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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이정도
99+
‘무등’이라는 한국 기업에서 전 직원들이 다일센터로 봉사활동을 온 적이 있었다. 3일 동안 함께 열심히 아이들과 밥을 나누었고 마지막 밤에는 그분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다일 중창단 아이들의 공연이 있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예쁜 옷과 깨끗한 신발을 신었고, 큰 수영장이 딸린 호텔의 야외 연회장에서 멋지게 노래를 불렀고, 맛있는 음식도 배가 부르게 먹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싸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트럭을 타고 자기들 집이 있는, 우리가 똔레삽 수상 빈민촌이라고 부르는, 프놈끄라운 작은 마을로 돌아갔다. 화려했던 곳을 떠나 다시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 나라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더러운 옷을 입고 많은 식구들로 북적거리는 비좁은 수상가옥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럴 이유도 없었지만 왠지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선의 벽 다음날 센터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은 깨끗한 신발 대신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색이 다 바란 옷을 입고 밥퍼에서 주는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내가 전날 밤 안타까워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행복해했고 또 행복해 보였다. 이곳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은 낯선 외국인의 시선일 때가 많다. 정작 본인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불쌍한 눈으로 보는 나를 발견할 때 마다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나 스스로 만든 그 벽을 없앨 수 있을지, 아니 평생을 살면서 그 벽을 허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 생각은 대부분 옳고 그래도 내가 잘났다고 자만하는 나인데 이곳에서는 오죽할까. 나와 매우, 상관이 있는 나라 캄보디아 친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이곳으로 왔지만 내가 정말로 아이들과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과 스텝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내가 이곳을 떠나고 나서도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기억할지는 알 수 없다. 우선 나부터 얼마나 이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추억으로 남을 사람들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잊고 이곳에 집중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은 이곳을 떠나면 또 내 삶의 자리에서 이전에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잘 살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적어도 이곳을 까맣게 잊지는 않도록 더 많이 마음에 담으려고 안간힘 쓰며 살고 있는 듯하다. 요즘은 내가 내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떻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이런 생각들이 ‘문득’ 들 수 있는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려서 인지 소중하다는 생각이 정말 ‘문득’ 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조바심이 생긴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쉽고 내가 어떻게 지내든 결국에 한국에 돌아가서는 내가 보냈던 5개월의 시간이 아쉽고 이곳이 그리울 거란 생각들. 그래서 더 많이 아이들과 나누려 하고 하나라도 이곳을 더 마음에 담고 싶다. 나와는 상관없는 나라였던 캄보디아가 이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 한명 한명의 얼굴이 떠오르는 정말 나와 상관이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개인에세이, 양예림
1
99+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뜨거운 12월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내 머리도 마음도 무척이나 뜨겁다. 이 곳 아시아 속 캄보디아에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상황들이 있다. 활동을 하며, 이 모든 것들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진심 어리게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들이었다. 타인들의 눈을 의식하는 나, 타인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나. 수많은 의식 거리들 중에 내가 바라본 나를 의식한 적이 있었나. 내가 가진 경험들, 내가 가진 생각들, 그로인해 갖게 되는 편견들, 그런 나를 먼저 알고 이해해야 했다. 새까만 피부에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 사랑받기보다 사랑할 줄 아는 너무나도 어여쁜 아이들. 이 천국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과 같이, 여기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같이, 점점 물들어 가는 서로를 보며 ‘참으로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뇐다. 성장통 그렇지만 사람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인지, 이렇게 즐겁게 살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배배 꼬인 마음들과 남들이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생기는 짜증과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모습을,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찾아온 말도 안 되는 것들과 싸우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 속에서 원하던 원치 않던 맞이하게 되는 사춘기 2차성징과 같이,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 라온아띠가 된 나는 이렇게 또 다른 성장통을 겪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하고 정신없어 할 나 자신과의 싸움을 지금은 좀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며 여유롭게 숨을 고른다.‘좀 더 천천히.. 좀 더 천천히..’되뇌고 또 되뇌며, 나의시선, 나의 마음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입에 늘 붙어있던 ‘빨리 빨리’ 보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기도 한 ‘천천히’를 외친다. 그동안 못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들, 행동들, 마음들.. 이제는 조금씩 볼 수 있고,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아직도 가끔 배배 꼬이는 마음들을 나도 주체하지 못 할 때, 심술궂은 내 마음들을 자주 보게 될 때, 다른 누군가와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될 때, 또 다시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어떤 것 보다가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자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은 내가 되자고 말이다. 마음껏 사랑하는 삶 모든 것들에 있는 어려움과 힘듦은,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미처 몰랐던 다른 상황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이곳에서 걱정 없이 나에 대해 맘껏 고민하고, 아시아를 맘껏 품으며, 맘껏 사랑하고 사는 나의 작은 고백을 마친다.
