 오묘해졌다. 반나절을 달려 도착한 바기오는 북적거렸다. 게다가 생소하게도 날씨가 추웠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발이 시렵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좋았던 점은 레가스피엔 하나도 없는 한국 식당이 수없이 많았다는 점. 이미 맥주 한 잔을 걸친 우리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한국 음식점 ‘이모네’ 아… 우리 이모님들은 왜 이렇게 전 세계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계시는지… 한 번 방문해드려 그간 그리웠던 이모의 음식솜씨와 천 페소를 바꿨다-_-; 바기오에서의 여행 일정은 무척이나 빡셌다;;; 조금 더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었으나 패키지 상품 통해 온 단체 관광객 마냥 스탭으로부터 빨리 차로 돌아오라는 문자가 연신 왔다. 딸기 농장, 필리핀 식 중국 절, 공원 등등을 초단시간 내에 둘러보았다.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른 기온 덕에 바기오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우린 딸기 농장에 가서 리치만 엄청 먹고 왔다. 딸기는 자라지도 않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신 낄낄대며 맑고 밝은 그 풍경과 함께 어우러졌다. 도심은 여전히 매연에 찌들어 있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푸르른 녹음을 마주할 수 있는 축복받은 환경이었다. 요즘엔 개발 붐이 일어 나무들을 잘라낸다고 어른들은 개탄하셨지만. 이 곳 저 곳, 유명한 곳을 모두 다 둘러보고 배가 고파졌을 때, 우리는 또 하나의 구수한 식당을 발견한다. 이름하여 ‘호돌이 식당’.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고씽. 순두부 찌개를 비롯해 먹고 싶어 죽을뻔했던 한국 음식들을 다 시키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먹었다.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제로에 가깝지만 한국 음식이라면 내 밤새 찬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난 이렇게 3개월만에 처음 맛보는 고향의 맛에 감탄하였으나 오리지널은 아니라는 미식가 강세민씨의 품평회는 시끄럽게 계속 되었다. 그럼 드시지 마시던가요-_-^ 바기오에서의 마지막 날, 역시나 빡센 여행이 계속되었다. 아침부터 200개가 넘는 계단 위의 성당까지 올라가란다. 그래도 뭐, 우린 즐겁다^^ 성당에서 정성스레 초를 꼽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소 경건한 마음으로 바기오의 아침을 만끽했다. 그림 그리는 남자 김희곤 단원은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성당을 스케치하는 예술가 정신을 발휘해 우리를 감탄하게 했다. 부러운 재주다. 여행책자를 보며 바기오에 가면 가장 들르고 싶었던 예술가 마을 탐아완 빌리지를 가게 되었다. 탐아완 빌리지는 필리핀 원주민 중 한 부족인 이푸가오족의 전통 가옥이 있고 그들의 예술과 문화를 보존하고자 조성한, 일종의 관광지이다. 불임인 부부들이 하루를 묵으면 아이가 생긴다는 오두막 집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냥 자기만 해도 아이가 저절로 생기냐고 다같이 캐물었지만 가이드를 해주었던 청년은 얼굴을 붉히며 “I don’t know”만 연발했다^^ 재밌다. 탐아완이 너무너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마 다른 나라의, 혹은 다른 지역의 관광지와는 다르게 정제되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보통의 관광지라면(특히 이렇게 산 속에 있는 곳의 경우) 방향을 안내하는 화살표 천지라 관광의 자유와 시선의 자유를 빼앗기 일쑤인데 우리는 심지어 ‘오지 탐사’를 했다. 올라가기 전 기본적인 도형으로만 그려진 지도 한 장 주고 ‘다녀오시오’ 이런 정도라 알아서 돌아와야만 하는 구조였다. 길도 말끔히 정돈되어 있지 않아 늘어진 가지를 헤치고 올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지도에는 길이 있는데 실제로 보니 덤불이었던 것이다-_-;; 그래, 이런 게 우리 스타일의 여행이지. 진흙 바닥에 넘어지기도 하며 양평에서의 훈련이 이렇데 도움이 되냐며 또 깔깔대었다. 또 가고 싶을 뿐이다ㅠ 점심을 먹은 후 들른 곳은 캠프 존 헤이와 식물원이었다. 말도 안되게 쭉쭉 뻗은 나무들 틈새에서 뒹굴고 뛰고 걷고 웃고를 반복했다. 잔디밭에서 동그랗게 누워 사진을 찍으며, 괜히 도망가는 고양이를 쫓아 뛰던 강세민 단원을 보며, 온 천지가 녹색이던 그 절경을 보며 우린 참 행복했었던 것 같다. 즐겁고 유쾌했다. 여행의 묘미란, 이렇게 별 대단한 걸 보지 않아도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느끼는 행복이다. 그 날 밤, 전 날 먹은 한국 음식으로는 성에 안 차 세민오빠와 나는 결국, 밤 중에 먹어야 더 맛있다는 라면을 먹기 위해 다시 호돌이로 향했다. 문을 닫는 와중에도 굳이굳이 라면을 사서 봉지에 끓는 물을 넣고 ‘뽀글이’를 만들었다. 민폐라면서도 우린 연신.. “저,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저…뜨거운 물 좀…” “저.. 물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짤 것 같은데..;;”…………. 창피하다. 