개인에세이, 성지은
2
99+
2010년 10월 1일 금요일 날씨: 맑음 오늘은 10월의 첫째 날이다. 캄보디아에서의 9월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뭔가 허전하면서도 시간에 대해 긴장하게 되는 날이다. 오늘은 10월의 첫째 날이기도 하면서 도서관 프로그램도 처음으로 하는 날이다. 도서관 프로그램을 준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즐거운 프로그램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 도서관프로그램으로는 천안에서 합숙훈련을 할 때 배운 북 아트를 이용한 자기소개하기였다. 종이를 펼치면 코와 입은 입체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머지 눈이랑 머리카락 ....등등은 직접 그려서 자신의 얼굴을 꾸며나가는 것이었다. 이날 70여명의 아이들이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왔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내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분명 얼굴을 꾸미기 전에 찐눈 선생님(통역 해주시는 분)께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라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 얼굴을 그렸다. 그 이유는 이날 아이들에게 샘플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갔던 내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보단 내 얼굴을 똑같이 그렸던 것이다. 안경을 낀 얼굴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니악 엇 미은 봐엔따”(너는 안경이 없자나)라는 말을 했지만 그냥 예쁜 미소만 띄며 계속해서 나의 얼굴을 그려나갔다. 이날 안경을 낀 사람은 유일하게 나밖에 없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 그려나가고 있는 얼굴은 안경을 낀 나의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다 그리고 나에게 보여줄 때마다 내 얼굴이라서 얼마나 웃겼던지 모르겠다. 얼굴을 꾸미는 시간이 끝나고 5명 정도의 아이들이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그린 얼굴은 나였지만 자기소개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보여 매우 기특했다. 이날은 도서관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위도 많이 부족했고, 종이도 얇아서 코랑 입이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크레파스도 턱없이 많이 부족했고, 전체적인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10월의 첫 출발이 우리 팀원 5명이 함께 했다는 것도 너무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의 도서관 프로그램도 매우 기대되며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개인에세이, 김진우
99+
모든 것이 새로운 이곳에서의 삶은, 단순한 학습이 주는 이론적인 지식을 뛰어넘어 경험을 통한 학습, 그 안에서 폭 넓게 펼쳐지는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알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형성에 있어 다시금 그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관계의 가치 지금까지 만났던 모두와의 관계가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한층 더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가끔은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애틋한 관심에서 나오는 배려, 어쩌면 이것은 다름을 뛰어넘어 모두를 아우르는 이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보다 선한 영향력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다시금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모든 형태의 다양성, 그 가치 가장 간단하고 보편적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아시아적 감수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양성, 그 모든 형태의 삶의 가치. 그 안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집중 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개인에세이, 홍인옥
99+
12월 중순 한국은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한 낮의 태양이 나의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을 맺히게 할 만큼 강렬하다. 매서운 바람 때문에 시린 손을 호호 불 필요도, 가슴 속까지 불어 닥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꽁꽁 싸맬 필요도 없는 썸머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야 하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노동의 땀을 흘린 후 차가운 물로 샤워할 때의 시원함과 고된 일정 뒤 마시는 한잔의 얼음물은 추운 날 포장마차에서 호호 불어가면 마시는 어묵 국물 한잔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리핀, 그 처음 어느덧, 한국을 떠나온 시간보다는 한국에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를 돌아보았다. 처음에 느꼈던 이곳만의 독특한 향취가 익숙해져 가는 시간만큼 그리고 내 피부가 검게 그을려져 온 시간 동안 내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나의 이야기들을 아름답게 미화하지도 이곳을 지상 낙원인 마냥 묘사하지도 않은 채 내가 서 있는 지금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싶다. 첫 사랑, 첫 직장, 첫 차, 첫 집… 우리는 이렇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기억하며 아니 심지어 평생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처음이라는 설렘 때문에 잊지 못할 수도 아니면, 처음이라 겪었던 두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라온아띠가 되어 처음으로 우리 팀을 만나던 순간, 처음으로 필리핀에 땅을 내딛던 순간, 처음으로 필리핀 통솔자인 쿠야 모리토를 만나던 순간,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났던 순간 등 내겐 잊을 수 없는 첫 경험들이 2010년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9월, 새로움이 많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찰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새로운 물건을 발견할 때 마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관찰하고 입안에도 넣어봤다 던져도 보는 것처럼 필리핀에서의 처음 접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며 새로운 곳을 알아가는 것이 앞으로 좋은 친구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관찰하며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떠나온 나였기에 처음에 관찰만 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뒤로 한 걸을 물러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되기에 난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했다. 이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한 걸음 물러서 관찰하며 이 곳 사람들의 생각, 행동 패턴,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관찰하는데 9월을 보냈다. 대화, 소통의 소중함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길들이 내 눈에 익을 때쯤, 짝짝짝 박수를 치며 트라이시클을 부를 때쯤, 점점 모든 것이 익숙해 질 때쯤, 나와는 다른 점을 가끔 틀린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생겼다. 처음엔 다름을 인정하지만 다름이 지속되다 보면 틀렸다고 생각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각각 다른 인격체들이 만나 하나의 팀을 이뤄 함께 간다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도 다른 사상 그리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는 서로간의 많은 이해와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생활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은 무거운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 자리를 회피하기도 하지만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며 심지어 쌓였던 오해들을 풀 수도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리핀 생활이 익숙해 지던 10월, 10월이 나에게 ‘대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 이 깨달음이 나의 작은 생일 선물 되어주었다. 가끔은 다른 언어 때문에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대화를 함께 한 시간만큼 그 사람과 가까워 지고 그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깨닫게 될 수 있었다.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며 가끔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힌드 아코 마르농 막따갈로그(전 따갈로그어를 잘 못해요.)’라고 말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고 대화를 하지 못한다면 내가 그 사람과 친구가 되기 힘들다는 것일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한국사람들과 말이 잘 통한다고 모두하고 친구로 지내는 것도 아니며 이 곳에서 말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내가 친구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세계 공용어인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 바디랭귀지보다 더 강력한 대화 방법이 있다. 바로 마음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보이는 것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린 느낄 수 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필리핀에서 사람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며 느꼈다.필리핀에 와서 무엇을 가장 많이 얻었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항상 가족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곳에 와서 많은 가족들이 내 가족이 되었고 많은 엄마들이 나의 엄마가 되어주셨다. 내가 그들 가족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의 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서로 마음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손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그저 바라만 바도 느낄 수 있는 그들의 배려, 그들의 눈빛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너는 내 가족이야 그리고 내 딸이라고 말이다.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11월에 갯벌 속 진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픔이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그들의 마음과 사랑이 진주가 되어 내 마음속에 전해 졌다. 난 지금 12월 중반에 살고 있다. 이제는 이 곳에 남겨두고 갈 아이들을 그리워할 생각에 그리고 혹시나 내 머리가 그들을 잊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에게 부탁하고 있다. 두근두근 마음이 뛸 때 마다 이곳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아직은 이른 마무리라 말할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이 하나씩 끝나가면서 나도 내 마음속의 이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고 있다. 감사하며, 처음에 그저 열악한 환경에 사는 아이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마음을 앞으로는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정리해가고 있으며, 사람들이 다가 오기 전까지 기다리기만 하던 나 자신을 먼저 다른 이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단련 시키며 정리해 가고 있다. 라온아띠 4기 필리핀팀으로 이 곳에서 하루하루 아니 매 순간순간 얻었던 깨달음들을 적어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리고 이 에세이를 통해 다시 내 자신을 정리할 수 있던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며 남은 기간 동안도 감사하며 살아가길 바라길 기도할 뿐이다.