주인 아주머니께선 매일 보시는 한국인인 우리를 쫓아내시지 않은 데엔 강세민 단원의 거지꼴이 한 몫 했으리라 믿는다. 라면 봉지를 움켜쥐고 숙소로 돌아갔으나 문은 굳게 잠기고… 일단 우리는 그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 날, 바기오 시내를 내려다보며 먹은 그 너구리 한 마리.. 조금 오버해서, 태어나서 먹은 너구리 중 가장 맛있었다. 안 익으면 어떤가, 비행기를 타야지만 갈 수 있는 어느 타국의 도시에서 내 옹색한 자취 생활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너구리 한 마리를 몰고 가는데 어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별이 극악스럽게 초롱거리던 추운 밤, 쭈그리고 앉아 너구리를 먹으며 몸을 데우던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아마 세민오빠와 나는 ‘다시마를 먹어야 하나, 버려야 하나’를 놓고 언쟁을 했었지. 차마 달라고는 못하고 계속 곁눈질을 하던 나에게 칼국수 한 젓가락 안 줬으면서 다시마를 안 먹는다며 구박-_-..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날의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야말로 여행이 창출해내는 가장 큰 이윤이 아닐까. (이런 자본주의적 감상-_-^)
Berita Malaysia #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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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번째네요.즐거운 하루되세요.
또 한번 글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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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ODA에 관해서 제가 많이 끌리는 것이 있나 봅니다.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그에 관련된 자료를 읽어 오기 시작했는데요.읽다 보니까 인권에 기반한 개발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되었어요.아직 지식이 짧아서 정확히 뭘 뜻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네이버네 검색해서 확실히 뭔 뜻인지 알아 볼까도 했는데 자료 천천히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마음로 쌓이는게 있다면 그게 인권에 기반한 개발의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이 단어나 나온 만큼 그에 관한 활동을 많이 할테고 그걸 읽는 전 그것 천천히 알아 가겠죠.하지만...요즘 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전통에 기반한 개발은 없을까?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에도 교육을 받았고 예전 부터 많이 들어 왔잖아요.전통. 그거 사람이 사는 환경 마다 다르지 않나요?그 이유는 사는 환경이 다르니까. 각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이유는 사는 환경이 다르니까.전통문화라는거요. 그 나라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결정체가 아닐까요? 자연과의 조화 과정에서 전통문화가 나오고 정신적가치가 나오고. 전 그렇게 생각 했거든요. 그래서 개발을 한다는 것도 이것을 많은 부분에서 고려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교육을 해도 그 전통문화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내의 전통을 하고 지금까지의 조상이 살아온 생활 방식과 그 이유.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 그러한 것들을 알고 고려 한다면, 세계적인 흐름 신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아 무지막한 개발을 하더라고 좀 고려를 하고 개발 하지 않을까요? 그럼 개발 과정 중 무식하게 많은 문제를 낳는 환경 문제도 좀 줄어 들거라고 생각하는데요.이번에 메콩 강을 좀 가려고 해요. 이번에 메콩에만 11개의 댐이 건설 된다죠?문제는 메콩 강에 그 댐이 건설 되는 순간 부터 메콩 강의 전통문화를 사라질 거란 거죠. 물의 흐름이 달라 지고 물고기와 동식물이 사는 환경이 급 속도로 변한게 뻔한데 그 전의 환경에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모든 것들이 변하는 건 당연한 거겠죠.전 그 전에 어떤 전통문화를 이루며 메콩강 사람들이 살아 왔는지를 보고 싶어요. 그래서 거대한 농경지도 모고 싶고, 메콩 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네요.아프리카 얘기도 좀 하고 싶어요.요즘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요. 대륙 중 가장 오랜 된 대륙에 비해서 그리고 많은 인구 수에 비해서 그 대륙의 전통은 많이 사라진 것 같더라구요. 그런 곳에 사람들은 개발이라고 교육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물을 길러다 주고 의료 사업을 하는 것을 자료를 통해 많이 보게 되었어요.태권도를 배워서 뭘 할까요? 잠깐의 이벤트 아니면 그냥 한국문화 소개? 물은... 깨끗한 물을 먹는 것을 좋을 거에요. 그 만큼 아이들은 깨끗한 물을 통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면혁력이 없는 아이들이니까. 그런데 잠깐 깨끗한 물을 공급 받고 다시 더러운 물을 먹어야 한다면, 그 사람들에게는 이중 고통이죠. 그 나라 환경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물(이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시선이겠죠.)을 먹을 수 밖에 없다면, 그 사람들은 이미 그 물에 어느 정도 익숙해 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 평생을 깨끗한 물로 정화해서 준다면 좋겠지만, 그런거 아니라면 괜한 생각 접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 했어요.약? 비슷 할거 같아요. 에이즈가 특히나 많다고 들었어요. 약도 없는데 어떻게 생활 할까요. 이건 전통 약으로도 안되는 거고. 그 외의 다른 방법이 많겠죠. 물과 같은 거 같아요. 평생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거 아니라면 차라리 전통의 방식으로 예를 들어 그 나라의 약초로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정보 교육 이라던가 철도나 도로 이러한 것들을 통해 이동성을 높힌 다거나. 모두다 필요 할거라고 생각 되요. 하지만 이게 그 사람들에게도 정말 필요 할지가 의문이에요. 정보의 격차. 옛날에는 그런거 없이 잘 살았던 거 같은데. 뭐 지금 개발이 되서 꼭 필요 하지만. 그 옛날 정말 사람들이 욕심 없이 서로 상부상조 하고 물물교환하고 개인 자산에 대해 욕심이 없었을 때는 그런거 필요 없었을 텐데. 지금은 생활이 그렇지 않죠. 하지만 아직도 그러한 곳이 존재 하잖아요. 그러한 곳 까지 굳이 컴퓨터 갖다 놓고 도로 깔 필요는 없을 거 같아여.도로... 철도.. 이러한 것들이 깔리면서 많은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죠. 땅은 숨쉴 수가 없어지고 매일 같이 지속 되는 소음과 사고들. 이동을 빨리 하다 보니 그 외의 많은 문제점들이 더 발생이 되죠.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 발전을 해야 하니 더 많은 환경 파괴와 문제가 생기고 이건 계속 이어질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짧은 지식으로 더 깊은 생각을 못 쓰겠네요. 베트남은요. 물이 엄청 드러워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보니 오토바이 세차도 하고 세재가 나오다 보니 세재도 쓰는데 문제는 정화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도 모든 폐수가 강으로 흘러 들어가니 물은 더러워 질 수 밖에요. 쓰레기 국물도 그냥 하수로 버리고 그 것들은 하수를 따라 강으로 흘러 들어 가죠. 이게 몇년 계속 지속 되다 보니 더러울 수 밖에요. 베트남은 비닐을 많이 써요. 작은 물건 사도 비닐을 주고 장난 아니에요. 문제는 그 비닐이 잘 안썩으니까 문제죠. 쓰레기 통은요. 모두 구멍이 뻥뻥 크게 뚫려 있어요. 이유는 잘 모르 지만, 비 때문이 아닌가 해요. 비나 많이 오니까 그 빗물이 빠져 나가도록 만들어 진게 아닌가 하는거죠. 문제는 이 쓰레기 통이 쓰레기 통의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거죠. 쓰레기 통해 쓰레기를 넣어도 그냥 바람에 다 날라가고, 사람들도 쓰레기통에 안버리고 길바닥에 그냥 버리는 것도 많아요. 옛날에 음식물 쓰레기야 과일 같은 거 먹고 길바닥에 버려도 동식물의 거름으로 잘 순환 되었을 테지만, 요즘은 도로위에 그런 것들을 버리고 또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많으니 많은 부분에서 순환의 흐름이 끊겼죠. 아 ! 그거 아나요? 종이는 썩으면서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는데 그게 이산화탄소의 20배라고 하네요. 종이. 한국도 마찬가진데 참 많이 쓰고 버리죠. 세재를 들어 오지 말고 그냥 쌀뜬물로 여러번 씻어서 충분히 그릇은 깨끗한데, 오토바이는 아무리 경제 발전이 급해서 많은 부분에서 필요 성이 급증했다고 하지만 그러면 그 뒤에 이러질 문제점들(공기오염 및 기름이나 세차 등으로 발생되는 오염들)을 대비 해두지. 쓰레기통은 수거의 용이와 비 때문인지가 확실한지 모르지만, 좀 더 실용적으로 쓸고 비닐 보다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거나 아니면 쓰레기 통을 개량 하면 좋았을 껄. 아무대나 쓰레기 좀 버리지 말지. 다 수거 하기 힘들어 져서 결국 땅에 묶히면 다 환경 오염이 될텐데. 베트남은 전통문화를 잘 아는 나라인것 같아요. 어린 아이들도 전통 노래 춤을 잘 따라 하고 어릴 때부터 잘 가르치는 것 처럼 보이거든요. 하지만 점차 경제적인 면에서 시장을 개방하다 보니까 그 전통 문화와 시장경제의 이념에서 많은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도 과도기 단계겠죠. 음... 우리나라는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은 많이 사라졌다는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직까지 베트남은 전통이 살아 있어요. 도시는 많이 오염 되었지만, 아직 시골은 그렇지 않으니까. 아직 지금 베트남이 갖도 있는 여러 문제점을 전통에서 해결 할 방법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베트남 전통을 잘 몰라서 뭐 깊은 말을 잘 못쓰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 메콩강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게 한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알아가는 길로이어 졌으면 좋겠네요. 