개인에세이, 임수정
1
99+
2010년 12월인 지금, 한국을 떠나온 지 어언 4달째, 벌써 반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바쁜일들은 잠시 접어두고 이렇게 차분한마음으로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니, 9월 7일 아침, 한국을 떠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으로 돌아가 한여름, 라온아띠 지원서를 쓰려했던 순간부터의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왜 이곳에 오려 했는가,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미경과 망원경 난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패턴으로 생활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는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모든 것을 제쳐두고 농구선수생활을 시작하며, 대학교 2학년 때까지의 학창시절을 운동과 함께 보냈다. 내 인생에 있어 학창시절 대부분의 추억들은 이 시간들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지금 라온아띠로써 모두와 함께 걸어가는 이 순간, 이 모든 시간들이 내 마음속 또 다른 곳에서 잊지 못할 경험들과 신선한 충격들, 여러 사람을 만나며 함께한 즐겁고 마음 따뜻해지는 일들로 인해 가슴속에 크게 자리잡아가고 있는거같다. 각자가 바라보고 느끼는 시각에 따라 짧게도 또는 길게도 느껴질 수 있는 5개월이다. 나는 그런 느낌들을 떠나 그저 매 순간 맞이하게 되는 여러 상황들에 꾸준히 충실하며, 있는 그대로를 느끼며 받아드리려고 하고있다. 또한 나는 여러 상황들을 언제나, 현미경처럼 자세하게 그런 동시에 망원경과 같이 멀리 보려는 마음을 잊지않기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라온아띠로써 이곳, 뜨겁고 강렬한 태양아래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또다른 경험들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거같다. 그리고 난 항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정직과 마음에서 울어나 진실로 움직이는 진정성을 중요시 생각한다. 진심, 통한다 이곳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우리와 가장먼저 부딪쳤던 벽이 원활한 의사소통,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서로 답답해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미소를 띄우는 밝은 얼굴로 친절히 대하는 나의 진실한 마음은 그들에게 따뜻하게 통한듯했다.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다 알아듣고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를 많이 배려해주는 그들의 사려깊은 훈훈한 마음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어떤 순간에 누구와 함께하든지, 마음에서 울어나는 진정성은 더없이 중요하게만 느껴진다. 그 후 점점 시간이 흐르며 이곳에 스며들다시피 적응하여 생활했다. 모두가 함께 열린 마음으로 항상 준비하며 나아가니, 적응에 어려운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던거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겐 매순간 배움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사소함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다른사람들을 아끼며 소중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다시한번 뜨겁게 느끼며 가슴속 깊은곳에 새길 수 있었다. 늘 처음처럼 물질적으로는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는 지금,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차가워지고 공허해져 가는 마음을 다시금 내 안에 따뜻함으로,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맑고 푸른 하늘만이 나를 비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어찌보면 한동안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타성에 젖어있었던 적도 있었다. 타성, 나는 이것이 슬럼프보다도 무서운 것을 알기에 더욱 조심한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기 보다는 항상 똑같이 하는만큼만, 그저 구름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모든 것에 무뎌져 가는 감각이 무섭다. 그렇지만 난 여기서 꾸준히 매일 반복하는 일들 중 하나인, 그날의 하루를 기록하고 있는 노트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점점 무기력해져 가던 중 그곳에서 빠져나올 구멍을 금방 찾게 된 것이다. 그 안에는 한국을 떠나온 날부터 시작하여 하루하루의 생활모든 것이 적혀있다. 처음 나의 설렘과 두근거림 등 여러 마음가짐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 이곳에 서서 그저 경치만 바라보았을 때에 한없이 높기만 하고, 파랗던 맑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들판을 보며 꾸준히 터져 나오는 탄성과 함께 감탄을 감추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하니 신기하게도 다시금 내 마음속 두근거림을 찾게되었다. 멋지게 와닿는 한 마디 지금까지 100일 남짓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일들이 나와 함께했다. 대부분은 Cabanatuan에서 어린 친구들과 함께 여러가지 프로그램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AURORA에서는 Nanay(어머님)들과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겠고, Playan City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축제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또 다른 새로운 상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지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언제나처럼 항상 그곳 친구들이 나와 함께 손을 맞잡고 같이 걸어간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겐 ‘Friends of Asia’라는 말이 너무나도 멋지게 와닿고있다. 어린아이들부터 어머님들, 할머니 할아버님들까지 나는 점점 모두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고, 그로 인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곳 친구들 중 누군가 나를 떠올리면, 미소 지으며 함께한 즐거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전한 따뜻한 메시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해 이곳에서 후회 없는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또한 이곳의 기억들을 지금 이루다 말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마음에 짧게나마 되짚어 보자면, 어린아이들이 ‘Ate Soo’를 외치며 다가와 수줍게 내밀어주어 나와 맞잡은 너무나 예쁜 고사리같은손들, 어머님들과 잠시 헤어짐이 슬퍼 눈시울을 붉히며 나눈 뜨거운 포옹들, 매일같이 마주하게 되는 할아버님의 너무나도 인자하신 미소, 또래 아이들의 깨알 같은 웃음소리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새겨져 있다. 앞으로도 항상 모두를 소중히 생각하며 사랑으로 가득 찬 따뜻한 마음이 언제나처럼 나와 함께할 것이다. 눈부시게 예쁜 아이들과 맑고 높은 하늘을 속에서 다같이 함께 보내는 가슴벅차오르는 매순간에 오늘도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항상 하던 대로 언제나 미소 지으며 모두 다같이 Keep going이다. ^^