이젠 저도 우리가 어떻게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 왔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졌으니까요. 우리의 문제점들도 분명 그 속에서 해결할 방법들이 있겠죠.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단상(斷想) 3(4시까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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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단상(斷想) 3 09년 6월 15일 제목 : 4시까지 와! - 나는 이 곳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 ‘테라산타’마을에 위치한 YMCA 센터에서 팀원들과 함께 일주일에 세 번 영어를 핑계?로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의 미숙함 인지 처음에는 교실을 꽉 채운 아이들이 하나 둘 안 보이더니 어제는 센터에 있는 아이들은 둘 뿐인 것이다. 아이에게 “친구들은 어디 있니?”하고 물으니 대답 대신 친구들을 데리러 다녀 온 단다. 옆에 있던 친구도 같이 간단다. 나는 좋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답게? 4시에 수업이 시작하니 늦지 말고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사이 안 보이던 아이들 몇몇이 왔고, 4시에 예정된 수업은 시작됐다. 나는 수업 준비로 보낸 아이들의 존재를 까마득히 잃어 버렸다. 한 시간 수업의 반이 지났을 쯤 아이들은 약속을 지켰고,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이런 .... ㅠㅠ; 하지만 나는 우리가 교실 안의 또 다른 아이들과 정한 규칙이 있는 지라 아이들에게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 하지 않았다. 나는 지극히 내가 가진 시간의 개념과 상식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 밀었고 끝끝내 고수하였다.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고, 자책감도 들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아이들과 함께 한다고 하고 있는 것 인가? 그들은 이해하겠다고 상대적인 사고를 하겠다고 무수히 기억하고 다짐하지만 난 여전히 순간순간 너무나 단순하게 그들에 아픈 상처를 주는 것 같다.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며 너무 쉽게 하고 있다.
the story of team Phil. # 1. 5월 13일, 소리없이 다녀가신 밤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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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어느 덧 귀국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슬슬 한국에 두고 온 지인들로부턴 기념품을 사오라는 사랑스러운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여행을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지역 주민의 한명이 되어 살았을 뿐인데 여기 왔다 가는 것을 꼭 그런 식으로 ‘기념’할 필요가 있나 싶다. 게다가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이 곳에 대한 것을 완벽히 드러내줄만한 기념품도 못 찾겠다. 내 고향 춘천에 왔다가 욘사마 양말이나 사가는 일본인 관광객 같이 되고 싶진 않고..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내 지인들이 한국에 있을 동안 다른 공간에 있었던 티는 내고 싶기에 오늘도 기념품 리스트를 정리하고 앉아 있다. 송실장님 아시면 욕이나 한 바가지 던지실 일이다. 조악한 기념품 몇 개를 사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물론 마음 속으로 내가 보낸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겠다. 많은 날들을 보냈고,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시간을 되돌아보는 일엔 일기장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후우, 불만도 참 많았고 좋았다고 낄낄 댄 적도 많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언 따르느라 한국 가고싶다고 칭얼댄 적도 많았다. 아이들이 ‘아떼 유림’이라고 부르며 잡기에도 조심스러운 그 작고 연약한 손을 내밀었을 때 가슴이 설레어서 날아가는 글씨로 일기를 썼었다. 참… 다양한 희노애락들이 손바닥만한 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다. 행복했던 그렇지 않았던 모두 값진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보낸 그 값진 시간들 중 일부를 이 글을 볼 당신과 공유하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타국에서 엄마 생각하고 있을, 너무 보고 싶은 다른 라온아띠들이 무릎치며 공감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1. 5월 13일, 소리없이 다녀가신 밤 손님. 한 달도 더 지난 이제와선 제법 웃음지으며 얘기할 만한 배짱이 생겼다. 심지어 “그래 뭐 잘 털렸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후훗, 그러나 이건 오직 우리만 할 수 있는 얘기다. 팀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저렇게 말 한다면 아직도 화가 날 것 같다. “뭘 안다고 그래??!!” 라고 윽박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활동이 중반에 접어들며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다른 팀원들은 여전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지만 포지션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나는 심란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팀 리더라는 허울좋은 명목 아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었고 자괴감 및 무력감이 겹겹이 쌓여 혼자선 마음을 추스릴 수 없는 날이 허다했다. 그래서 그 날도 그렇게 늦게까지 1층에 앉아 넋을 놓고 있다가 두시 반이 되어서야 터벅터벅 2층 침실로 올랐다.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느라 심신이 몽롱했지만 리포트를 수정하느라 1층에 놓아두었던 노트북 두 개를 2층에 올려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날들이 들어있는 귀중품이었기에 없어지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때문에 나는 가장 늦게 잠드는 자의 책임을 완수했다. 뭐, 불 끄고 문단속 하는 거야 당연하고 말이다. 얼마만에 잠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뜬 게 네 시 가량이었으니 한 시간 반 남짓이었던 같다. 잠결에 들은 말이라곤 “도둑 맞았어.”라는 희곤이의 목소리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1층으로 뛰어내려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내용물이 다 빠져 쭈글쭈글 해 진 지은이의 여행가방과 널부러져 있던 옷들이었고 뒤이어 어떻게 거기까지 옮겨졌는지 궁금해질 만큼 커다란 민하의 캐리어, 그리고 지하실 입구 앞에서 뒹굴던 내 캐리어. 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미 노트북 세개를 비롯한 디카, 핸드폰, 전자사전, 지갑 등등이 다 없어졌음을 확인한 뒤였다. 참 말끔히도 털어갔다. 자기 전 내가 시간을 확인했을 때 2시 37분이었는데 최대 한 시간 반 사이에 그 모든 걸 쓸어간 것이다. 도둑은 집 밖에서 불이 꺼지길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혼자 거실에 앉아 멍하니 있던 나를, 그 사람들이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훅 끼쳤다. 침착하자고 다짐하며 일단 바로 뒷 집에 사는 스탭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리맡에 놓아두었기에 살아 있었던 내 핸드폰이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조금있다 스탭이 오고 두 시간쯤 지나 경찰이 왔다. 사건 현장을 처음 본 띠야(집안일을 해 주시는 아주머니)는 벌써 서너번 째 사건의 정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없어진 물건의 목록을 작성했고 그들은 도둑의 동선을 추정하기 시작했다. 아…..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었다. 왜 우린 우리가 무사할 거라고만 생각했었는지. 여긴 안타깝게도, 남자 하나가 제 집에 가려고 뒤에서 걸어오기만 해도 변태 취급을 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그래서 경찰이 밤에 열심히 돌고 또 돌고 사람들은 몸을 사리고 사려 이런 일 한 번 터지면 세상이 뒤집히고 뉴스에 나지만 여긴 사고가 나면 그냥 그런거다. 그 날은 정말 배알이 꼴려 삐딱선을 탔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였다. 내가 여기 자원봉사를 하러 왔는데, 나도 나름대로 손해를 감수하며 오기로 결심했고 덥고 습한 날씨 참아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래 너희들이 우리에게 하는 건 이런 거냐, 어쩜 이럴 수가 있나..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수사 결과라고는 ‘노트북 한 대가 동네에서 매물로 나왔는데 우리 껀 아니다’는 거…. ‘용의자는 세 명인데 각기 다른 바랑가이(‘부락’정도를 뜻하는 말) 사람들이다.’ 이 정도다. 주변인들은 찾을 거라고 기대 하지 말란다. 난 또 화가 났고 스탭은 말했다. “여긴 필리핀이다. 이게 필리핀의 현실이다. 우린 전쟁은 없지만 가난이 있다.”……. 그런가? 가난하면 남의 물건 훔쳐도 되는 건가? 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다 그런가? 