개인에세이, 이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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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돌아본다. 아니 손짓한다. 배낭이며 캐리어며 바리바리 싸갔던 짐들만큼이나 부푼 기대와 떨림을 안고 필리핀 땅을 밟았던 세 달 전의 그날. 쏘아 논 화살처럼 결코 잡을 수 없는 시간의 뒷모습에는 언제나 후회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거창한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 결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며 치열했던가. 어리석게도, 활동의 절반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더욱 옥죄며 정해진 틀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에게 무언가 커다란 도움을 주고, 성취감과 보람을 그에 대한 급부로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은 그 웃음으로써 나를 호되게 꾸짖고 있다. 하얀 피부에 검은 뿔테 안경, 낯선 이방인의 모습에 호기심 그윽한 눈빛으로 언제나 밝게 맞아주었던 이곳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도 절대 녹록하지 않았던 3개월,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혹은, 어떤 한계를 절감했나. 그 시작은 열등함과 다름을 구분 짓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경제규모에서부터 치안, 정치, 소셜 인프라 등 수치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분명 열등하다. 하지만 아직도 도로 위에는 차보다 오토바이로, 깔끔히 정돈된 상점들 보다는 길거리 가판대와 구걸 꾼들로 넘쳐나는 이곳에서 웃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그들을 그저 속 좋은 낙천주의자들로 치부할 수 있을까? 행복을 고민했다 연봉, 집 평수, 자동차 배기량, 재테크 수익률. 규격화된 수치들로 행복을 좇는 우리네들의 기준을 이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서의 고된 노동 뒤에도 한잔의 술과 한숨의 낮잠은 어김없이 찾아오기에, 사시사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있어도 Tricycle을 잠시 세워두고 쉬어갈 수 있는 나무그늘이 있기에 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가 살아온, 아니, 흔히들 회자되는 한국인들의 삶의 기준에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힘들었던 것도 그들을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한국에서의 나를 버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Community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이전의 나는 마치 제로섬 게임의 그것처럼 잠식된다. 이런 고민들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아직 완전히 그들을 이해하진 못했기에)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들을 바라볼 때, Korean standard를 가만히 내려놓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마치 엮인 실타래 풀리듯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다르다는 것. 그렇다. 그들과 우리는 분명 달랐다. 항상 고마워 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주어진 현실에 감사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 그들은 더 빨라야 하는 인터넷 속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들, 요동치는 주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그들과 함께하며 이러한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이 드넓은 세상에는 꼭 우리들과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우리들과 다르게도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우기 위해, 향수병과 몇몇 어설픔 음식을 감내하는 비싼(?) 수업료를 우리들은 지금 지불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고민 하지만 그 이해가 통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세상을 조금은 불공평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문제, 빈부격차.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가끔 거짓말을 엄청 보태어 하늘과 땅 차이 라는 상용구를 사용하지만, 이곳의 빈부격차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화려한 불빛의 쇼윈도, 즐비한 상품들, Mall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혹은 뭔가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한바탕 쇼핑을 즐긴 이들에게는 Mall의 문을 나서며 주차된 차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구걸하는 소년, 소녀들이다. 하지만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심지어 화나는 것은, 이것이 마치 이곳의 문화인 양,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과연 이곳의 위정자들은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는 있을까? 아니, 이곳 사람들에게 의지는 있을까?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매정한 사고로 일관해버리는 걸까? 그저 여긴 내 나라, 내가 살 곳이 아니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현지인들한테 조차 외면 받는 그들의 눈빛엔 미래는 있을까?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내성적이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내가 나 자신을 지켜본 바로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고, 말하는 것 보다는 생각하는 것,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소심형이다. 정해진 일상 속에 한정된 인간관계, 술과 책에 치여 살던 한국에선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정작 머나먼 타국에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괜한 엄살일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항상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가장 기본적이지만 나에겐 가장 어려운 것들이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화답해주는 그들에게서 용기를 얻다가도, 때론 냉소적인 그들을 보며 한없이 움츠러든다.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의 나는 달라져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게다가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이곳에서의 기억마저 희미해져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몸치인 나를 계속 응원해주며 2ne1의 ‘Fire’ 안무를 함께 연습하는 Valle cruz의 어머니들과, 되도록 많은 이곳의 문화를 소개해주고자 하는 Kuya morito, 때론 엄마와 같이, 누나와 같이 항상 우리들을 보살펴주는 Ate mayet, 항상 Facebook 주소를 물어보는 이곳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냥 그렇게, 이곳의, 지금의 내 생활에 충실하고 싶다.