몇 주 후 필리핀Y 사무총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얘기를 하던 도중, 이런 일이 이렇게 자주 벌어진다면 경찰들이 나서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씁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내 불행이 가장 커 보여서.. 내 나라만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이 곳의 시스템을 비난하며 주변인들에게 하나 둘 상처가 될 말들을 던지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이 지역 대학생 자원봉사자도 “노트북 잃어 버렸으면 다시 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해 사이가 틀어져버렸다. 필리핀에 사는 그들에게 난, 부자나라에서 온 사람이라 노트북 하나쯤 다시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는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원망했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의 모든 기록들과 사진들 그리고 내가 노트북, 디카 등등을 가진 이후 보내왔던 2년여의 시간을 날려보냈으니까. 힘들게 돈 벌어서 산 물건들이 다 없어졌으니까. ………내 상황만 심각했으니까. 얼마나 무지했는지 이제서야 느낀다. 참… 난 이 나라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고 있지 못했다. 그저 오만했다. 내가 그토록 부정해도 난 선진국에서 온 생각 짧은 아이가 맞았다. 난 내 나라의 모순을 알기에 절대 잘 산다고 생각치도 않고 나 자체도 부자가 아닌데 왜 무조건 ‘부자 나라에서 온 돈 많은 아이’로만 치부하는 건지. 처음엔 참 불편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가난하면 남의 물건 훔쳐도 되는 거냐고?… 헛웃음이 날 정도로 모자른 생각이다. 난 가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 내가 키가 작은 이유는 운동을 안 해서지 절대 못 먹어서가 아니며 단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일 해 본 적도 없고, 온갖 재난 때문에 고향 떠나 흙바닥에서 천막치고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적도 없다. 전기가 없어서, 물이 안 나와서 고생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죽었다 살아나 본 적도 없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끔찍이 아끼는 세살박이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는 8개월 때 태풍에 화산 피해로 거의 죽을 뻔 했단다. 비록 세살이지만 나보다 산전수전을 더 많이 겪은 그 아이가 “넌 우리가 겪은 것의 백분의 일도 겪어 본 것이 없지 않느냐. 이해하는 척 마라.”고 소리친다고 해도 할 말 없다. 오히려 고개만 더 수그러들 것 같다. 나는 결국 도도한 우리 스탭으로부터 “여긴 가난한 나라다, 너희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무지한 날 위해 그 불편한 현실을 토로하는 것이 그녀에게 참 힘든 일이었을텐데 나, 참 대단한 일 했다. 내 무식한 짱돌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모두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싶다. 졸속으로 발전한 어떤 선진국에서 온 철없는 아이였거니… 다들 날 이렇게 생각할테지. 뭐.. 그래도 할 수 없다. 뿌린대로 거뒀다. 쳇, 국내 훈련 기간 내내 주옥 같은 강의 듣고 고개 끄덕인 거 말짱 헛것이다. 아니, 3년 넘게 ‘문화인류학’ 공부한 것도 다 필요없다. 오기 전에 다짐했었다. 내가 함부로 내 뱉는 말 한마디, 무의식 중에 보이는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 그들은 상처 입을 수 있으니 무조건 조심하자고. 그런데 난 내 물건이 없어진 것에 화가 나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마음 속으로 원망했나. 그들에게 말로써 직접적인 상처를 준 것이 아닐지라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죄를 진 것이다. 생각할수록 내가 우습다. 아직 많이 어리구나, 지은이 말대로 라온아띠는 사람되라고 보낸 것임이 틀림없다. 거식증에 향수병으로 괴로워하던 그 날, 불면증까지 겹칠 것 같아 계속 그 방에서 잘 수가 없었다. 하여 우리는 남정네들 방에서 다 같이 자게 되었다. 침대를 벽 쪽으로 최대한 붙이고 지은이와 민하와 나의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았다. 게다가 누군가 또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방문에 창문까지 다 잠그고 선풍기 하나만을 튼 채로 잠을 청했다. 그래도 겁이 났다. 하필 난 문가에서 자 10분에 한 번씩 깬 데다가 더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다섯명이 함께 한 공간에서 잠을 청했던 것,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하루를 보낸 우리끼리 잠들기 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한다면 난… 철없는 걸까?^^ 그 후, 모든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우린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하고 모여 앉아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껄껄대며 다 같이 웃기도 잘 웃었고 사돈의 팔촌 얘기까지 들먹거리며 쓸데 있는 얘기, 없는 얘기들을 나눴다. 마치.. 노트북 카메라 핸드폰과 팀웍을 맞바꾼 듯 하다. 그래서 우린 종종 말한다. “까짓 꺼, 잘 털렸다!!” 그래도 전자사전은 좀 아깝다… 컬러에 중국어 일본어 다 되는 거 였는데…..;; 몸에서 사리 나올 만큼이나 귀중한 깨달음 그리고 팀원들과의 돈독함이 그 값이었다면 뭐.. 알바 더 할 수 있다. 에잇!!!!!!!!
[국내훈련 : 천안 도로다이어트 및 자전거 관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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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저희 베트남팀은 천안YMCA에서 국내훈련을 1주일간 했었지요.그 때 소위 다리가 부러져라 발로 뛰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도로폭을 재고 버스단말기를 확인하고 자전거 보관소를 조사했던 기억이 벌써 오래전 일 같다는게 신기하기만 합니다.또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들의 땀과 수고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와 함께 천안에서 만났던 모든사람들과 많은 맛집(!)들도 스쳐지나가네요. 그간 천안 YMCA는 조사를 더 진행하고 보고서를 완성해서 이렇게 기사화하고 정책제안을 하게 되었답니다.우리는 약간의 조사만 도왔을 뿐이지만,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노력의 결과가 문서화된걸 보니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굉장히 뿌듯하기도 하고, 이런 방향으로 천안시가 변화해나가는 모습이 기대되고 그리하길 바래봅니다. :)고생하셨어요 모두들! 자전거는 천안에선 무용지물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586394) 천안YMCA, 자전거 전용도트로 개설 제안조사통해 ‘도로 다이어트’ 가능한 곳 제시 천안·아산 LIFE # 지난달 초 천안에 이사 온 이모(45·여·다가동)씨는 즐겨 타던 자전거를 두달 째 아파트 내 보관대에 묶어 놓은 상태다. 이사 직후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에 나갔다고 곤욕을 치른 탓이다. 인도가 좁아 차로로 자전거를 타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후 천안에선 자전거를 탈 마음을 접었다. 이씨는 “전에 살던 경기도 안양의 평촌이 그립다”고 했다. # 자전거 애호가입니다. 천호지에 자전거도로가 없어 너무 아쉽습니다. 1미터만 더 넓혔더라도 가능했을텐데…. 요즘 친환경이다, 건강이다 각 지자체별로 자전거도로를 만드는데 왜 이 좋은 곳엔 없을까. 서울 중랑천변은 자전거도로가 산책로와 나란히 의정부까지, 아래로는 서울숲까지 있는데…. (천안시 홈페이지 인터넷신문고 3월 6일 유모씨가 올린 글 일부) 뒤 글에 대한 천안시 공원산림과의 답글은 이랬다. “천호지공원은 조깅코스로 조성됐습니다. 공원 내 자전거 이용 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다른 곳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안에는 제대로 된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다. 최근 준공된 서부대로나 북부대로뿐아니라 왕복 8차로인 번영로에도 자전거도로는 없다. 다만 축구센터, 종합운동장 축구장 등 운동장·공원의 산책로 옆에 일부 개설됐을 뿐이다. 이런 천안시에 23일 천안YMCA가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을 긴급 제안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건강하고 행복한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 구현을 위한 자전거 이용 활성화 종합대책’ 의미를 천안서도 실현해보자는 뜻에서다. 앞서 자전거도로를 내기 위한 ‘도로 다이어트’가 가능한지 알기 위해 주민 밀집지역의 도로를 조사했다. 대형마트(구성동 홈플러스, 갤러리아백화점, 성정동 롯데마트)와 역(천안역, 두정역, 쌍용역)을 중심으로 반경 1∼1.5km 이내의 도로 폭을 쟀다. 이 결과 “8군데의 자전거도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터미널사거리에서 방죽안오거리 ▶터미널 사거리에서 신부초·대림한숲아파트 ▶구성삼거리에서 남부오거리 ▶집합주유소에서 원성동 GS마트 ▶1번 국도 유량동사거리에서 신성미소지움 ▶동서대로 인쇄창사거리에서 쌍용대로 시작 구간 ▶충무로 삼일원앙사거리에서 이마트사거리 ▶서부대로 쌍용사거리에서 일봉시영1차 아파트 삼거리 등이다.<표 참조> 자전거 전용도로의 폭은 1.1m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길이 100m 미만의 터널·교량 등에선 0.9m까지 허용된다. 왕복 4차로의 경우 한 차로의 폭을 60cm정도씩 줄이면 가능하다<그림 참조>. 천안YMCA 김우수 시민사업팀장은 “시는 부족한 자전거도로 확보를 위해 자전거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유관기관인 경찰서와 협력해 주민밀집 생활권에 우선 설치하고 시범 운영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전거 이용자 안전을 위해 “전용도로 설치 시 차량 진입 방지 시설과 좌회전 및 도로횡단 시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존 도로 폭을 축소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한 우수 지자체로 서울시와 인천·대전·창원·고양시 등을 꼽았다. 