개인에세이, 안재윤
99+
Community worker 나는 community worker다. 그대로 정의 하자면 사회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처음에 이 라온아띠를 지원 할 당시에는 봉사활동을 생각하고 지원 했다.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그 사람들을 도와 주고 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이루고 오자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정말 짧고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필리핀이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이 나라는 우리 나라보다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이 나라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는 이 어리석은 생각들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이건 나의 오만과 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도움이 되는 것을 심어 주거나 우리가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없다. 왜냐면 이 사람들은 지금 만으로도 행복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과연 천막 안에서 살면서도 하루 세끼 걱정 하면서도 비가 오면 빗물을 맞아 가면서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면 이 행복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기준이 되는 걸까. 행복의 조건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분명 이것은 문화 차이일 것이다. 무엇이든 빠르게, 항상 무언가를 발전 시키고자 하는 것이 우리나라라 하면 이 필리핀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웃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었다. 이런 점을 생각 하게 된 계기는 Home stay 였다. 내가 Home stay 하던 집은 나무 판자로 만들어져 있던 집이었다. 집에 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으며 바닥은 그냥 흙 바닥이다. 이런 곳에 처음 들었을 땐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이 사람들 정말 딱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을 들어 서는 순간 이 생각은 저만큼 사라져 가고 있었다. 들어 가자 마자 반겨주는 가족 같은 따뜻함, 무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만큼은 자기보다 더 편안하게, 더 배부르게, 더 따뜻하게 하고자 하는 노력,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 하고 항상 웃고 있는 미소, 집 바닥은 차갑고 문이 없어 바람은 불고 비가 와서 천장에서 물은 새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한 가정의 따뜻함 이었다. 그리고 더 나에게 충격을 안아 주었던 것은 한 집에 아이가 7명이 거주 하고 있어 아이 들이 참 많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 중 3명이 자기 아이 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옆집아이도 있고 그 중에서도 부모도 없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부모도 없고 집도 없다. 하지만 그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먹여 주고 자고 싶어 하면 재워주고 같이 생활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말하기를 그냥 같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대 그 아이가 부모가 없고 집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 아이를 키워야지 하는 생각 아닌 그냥 모자라는 것에 대해 채워 주는 것이었다. 본인들도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 하고 말이다. 누가 이런 친구들을 보고 불행하다거나 불상 하다고 여길 것 인가. '함께' 살기 여기 있는 YMCA관계자가 Community worker는 누군가를 도와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Community worker는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함께 하는 With로 정의했다. 여기 있으면서 이 생각을 잊어 버린 적이 없다. 여기서 친구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먹고, 함께 계획 하면서 본거지만 정말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고 행복해 한다. 그 친구들은 우리와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즐거워하고 함께 일 하는 것도 즐거워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친구들이다. 그렇다면 이 함께 해야 하는 Community worker의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사교성이다.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분명 사람을 만날 시에 초면이라는 것이 있을 테고 이 초면에 많은 것이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초면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지만 Community worker들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필수 조건 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은 내가 다가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자신에게 벽을 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해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본 성격은 처음엔 다가가기 힘들고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알면 알아 갈수록 나에 대한 모든 면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많지 않은 시간에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최대한 자기를 보여 줄 수도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면들을 받아 들일 줄도 알아야 하고 다른 시점으로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Community worker 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런 점을 빨리 알면 좋을 테지만 나처럼 많은 실수 속에서 이런 점들을 알아 가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자기 인생 속에 뼈 깊은 조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Community worker들이여 영원하라!!
개인에세이, 박은경
99+
이제 이 높은 하늘도 더 이상 크게 놀랍지 않다. 트라이시클 매연에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 막았던 기억도 이젠 그냥 기억일 뿐 오히려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아직 여기에 온 지는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이 생활이 정말 편하다. 이제 집안에서 바퀴벌레를 보아도 벽 위를 지나다니는 도마뱀을 보아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냥 귀엽다. 필리핀과 친해지는 법 솔직히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은 적응기간이라고 그냥 정해진 일 없이 이리저리 구경 다니고, 집에 있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빈둥거렸다. 그냥 시간이 가는 게 아깝고, 왜 이 곳에서는 일하러 온 우리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을까 답답해했다. 하지만 두 번째 달이 되면서 갑자기 이것저것 해보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일단 하기는 했지만,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 안에서 부족했던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 일정을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심도 있는 고민은 없었다. 게다가 태풍까지 불어 닥쳐서 일정은 계속 펑크가 났고 우린 집에 있으면서 더 파이팅은 못할 망정 마음가짐마저 축 늘어져버렸다. 결국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우린 다시 심기일전했고, 우리의 생각대로 스케줄을 짜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하. 지. 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Aurora에서 우린 처음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활동 갔을 때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 “너희는 friendly하지 않아. kind하지 않아.” 이 곳에서도 첫 날이 지난 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이 아니기에 우리는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다들 우리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 우리도 몇 일만 지나면 금세 가까워지는 성격들이라고. 두고 보라고. 다들 이런 마음가짐으로 활동들을 진행하다 보니 잘 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밤마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래. 우린 필리핀에 자원활동을 하러 왔고, 아시아의 친구가 되기 위해 왔다. 조금 성격이 덜 적극적이어도 노력해야 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해. 이렇게 생각을 바꿔먹으면서 일은 술술 풀렸고, 결국 우리는 그 곳 나나이(따갈로그어로 엄마라는 뜻)들과 정이 들어서 고작 5일 함께했는데도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난 Aurora에서 느꼈다. 정말 내 첫 필리핀 친구가 생겼구나. 정말 한국에 돌아가서도 연락할 내 친구가 생겼구나. 변화 속에서 발견한 친구 Aurora를 다녀와서 우리는 참 많이 변했다. 우리가 그 동안 참 쉽게, 쉽게 가려고만 했었구나, 좀더 고민하고 좀더 관심을 가지면 훨씬 멋지게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우린 적극적으로 남은 수업들을 계획하고, 이것저것 자료도 사서 미리 만들고, 정말 열심히 하였다. 비록 갑자기 또 일정이 변경되어 기운이 조금 빠지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우리도 힘을 얻었다. 정말 남은 기간까지 우린 이 기세로 밀어 부칠 것이다. 필리핀에 오기 전에는 3주 훈련이 집에서 나와있던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이었고, 지금은 이 5개월이 가장 긴 시간이다.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처음이다. 그래서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나는 정말 누가 물어도 거짓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살고 있다. 기대이상으로 맛있는 필리핀 음식들과 너무나 친절한 필리핀의 사람들. 그리고 나와 참 잘 맞는 이 곳의 문화, 여유로움. 이렇게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것도 정말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50여일 남짓 남은 이 시점에 벌써 필리핀을 떠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울적하다. 벌써 나는 한국에 돌아갔다가 여기 다시 올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곳 에 이미 정말 평생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라온아띠가 되기 전 알게 된 해외친구들과 거의 연락이 끊겨서 되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정말 노력할 것이다. 라온아띠 활동을 시작하며 오리엔테이션에서 쿠야(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분을 뜻함) 모리토가 아이들의 교육이 참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었다.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도 성공하기가 힘들다. 확실히 발리 크루즈의 데이케어센터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아이들과 이 발리 크루즈 아이들을 비교해 보면 수준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한국 아이들의 수준을 생각하며 어떤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면 솔직히 조금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쓰레기 산 근처에서 교육 재료도 별로 없이 수업만 따라가는 아이들이 어떻게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한 3달 정도 발리 크루즈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정말 교육이 중요하고 정말 이 아이들이 이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육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정부에서 이런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해서 아이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 통하였느냐 벌써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남은 기간 동안 내 사람들을 더 만들고 가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진심이 이 곳에 전해지는 것. 영어를 잘 못하는 나로써는 말이 잘 안 통하니 진심을 전달하는 수 밖에 없다. 이미 오로라에서의 경험으로는 말보단 진심이 최고인 것을 충분히 느꼈다. 12월 중순인 지금 아직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우린, 피부색도 생활방식도 모두 필리피노가 되어가고 있다. Friends of Asia. 아시아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돌아가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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