문의 천안YMCA (041)575-9897. 조한필 기자 ◆도로 다이어트= 인도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대신 차도를 좁혀 만드는 방식으로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기존의 차로 수를 줄이지 않고 차로 폭을 좁혀 자전거 도로를 위한 공간을 확보한다. 인천·고양시 등에서 시행 중에 있다. 천안시는 2007년 자전거도로 설치를 위한 연구 용역을 실시한 바 있다. 천안, 자전거 도시 ‘무색’ 관공서·교육 기관 등 절반 이상 보관대 미설치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13956 [천안]천안지역 주요 관공서와 교육기관 등에 자전거 보관대가 턱없이 부족해 자전거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YMCA는 지난 2월 16일부터 3월 26일까지 천안시 각 읍·면·동 주민자치센터 등과 경찰서, 소방서 등 공공기관 81곳과 대학과 일선 학교 등 교육기관 85곳, 터미널, 대형마트, 공원 등 다중집회시설 27곳 등 모두 193곳을 대상으로 자전거 보관대 설치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관공서는 전체 81개소 중 71.6%인 58개소, 교육기관은 47.1% 40개소, 다중집회시설 33.3% 9개소 등에 자전거 보관대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천안시청과 주민자치센터, 사업소 등 50곳 중 무려 30곳이 자전거 보관대가 설치되지 않았다. 경찰서와 시내 지구대는 동남 경찰서만, 우체국은 우만편집중국만이 자전거 보관대를 설치했으며 소방서와 시내 119안전센터는 단 한 곳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교육청과 충남학생회관, 학교 등 교육기관 88개소 중 동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27개소와 중학교 6개소, 고등학교 6개소, 대학교 1개소는 자전거 보관대가 없었다. 또 천안아산역과 성환터미널에도 자전거 보관대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공원 중에는 삼거리 공원만 자전거 보관대가 있었다. 천안YMCA는 이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자전거 이용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 설치 ▲자전거 이용활성화 조례에 의거한 종합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 ▲유관기관과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한 보관대 확충 등을 촉구했다. 천안 YMCA 관계자는 “지난 2007년 제정된 천안시 자전거 이용 활성화 조례가 사문화돼서는 안된다”며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서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관대, 자전거 수리시설 등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며 자전거 이용자 육성과 안전교육도 병행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고경호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내버스 정보단말기 알아볼 수가 없어요” 천안 일부 지역 오작동·화면불량…시민 불편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11355 [천안]시내버스 이용객에게 버스 도착 정보와 노선 정보 제공 등을 위해 시내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정보단말기 일부가 화면불량 등 고장나 이용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22일 천안YMCA에 따르면 131개의 시내버스 정류장 정보 단말기 가동여부를 살펴본 결과 9.2%인 12개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조사결과 천안종합운동장과 복자여중고 등 11개 정류장에 설치된 단말기의 노선방향 및 확인기가 오작동되고 화면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서울대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단말기는 전원이 꺼져 있어 작동하지 않았으며 이용객이 많은 종합터미널 2곳에 설치된 단말기는 정상 가동되긴 하지만 LED 안내판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또 터미널 맞은편 정류장 LED 안내판은 용량 초과로 이곳을 통과하는 시내버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천안YMCA 관계자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 편의를 위해 시급히 관련 시스템의 오류 수정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안 YMCA는 이와함께 버스 정류장 유개 승강장과 의자 등 편의시설 설치 확대와 버스 정류장내의 불법 주정차 단속, 승강장 설치 시 충분한 보행공간 확보 등도 촉구했다. <고경호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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